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6일 차)

(2022.3.30. 수)

by 옥이와 일이

*. 에스떼야(Estella)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22.0Km 8시 30분 출발 – 16시 도착)

< 상세 일정 : 에스떼야(Estella 0.0km) → 아예기(Ayegui 2.0km) → 이라체 수도원(Monasterio de Irache 3.0km) → 아스께따(Azqueta 7.5km) →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Villamayor de Monjardin 9.5km) →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22.0km) >


< by 개미(옥이) >


어제저녁 한국인 비정상회담에서 젊은 친구들이 40여 일을 남자 친구랑 이 길을 간다면 필경 싸우고 헤어질 것이라는 말을 하여 웃었습니다.

< 이라체 수도원의 포도주 수도꼭지 >

에스테야(Estella)를 벗어나 30여 분을 걸으니 이라체 수도원(Minasterio de Irache)이 있는 마을이 나옵니다. 앞에서 걸어오시던 스페인 아저씨에게 ‘올라’ 인사를 건네자 ‘부엔 까미노’ 하면서 스페인 말로 무언가를 알려 줍니다. 손짓과 발짓을 통해서 보니 저 길을 올라가다 바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올라오니 더그와 스티브가 철문 안으로 들어가 따라 가보니 그 유명한 포도주 수도꼭지로 유명한 이라체 수도원(Minasterio de Irache)입니다. 이른 아침이라고 하면서 사진만 찍고 더그와 스티브가 떠나고 우리는 ‘예수님의 피’라고 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점심을 위해 가져온 병에도 조금 담습니다. 오래전 배고픈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한 전통을 오랫동안 지켜오고 있었고, 순례자들에게 색다른 의미와 재미를 줍니다.


조금 올라오니 양 갈래 길이 나옵니다.

똑같이 오늘의 목적지 로스 아르고스(Los Arcos)로 가는데 한쪽은 17.9Km, 또 한쪽은 16.9Km로 표지판이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난이도의 차이일 꺼라 생각하며 좀 편한 길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나, 평소 모험심 많은 남편은 역시나 짧은 쪽 길을 선택합니다. 할 수 없이 뒤쫓아가는데 카미노 화살표가 헷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도로로 포장된 직진 길과 산 쪽 오솔길, 망설이지 않고 산 쪽 오솔길을 선택하는 남편에게 ‘이쪽일 것 같은데...’ 말하지만 듣지 않고 빠른 속도로 올라갑니다. 가리비 표시가 보이지 않고 길은 모퉁이로 이어져 돌아서자마자 집 두 채가 나오고 집을 지키던 개가 담장을 뛰어넘어 달려들 듯 짖어댑니다. 길을 잃었습니다. 원점회귀가 방법일 텐데 남편은 다시 샛길로 빠집니다. 속은 부글부글 끓으나 말없이 뒤따라 갑니다.


한적하고 올리브 나무가 울창한 숲 속 오솔길이 나옵니다. 올리브나무 숲이 끝나는가 싶더니 쭉 뻗은 소나무 숲길이 이어집니다. 저 앞에 빗물이 고여 오솔길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습니다. 앞서 걷던 남편이 돌 몇 개로 징검다리를 만들어줍니다. 말없이 화해가 된 것입니다.

