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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애 Jul 15. 2022

길치로 산다는 것

-길치의남편으로, 아들로 산다는 것

나는 ‘길치’다.

어려서부터 공간감각이 떨어졌다. 이게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매 번 헷갈리곤 했다.


집과 학교, 학원만을 왕복하던 어린 시절에도 매번 가는 피아노 학원의 위치를 헷갈려서 ‘피아노 학원이 이사 갔다.’라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크면 좀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크게 상태가 호전되지는 못했다.     


우리 집은 여기저기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다 한 동네 안이었다. 나의 학교를 옮기지 않으려고 부모님이 그 안에서만 이사를 다니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사란 집을 찾을 수 없는 공포를 의미했다. 아파트에는 분명히 동, 호 수가 명백히 쓰여있는데도 매번 헷갈렸다.




제일 재미있었던 일은 내가 다 커서 지금의 남편을 막 남자 친구로 만나기 시작했을 때 있었다. 그때 우리 집은 빌라로 이사를 했다. 빌라는 아파트보다 찾기가 더 까다로웠다. 더욱이 이 집은 찾아가는 길이 내게는 너무 복잡했다. 이사를 온 지 일주일쯤 되었던가, 퇴근 후 집을 찾아가는데 갑자기 집을 못 찾겠는 것이다. 이런 황당할 데가. 그날 갑자기 공황장애처럼 모든 가게와 빌라가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이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이미 일주일 정도 그 집에 살았는데, 그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 기분은 정말. 그래서 내가 한 선택은? 나는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집에 데려다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빠, 우리 집이 어디였지?”     



그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남편이 되었다. 남편은 어느 날 우리가 함께 다니던 ‘가로수길’ 근처에 있는 전파상 가게에서 물건을 사 와 달라고 전화로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웬걸. 그 거리에서 나는 미아가 되었다. 그때에는 휴대폰 지도도 있었는데 지도를 봐도 골목을 찾을 수가 없는 거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오빠, 못 찾겠다고. 집에도 못 갈 지경이야.”     




나와 아이는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써서 서로 교환하여 읽거나 자기 전까지 인물을 분석하곤 했다. 

그냥 예매하여 관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는 주로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극장을 찾아다니는 일이 많았다. ‘시사회’에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감독이나 성우의 인사가 있을 때도 있고, 코스프레 행사가 있을 때도 있었으며, 작은 뮤지컬 공연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늘 간단한 식사를 하고 커다란 팝콘을 들고 입장하곤 했다. 


그러나 나 같은 길치에게는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는 극장을 찾는 것도 고역이었다. 게다가 극장의 지역명도 헷갈려서 꽤 거리가 먼 다른 극장으로 향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언젠가는 왕십리로 가야 하는데 그전에 갔었던 기억으로 영등포로 갔었다.  잘 못 왔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하여 허덕허덕 길을 돌려 갔으나 이미 자리가 다 찼다고 했다. 너무 고생을 했는데 이를 어째. 나는 괜찮지만 어린 아들에게 미안했다. 관계자도 딱했던지 한 자리가 있다며 아들만이라도 보여주겠다고 해서 어린 아들만 들어가서 본 일도 있다. 착한 아들은 이런 일에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아이는 오히려 내가 당황하면, ‘엄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며 나를 다독거렸다. 대체 누가 어른이고 누가 어린이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의 나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있었던 사건이 있었으니.     

“윤군아, 너 길 못 찾냐. 너도 엄마 닮아 길치인 거야?”

남편이 농담으로 던진 이 말에, 아들이 크게 분노하며 외쳤던 것이다.

“절대 아냐. 엄마 안 닮았다고.”     


헐. 그렇게 닮기 싫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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