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9. 화)
*.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스떼야(Estella) (21.9Km 8시 30분 출발-16시 도착)
< 상세 일정 :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0.0km) → 마네루(Maneru 5.5km) → 시라우끼(Cirauqui 8.5km) → 로르까(Lorca 14.5km) → 비야뚜에르따(Villatueta 19.0km) → 순례자 동상 → 에스떼야(Estella 23.0km) >
“내 핸드폰 못 봤어요?” “아니, 나 못 봤는데.....”
마네루(Maneru)를 벗어나 한참을 걸어왔는데 갑자기 핸드폰을 찾습니다.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슈퍼에서 자판기 커피를 먹고 두고 온 것 같습니다.
뒤에 올 것 같은 H에게 SOS를 보냅니다. 마침 가까이에 있어 갔는데 없다고 합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숙소에 두고 온 것 같기도 하고, 길에 떨어뜨린 것 같기도 합니다. 마침 지나가던 더그가 “무슨 일 생겼니?”하고 물어 옵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하니 가던 길을 멈추고 같이 걱정을 해줍니다. 다시 되돌아가는 수밖에..... 오 마이 갓!!!
푸엔테 라 레이나 여왕의 다리를 건너 걷는 길은 어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고속도로 옆의 조그마한 오솔길 왼쪽으로 아르가(Arga) 강이 흐르고, 푸른 밀밭이 흐르고... 간간이 포도밭과 올리브 과수원이 보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험이나 도전을 종종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신선하지만 좀 시간이 지나 익숙해질 때쯤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여행도 그렇습니다. 까미노 순례길 5일 차를 맞이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까미노 생활에도 익숙해졌습니다.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할 때의 설렘도, 흰색 회벽에 빨간 기와지붕도, 초록의 밀밭도, 또 그 위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양 떼들도 모두 익숙해지니 호기심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걷는 속도는 느려지고 “언제 저 길을 다 갈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 때쯤 까미노 643km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생각을 바꾸니 남아 있는 숫자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167km를 두 발로 걸어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도 신기하게 다가옵니다.
날씨가 흐리더니 비가 오락가락합니다. 그동안 맑은 날씨에 부서지는 햇빛 속 까미노였는데, 비 오는 날의 까미노라니.... 자못 지루할 것 같은 까미노 길에 또 다른 모멘텀이 주어집니다.
입기 꺼려졌던 비옷을 꺼내어 입느라 정신이 팔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가게 앞 벤치 위에 그냥 놓아두고 배낭만 짊어지고 온 것 같습니다. 결국 고심 끝에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결정을 합니다.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되돌아가려는 순간, 저 멀리 우리 뒤에 오던 까미노들이 보입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직 까미노 길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기적....
아르헨티나 대모님과 그의 딸이 “너의 핸드폰이지?”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같이 있던 더그가 “럭키 가이.... ”하며 남편에게 엄지 척을 합니다.
두고 왔던 핸드폰이 손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칩니다.
어제 H도 수 비리(Zubiri)에서 양말이 마르지 않아 배낭에 달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한 짝이 없어진 것을 알았답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팜플로나에 도착해서 찾았다는 것이지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순례객이 길바닥에 떨어진 양말을 앞서간 까미노 친구의 것이라 생각하여 챙겨 온 것입니다. 그깟 양말 한 짝이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짐의 무게가 곧 자신의 어깨통 증을 유발하는 길고도 먼 까미노 길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타인을 배려하고 희생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이 길이 까미노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핸드폰을 찾고 난 후의 길은 행복 바이러스가 충만해져서인지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에스테야(Estella)에 도착하여 저녁은 한국인들만 모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프랑스길에 같은 코스를 걷고 있는 우리는 총 다섯 명입니다. 기적은 또 한 번 일어났습니다. “혹시 이 양말?....”, “헐 내 양말인데 이거 어디서 났어요?” H가 가방에서 양말을 꺼내니 바로 앞에 앉았던 J가 자기 양말이라며 기뻐합니다. 알베르게에서 스위스 젊은이가 두고 간 양말을 가지고 와서 H에게 “발이 작은 것 보니 혹시 네 거 아니냐?”라고 물어봐서 챙겼다고 합니다.
나이도 다르고, 동기도 다르지만 이 길의 끝에서 벅찬 감동을 함께 나누기로 결의를 다지며 모처럼 언어 스트레스 없이 맘껏 수다를 떤 행복한 저녁입니다.