이번 까미노 순례길에서 몇 부부 순례자들을 만나서, 서로 격려하며 6일 차를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친해진 진과 더그 부부는 진이 다리가 아파 중간 포기를 하는 바람에 더그 혼자서 걷고 있습니다. 긴 순례길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함께 걷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올리브와 소나무 숲길을 벗어나니 끝도 없이 밀밭과 포도밭이 이어지고 길은 그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져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난 다랭이 논길을 걷는 기분입니다. 같이 걷던 까미노들은 모두 길지만 쉬운 길을 선택했는지 이 길에 있는 사람은 우리 부부뿐입니다. 남편이 자신의 종교관과 세계관으로 어머니와 잦은 갈등을 겪었던 이야기, 그 어머니께서 일찍 세상을 떠난 이야기 등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데 익히 아는 사실들이지만 조금 다른 버전이어서인지 아니면 이 길의 신비로움 때문인지 또 새롭습니다. 10여 Km 이어지는 길만큼이나 길게 이어지는 익숙한 사연들이 길의 단조로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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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Villamayor de Monjardin)을 벗어나도 길은 똑같습니다. 넓은 벌판에 보이는 것은 저 멀리 피레네 산맥과 초록의 밀밭뿐입니다. 그런데 시나브로 구름이 해를 가리고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지루하고 춥고 점점 지쳐갑니다. 발걸음이 빠른 남편은 추운지 더욱 속도를 빨리 합니다. 따라가기에 지친 저는 드디어 선언합니다. ‘혼자 가... 나는 나대로 갈 테니....’


길 위에 또 다른 길이 합쳐져 하나로 합쳐질 때쯤 우리도 각기 가지고 있는 색깔의 조화를 이루어 내기를 희망해봅니다. 순례자들은 각자 자기의 방식대로 길을 갑니다. “왜 내가 가는 이 길을 가지 않지?”라고 의문을 갖기보다는 외려 다른 길을 존중하고 궁금해하는 열린 마음으로 걷다 보면 머지않아 알게 됩니다.

“아!.. 그랬구나..”

세상사란 서두르고 성급히 사물이나 상황을 재단하지 말고 그냥 두고 보다 보면(Let it be...) 저절로 알게 되는 때가 많습니다. 이 특별한 길을 파울로 코엘료는 ‘평범한 사람들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함이란 무엇일까요? 그냥 다양함과 독특함이라고만 말해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다른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진다면 좋은 검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늘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이 길을 걷는 것이겠지요..


6일째 계속 만나고 있는 더그와 스티브 일행을 저녁 식당에서 또 만났습니다. 자신의 손자 자랑을 늘어지게 하는 스티브를 보며 정감이 느껴집니다. 와인에 취해 “너희들을 사랑해!”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이른 감정의 표현인 것 같지만 솔직한 것이 흠은 아니겠지요. 힘내서 내일도 열심히 걷자고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른 봄 스페인의 대부분 시골 마을이 그렇지만 이 작고 오래된 도시는 오늘 무지 춥습니다. 그러나 찬 바람을 맞으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은 훈훈합니다. 내일 로그로뇨까지 28km, 까미노 길 위의 모든 친구들이 탈 없이 잘 걷기를 기도합니다. 부엔 까미노...



< by 베짱이(일이) >


이제 6일 차 4월 30일이다. 춘분이 지났는데도 아침 해는 늦게 뜬다. 확실히 이곳은 고원 지대라 겨울이 긴 모양이다. 그런데 저녁해가 늦게 지는 것은 왜일까? 위도 차이 때문일까? 아주 기초적인 지구 과학의 상식일 텐데... 살수록 모르는 것이 점점 늘어 난다.


어젯밤 카푸치노스 알베르게는 관리인의 얼굴 표정만큼이나 추웠다. 대체로 이곳의 알베르게들은 난방이 거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침낭이 필수품인 것이다. 겨울 침낭은 너무 무거울 것 같고 여름용은 너무 추울 것 같아 봄가을용으로 새로 준비하기를 잘했다. 나처럼 추위를 잘 타는 약골은 침낭 속에 들어가서도 새벽에는 좀 추운 걸 견뎌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흐리고 비가 올 듯하다. 짐을 챙기고 방명록에 국적과 나이와 한 마디 남긴다. 길을 건너 주유소 카페테리아에 들러 바게트와 커피, 소시지 등으로 아침 요기를 한다. 팜플로나 길에서 만난 DD 부부가 먼저 와서 심심풀이 과자 등을 사 가지고 나간다. 이 노부부도 드문 커플 중 하나이다. DD는 미국의 어느 전자회사 부설연구소에 일하는데 구미의 모 전자회사에서 강의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국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다.


