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짐의 무게(4일 차)

(2022.3.28. 월)

by 옥이와 일이

*. 팜플로나(Pamplona) – 푸엔테라레이나(Puete la Reina)(24.4Km 10시 출발 – 18시 도착)

< 상세 일정 : 팜플로나(Pamplona 0.0km) → 시수르 메노르(Cizur Menor 5.0km) → 구엔들라인(Gendulain 10.5km) → 사리끼에기(Zariquiegui 11.0km) → 페르돈 고개(Alto del Perdon 13.5km) → 우떼르가(Uterga 17.5km) → 무루사발(Muruzabai 20.0km) → 오바노스(Obanos 22.0km) → 푸엔테 라 레이나(Puete la Reina) >


< by 개미(옥이) >

팜플로나 우체국(Correos)

8시에 문을 연다는 우체국에 가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우체국으로 순례길에 필요 없는 짐을 과감하게 정리하여 보냅니다. 순례길 이전과 이후에도 필요한 것들입니다. 매일 짐 배달(동키) 서비스를 이용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걷는 것을 위주로 하다 보니 도시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는데 아침에 길을 나서며 만나는 팜플로나의 거리는 신선하고 깨끗한 인상입니다.

팜플로나(Pamplona)는 프랑스 길에서 처음 만나는 큰 도시입니다. ‘산 페르민’ 소몰이 축제와 투우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매년 7월 6일 정오부터 14일 자정까지 크고 작은 150여 개의 축제가 열리는데 그중에서도 이 두 개의 행사가 볼만하다고 합니다.




숙소에서 십분 이상 도심을 통과하여 도심 외곽에 조성된 큰 공원을 지납니다. 주민들이 아침 운동을 합니다. 나바라 대학을 통과합니다. 좀 여유를 갖고 대학 구내도 들어가 구경도 하고 크리덴샬 도장도 받을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남기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최소한의 짐만 챙겼는데도, 짐의 무게가 엄청나게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도시의 아스팔트를 걷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발바닥과 아스팔트 면이 닿으면 후끈거리고, 짐의 무게로 발목은 시큰거리고, 거기다 도시의 까미노 길은 이정표가 있어도 방향이 헷갈립니다. 길을 못 찾아 잠시 멈췄더니 지나가던 아저씨가 손짓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줍니다. 지나치는 주민들이 ‘부엔 까미노’로 격려를 해주는 것이 참 좋습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 지겨울 만도 할 텐데 만날 때마다 미소를 보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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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여를 지나니 겨우 도심을 벗어나고, 드디어 저 멀리 까마득하게 바람의 풍차가 보입니다. 너무 멀리 보여 저곳을 얼마나 걸어야 할까? 생각하니 한숨이 나옵니다. 아마도 어깨가 아파서이겠지요. 그러나 도시를 벗어나니 금방 초록의 밀밭이 끝도 없이 펼쳐지며 시원한 경치에 다시 기분이 좋아집니다. 시선이 머무는 지평선도 밀밭입니다. 오늘 길은 밀밭과 유채 같은 노란 꽃이 피어 있는 밭에 난 오솔길입니다. 마치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 같은 길입니다. 소리꾼 유봉 일행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굽이굽이 걸어가는 양 콧노래가 저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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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조금 늦게 출발한 탓인지 오는 길 내내 순례자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걸음을 바삐 재촉하니 바로 앞에 검은 베레모를 쓴 독일 할아버지가 자신의 덩치보다 큰 배낭을 무겁게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거의 다리를 끌고 간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무엇이 저토록 많은 짐을 지고 이 길을 홀로 걷게 하는 이유인지 팔십 가까운 나이에 홀로 걷는 할아버지의 인생 사연이 자못 궁금해집니다.


바람의 풍차가 보이는 용서의 언덕은 막바지 오르막길 끝에 있습니다. 자전거 맨들이 밀밭 저 아래에서 걷는 순례자들을 추월하여 싱싱 달리더니 언덕에서는 고전하고 있습니다. 자전거에 매달린 짐과 자전거의 무게가 손으로 끌고 가기에도 버거워 보입니다.