어제 저녁은 행복했지만 오늘 아침 컨디션은 좋지 않다. 머리도 아프고 집중력이 떨어지니 몸에도 영향이 있다. 술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사실 포도주 숙취가 오래가기는 한다. 아내에게 내색 안 하려 하니 더 힘들다. 아침 식사는 컵 라면으로 하며 영국의 남부 서포크와 에섹스에서 온 65세와 68세의 형제들과 인사를 나눈다. 옆에는 어제 포도주 따개 신세를 진 호주 멜버른에서 온 이가 있다. 라면 냄새가 나서 미안하다고 하니 이 냄새를 안다며 문제없다고 한다. 이제 라면 먹으며 크게 눈치 보지 않아도 될 듯하다.
여왕의 다리를 지나는데 스틱 한 짝이 다리 난간에 놓여 있다. 아내는 배낭에 넣고 가다 주인을 찾아 주자 하는데 나는 언제 주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고 짐이 하나 더 느는 것이 마뜩지 않아 그냥 가자고 아내를 설득한다. 아내는 못내 아쉬워한다.
길을 가다 가랑비를 만났다. 우의를 입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슈퍼 앞에서 아르헨티나 모녀도 만났다. 첫날 생장의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만났는데, 친엄마가 아니고 대모라고 한다.
한참을 걷다가 풍광이 좋아 길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폰이 없다. 아까 우의를 입다가 테이블에 두고 온 모양이다. 필경 뒤에 오는 누군가 챙겨 올 것이다. 그렇지만 불안감은 어쩔 수 없다. 특히 부주의한 내 행동이 어젯밤의 과음 때문이라고 핀잔할 아내 순옥 씨의 걱정에 동조하고 당황하는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가 뒤에 오는 H에게 전화를 해 보고, 뒤에 오는 순례자들에게 묻기도 했지만 폰을 보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하는 대답만 돌아 올뿐이다. 결국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왕복 한 시간은 족히 될 거리인데 짐을 두고 혼자 뛰어갔다 오느냐, 아니면 둘이 같이 가느냐를 두고 설왕 설래 한다. 길을 가던 D가 자기 처에게 빌려주었던 무릎보호대를 돌려주며 함께 걱정을 해 준다.
바로 그때 길 모퉁이에서 팔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다. 내 핸드폰을 아르헨티나 모녀가 들고 온 것이다. 한 숨 돌리며 두 사람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지만 술도 깨고 정신이 든다. 한편 여왕의 다리에 남겨 두고 온 한 짝의 스틱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이때 몸집이 큰 50대 서양인이 말을 건넨다. 앞에 가는 내 아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걸음도 빠르고 튼튼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아내도 태국 사람인데 요리도 잘하고 김치찌개도 할 줄 안다고 자랑을 한다. 테네시 출신의 이 분은 은퇴한 직업 외교관으로 주로 동남아에서 근무했고 한국에 오래 근무했던 친구가 있다며 관심을 표한다. 세상이 좁다 해야 하나? 한국이 많이 세상에 알려지긴 한 모양이다. 이 모두 한류 덕이 아닌가 싶다.
조금 더 가다가 워싱턴 DC에서 온 공무원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는데 이 분 또한 한국을 잘 알고 있으며 부산에 업무차 일주일 머문 적이 있다고 한다. 부부 순례자들이 많지 않아 우리 부부가 은근히 주목받는 것 같았는데 반가운 커플을 만났다. 커플 의상을 갖춰 입은 싱가포르의 은퇴부부이다. 우리 부부처럼 은퇴 기념으로 이 길을 걷고 있는데 같은 직종이다. 살갑게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셀카도 찍는 모습이 보기 좋다.
카푸친 수도회의 부속인 카푸치노스 알베르게(Albergue Capucinos Rocamado)는 분위기가 차고 엄숙하다. 리셉션의 관리인은 도수 높은 안경 너머의 차가운 시선으로 필요한 말만 하고 뒤늦게 도착한 우리를 마지막으로 안내하고 바로 승용차로 퇴근한다. 방명록에 싱가포르 부부가 기록을 남겼다.
에스테야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인 5인의 '비정상회담', H와 약속해 두었던 까미노길의 한인 모임이다. 각자 5일 동안의 순례길에서 느낀 점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등으로 재미나게 우리말 대화를 나누었다. 외국인들의 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이전보다 많이 개선된 듯하다. 개인적 목적과 동기도 있지만 한국인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친선대사들이다. 끝까지 가면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궁금한 사연들이 실타래 풀리듯 가닥을 잡게 될 것이라 했다는 바리톤 음색의 키 큰 애주가이며 두 번째 이 길을 걷고 있는 스위스 청년 R의 말을 H가 전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탈 없이 산티아고에 가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려 보기로 다짐한다. 수비리에서 만난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G와 그의 부인 T가 건너편 테이블에서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인사한다. 비정상회담을 끝내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간다.
우리도 수도원 같은 숙소 카푸치노 알베르게로 돌아와 수사처럼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