에스테야(Estella)에서 얼마 걷지 않아 이라체 수도원(Minasterio de Irache)이 나온다. 그 유명한 수도꼭지가 진짜로 있다. D와 S는 사진만 찍고 떠나고 오랜만에 만난 SJ는 한 모금 맛보며 떫은 표정을 짓는다. 이들이 떠나고 나는 예수님이 주신 보혈을 정성껏 한 모금 마시고는 비상용으로 조금 더 수통에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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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길을 걸어 고속도로 아래로 난 굴을 지나 언덕 위를 걸으니 두 갈래 길이 나온다.. 1.1km가 짧은 산길을 택해 걷는데 키 큰 올리브와 소나무 군락으로 이루어진 숲길이 이어진다. 숲이 끝나며 탁 트인 고원이 펼쳐지고 온통 밀밭뿐이다. 보고 싶은 양 떼들도 목동 ‘산티아고’도 없다. 순례자들은 다른 길들을 가는지 보이는 사람들이 없다.




결국 길은 하나로 만나게 되는데 그 합류 지점에서 H와 B를 만났다. B는 대만 처녀로 굳이 28세라고 만 나이를 말하는데 우리 나이로는 30세이다. 기계공학 전공자인데 로그로뇨에서 다시 디자인을 공부하고 구두 디자인 일을 6개월째 하고 있다. 스페인이 자유로워서 살기 좋다고 한다. 내일과 모레는 눈이 날리는 추운 날씨가 될지 모르니 대비하라고 알려 준다. H는 로그로뇨에서 하루 쉬면서 악천후를 피하기로 했다 하고 B는 휴가기간이 짧아 어쩔 수없이 강행군할 거란다.





오늘 걸은 길은 숲길을 제외하면 모두 탁 트인 밀밭길이라 여름에 강렬한 태양이 내리쪼였더라면 무척 더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이런 단조로운 길들이 계속된다며 좀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밀밭 옆에는 이제 포도밭도 보인다. 푸른 잎사귀가 돋지도 않은 시커멓고 휘어진 포도나무 둥치가 흉물스럽다. 지루하게 계속되는 포도나무와 밀밭 사잇길 너머로 간혹 보이는 피레네의 연봉들이 지루함을 달래 준다. 내일과 모레 눈 비가 온다더니 벌써부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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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째 계속 만나고 있는 D와 S 일행을 저녁에 식당에서 만났다. S는 나보다 연상이어서 내가 형이라고 불렀더니 웃으며 좋아한다. 자신의 손주 사진을 보여 주며 행복해하는 그가 사랑스럽다. 주거니 받거니 오늘 걸었던 길 이야기를 하며 따뜻한 저녁식사를 마친다.


로스 아르코스(Los Arcos)는 아치가 많은 곳이라는 이름의 도시이다. 강을 따라 다양한 중세의 아치는 물론 현대식 다리들도 보이고 건축물들도 개량 가옥들이 많다. 날이 더 추워졌다. 내일 새벽이 걱정이다. 그렇지만 로그로뇨에서 타파스를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좀 나아진다.


숙소를 찾아들어가니 주인집 며느리가 서투르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데 내가 호응해 주니 좋아하는 눈빛을 보낸다. 베사메무초... 자기가 유일하게 끝까지 연주할 수 있는 곡이란다. 강남스타일을 자꾸 외치는 데 나는 웰컴 송 고맙다며 이만하면 충분하니 그만하자고 부탁한다. 또 젊은 여자 한 사람이 있는데 방 안내를 하며 마사지를 권한다. 아! 이 길에서 몸이 경직되고 다리와 허리가 아픈 사람들에게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프지 않아 사양한다고 하니 이후에도 한두 번 더 마사지 잘해줄 테니 하게 해 달라고 한다. 참 난처하다. 오늘도 따뜻하게 자기는 그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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