길은 마법 같습니다. 까마득하게 보이던 길도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저 아래에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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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언덕에 오르니 순례자들과 개와 당나귀 등의 형상이 14개의 조형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돌탑에 ‘DONDE SE CRUZA EL CAMINO DEL VIENTO CON EL D'LAS ESTRELLA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 별들이 바람에 따라 흐르는 길‘로 상당히 인상적이고 순례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숙연해집니다. 이 느낌에도 세찬 바람이 한몫을 합니다. 본디 이 언덕은 ’ 용서의 성모‘를 모셨던 작은 성당이 있던 곳이고, 순례자 병원을 운영하던 곳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 언덕을 올라 용서를 구하는 전통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 성당은 사라졌으나 그 이름은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 지명에 남아 있습니다.


언덕 아래에 펼쳐진 푸른 밀밭의 평원과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순례자들의 형상을 보며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헤아릴 수는 없으나 그저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별이 빛나는 들판의 야고보 성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내리막길은 자갈로 뒤덮여 있어 상당히 조심해야 합니다. 오를 때와는 달리 어깨의 짐이 그리 무겁지 않게 느껴집니다. 마치 우리의 삶도 죽을 만치 힘들 때가 사실은 고통의 무게가 점점 줄어드는 시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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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속도가 빠른 만큼 걸음도 빨라집니다. 어느새 언덕을 다 내려와 우떼르가(Uterga)마을로 들어오니 로마 시대 때 우물이 아직도 샘솟고 있습니다. 일 천년을 넘어 쉼 없이 순례자들의 목을 축여 준 샘물을 한 모금 마시며 잠시 휴식을 갖습니다. 이 또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벤치에 H가 앉아 있습니다. H와는 어제 코골이 알베르게에서 한 방에 잔 인연이 있지요. 영어와 스페인어를 잘하고 외국인 친구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나이 많은 나를 늘 걱정해주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예쁜 친구입니다. 오늘은 어깨가 너무 아파 동키로 짐을 보내고 숄더백만 가볍게 메고 걷고 있다고 합니다. 용서의 언덕에서 ‘아모르파티’ 노래를 부르려고 블루투스 마이크를 가지고 올라갔는데, 하필 방전되어 못 불렀다고 아쉬워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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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 예약한 알베르게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여왕의 다리는 내일 보기로 하고 머물 곳을 찾아야 합니다.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요? 넓은 테라스에 깨끗한 방의 이층 침대가 있는 더블룸입니다. 베란다도 있고, 아래로 중정이 보이고 전망도 무난합니다. 타오라는 아가씨와 다른 직원 한 분 모두 매우 친절하고 상냥합니다. 길에서 만나 안면이 있는 두 분 외에 새로운 분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중 오스트리아 멜버른에서 오신 분은 상당히 쾌활한 분입니다.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10시가 되니 사위가 고요합니다. 빨래 맡긴 것을 복도의 의자 위에 놓아두겠다고 타오가 전합니다. “피곤하냐” 했더니 그렇다 합니다. 그래서 웃으며 말해 줍니다. “나도..”라고.. 어김없이 성당 시보는 열 시를 알리고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졸음을 못 견뎌 이제 내일을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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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베짱이(일이) >


4일째 아침은 우체국 여는 8시에 맞추어 짐을 산티아고로 부치고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것만 챙기고 종착지로 짐을 보내면 매일 짐배달(동키 서비스)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어깨는 조금 무거워지지만 유연하게 하루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특별한 경우 아니면 숙소를 미리 정하지 않고 목적지에 임박하여 예약을 하면 된다. 친절한 우체국 직원들의 도움으로 한결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팜플로나 도심의 아침 분위기는 더 신선하고 깨끗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팜플로나(Pamplona)는 나바라의 주도(州都)로

인구 20만이 넘는 큰 도시이다.

헤밍웨이 소설 <해는 다시 떠오른다>에서도 묘사된 ‘산 페르민’ 소몰이 축제와 투우 등 많은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다.

도심 외곽의 나바라 대학과 큰 공원을 지나며 주민들이 아침 운동을 하는 것을 본다. 비가 오다 말다 반복하는 궂은 날씨에도 산책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개들도...

여행을 다니면서 대학을 둘러보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오늘은 그냥 통과한다. 우리의 목적은 걷는 것이다. 아직은 초보 순례자여서 여유를 부릴 수가 없어 아쉽다.


복잡한 도심을 통과할 때 조가비 이정표도 보이지 않고 그나마 노란색 화살표로 된 까미노 이정표가 헷갈려 당황할 때마다 지나가던 분들이 손짓으로 방향을 알려준다. 그 많은 순례자들에게 일일이 ‘부엔 까미노(Buen Camino)!’ 하며 인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순례길의 주민들은 대개 한 두 번쯤은 이 길을 걸었으리라. 힘든 고행길임을 알기에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것이다. 이들의 미소 덕분에 짐의 무게도 잊고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저 멀리 아득히 언덕 위로 풍차들이 보인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야 저곳에 닿겠지!’라는 생각에 맥이 빠진다. 그러나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의 밀밭을 서서히 올라가는 완만한 경사길과 앞이 탁 트인 경치에 마음이 끌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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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검은 베레모를 쓴 독일 아저씨가 내 것의 배는 되어 보이는 큰 배낭을 메고 천천히 걸어가신다. 이 분의 사연도 궁금해진다. 7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적지 않은 나이에 말수가 적은 이 할아버지는 수비리 알베르게에서 만난 인연이 있다. 길의 끝까지 가면서 이 분의 사연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용서의 언덕에 오르니 순례자들과 개와 당나귀 등의 동으로 된 조형물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곳은 산티아고 길의 상징 중 사진으로 많이 소개된 유명한 장소다. 돌탑에는 스페인어로 ’ 별들이 바람에 따라 흐르는 길‘이라는 문구가 새겨 있다. 이 세찬 바람과 별들이라... 한겨울 설한에 세찬 바람 속에 별을 보며 방향을 찾아 길을 갔을 순례자들의 고행을 상상하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이 언덕은 ’ 용서의 성모‘를 모셨던 작은 성당에서 , 순례자 병원을 운영하던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성모에게 용서를 구하는 전통이 있었다 한다. 세월의 부침 속에 성당은 없어지고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용서(容恕, forgiveness)는 타인의 마음(心)을 내 마음(心)과 같이(如) 하는 것이다. 공자님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이겠느냐는 자공의 질문에 ’ 용서하는 것(恕)‘이라 하였다.

영어로는 ’ 타인이 내게 진 빚을 탕감해준다 ‘라는 뜻도 있다. 용서를 구하는 것보다는 용서를 해 주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시애틀 일행을 만났는데 J가 무릎이 아파 걷기를 포기하고 부르고스로 점프해서 쉴 예정이라 한다. 안타깝지만 욕심부릴 일이 아니다. 가지고 있던 무릎 보호대를 하나 내어 주었다. 용서의 언덕과 어울리는 한 장면이 연출된 것은 아닌 지 그저 나 혼자 속으로 생각해 본다. 바람이 심해서 큰소리로 말을 해도 말소리가 다 날아가 버린다. 고마워하는 이들 부부의 마음을 눈빛으로 안다. 언덕을 내려가며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늘어난 짐의 무게를 갑자기 실감하며 아직도 남은 거리를 생각하면 기운이 좀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원의 오솔길과 강변길을 걷고 다리도 건너며 이제는 익숙해진 나바라의 풍경에 무한한 위안을 받으며 '여왕의 다리(Puente la Reina)'를 향한다.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는 ‘여왕의 다리’라는 이름의 지명처럼 아담한 강과 로마 시대의 다리가 많이 있는 곳이다. 수비리(Zubiri)가 바스크어로 ‘다리의 마을’이란 뜻인데, 이곳도 다리(Puente)가 많다. 이곳 건축물들은 팜플로나의 고풍스러운 중세도시의 모습과는 다른 인상이다. 건축 연대가 중세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으로 변화해 온 다양한 건축물들의 모습이 아담하고 휴양지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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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숙소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좀 지친 상태이지만 다시 숙소를 찾아가 보니 에어비앤비 느낌의 예쁜 곳이다. 가정집을 알베르게로 개조한 것 같다. 원룸의 이층 침대이다. 넓은 아래층은 주방과 로비이고 이층으로 난 계단의 목조 구조의 이 집이 마음에 든다. 물론 욕실은 공유다. 늦은 시간이고 식당을 찾는 것도 어려워 아내가 씻는 동안 근처 슈퍼에서 먹을 것을 좀 샀다. 유명한 리오하 포도주 가운데 진열된 것 중 가장 비싼 것으로 사서 마셨는데 그만 너무 욕심을 내서 한 병을 다 먹고 말았다. 그동안 수면 부족과 장거리 걷기에 지치고 긴장된 몸과 마음이 죽음처럼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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