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7. 일)
*. 수비리(Zubiri)– 팜플로나(Pamplona)(20.5km 8시 30분 출발- 16시 30분 도착)
<상세 일정 : 수비리(Zubiri 0.0 km) → 일야라츠(Ilarratz 2.5km) → 에스키로츠(Ezkirotz 3.5km) → 라라소냐(Larrasoana 5.5km) → 아께레따(Akerreta 6.0km) → 수리아인(Zuriain 9.5km) → 이로츠(Irotz 11.0km) → 사발딜까(Zabaldilca 12.0km) → 아를레따(Arleta 13.5km) → 뜨리니닷 데 아레(Trinidad de Arre 15.5km) → 비야바(Villava 16.5km) → 부를라다(Burlada 17.5km) → 막달레나 다리(Puente de la Magdalena 19.0km) → 팜플로나(Pamplona 20.5km)>
영국인 청년, 40대의 아일랜드 여성, 젊은 한국 여성과 대만 여성 등과 수비리(Zubiri ) 알베르게에서 6명이 한 방에 머물렀습니다. 이층 침대 4개가 들어와 있는 공간은 너무 좁아 옆 침대와 공간이 거의 없어 잠들기 전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염려는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아침에 일어 나니 나의 코 고는 소리에 모두 잠을 설쳤는지 표정들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영국인 청년은 새벽이 되자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 버리고, 옆의 아일랜드 아주머니는 아침 인사에 답을 하지 않습니다. 혼자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미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한때 어머니께서 주무실 때 코를 고시는 소리가 싫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에게도 그런 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노화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고, 점점 나이 들어가는 것에 주눅이 듭니다. 거울에 비친 눈이 처지고 볼이 늘어진 피부를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려 하고, 애써 괜찮은 척해도 어쩔 수 없는 세월 앞에 무기력해지고 자신감도 떨어집니다.
다소 우울한 기분을 가지고 길을 나섭니다. 어제 지나온 라 라디아 다리를 다시 건너 가리비 이정표를 쫓아가니 숲 속 오솔길이 나옵니다. 이른 아침 새소리는 더욱 상큼하고, 나뭇잎과 풀잎이 이슬로 촉촉이 젖어 있습니다. 조금 걸으니 오른편으로 높은 굴뚝을 가지고 있는 마그네슘 공장이 보입니다. 어제 내리막길에 깨진 돌들이 많았는데, 이 지역은 유난히 이 돌들이 많은 지형인가 봅니다.
산등성이로 가는 길에도 자갈이 많이 있어 긴장하며 걷습니다. 어제도 무리해서 걸어 다리와 허리가 여기저기 욱신거렸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침이 되니 거뜬해집니다.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는 컨디션으로 회복이 되어 감사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저 멀리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보이고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오솔길에 찔레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활짝 핀 꽃들도 겨울에는 바짝 말라 있다가 봄이 되어 다시 탄생하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꽃들처럼 나의 몸도 아직은 그런 치유와 회복의 힘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밤 죽을 듯이 아팠다가도 두 다리로 버티고 두 발이 땅을 밟을 때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니 말입니다.
7시 30분에 시작된 오늘의 여정은 식당 찾기가 하나의 과제로 더 부과되었습니다. 일요일인지라 문 연 카페테리아가 없습니다. 허기를 참으며 걷는데 경치는 예술입니다. 해발 550m 정도의 상대적으로 낮은 고원 지대라 그런지 강폭이 넓고 물살은 빠르고 영혼처럼 맑습니다. 강 주변에 캠핑 온 사람들의 고기 굽는 냄새가 식사를 못 한 우리를 더욱 허기지게 하지만 그들도 풍경이 되어 보기 좋습니다. 그 캠핑장을 지나 언덕을 오르니 트럭 노점상 아저씨가 과일을 팔고 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1유로짜리 오렌지는 내 인생의 맛이 되었습니다.
17.5km을 걷고 만난 도시 부를라다(Burlada)에서 스패니시 오믈렛과 맥주로 겨우 요기를 하고 기운을 내봅니다. 우란가 공원의 담을 끼고 아르가(Arga) 강가를 따라 걸으니 부를라다(Burlada)의 오래된 길을 걷게 됩니다. 도로 건너편에서 같은 알베르게에서 잠을 잔 H와 B가 큰 소리로 우리를 부릅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뛰어가 보니, 우리의 점심 식사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던지요. 길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더그’ 일행이 다가옵니다. 함께 길을 잡아 걷습니다. 드디어 팜플로나 성의 입구 수말라까레기 문(Portal de Zumalacarregui)이 나오고, 고딕 양식의 중세 다리인 막달레나 다리(Puente de la Magdalena)를 건넙니다. 더그 일행과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는 거대한 팜플로나 성에 들어갑니다.
중세풍의 문을 열고 나오던 초등학생 정도의 장난기 넘치는 남자아이들이 ‘꼬레아?’하며 아는 척을 합니다. 생각지 못한 환영 인사에 기분은 좋습니다.
저녁은 팜플로나의 이루나(IRUNA) 식당에서 합니다. 1888년부터 문을 열고 있는 식당으로 거대한 실내와 옥외 테라스의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명성에 걸맞게 빈 테이블이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만족할 만한 식사를 마치고 뒤편의 헤밍웨이 방으로 갑니다. 팜플로나가 일부 배경이 된 헤밍웨이 1926년작 <해는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와 작가가 머물렀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드리드의 보틴이라는 식당보다는 훨씬 고풍스럽고 앤티크 하게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성당의 시보가 언제부터인가 들리지 않다가 5시 시보를 듣기 전 눈을 떴다. 늘 너무 이른 시간이라.. 조용히 침대에서 스트레칭하고, 화장실 그리고 짐을 정리한다. 오늘부터는 짐을 매일 찾고 부치고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팜플로나 우체국에서 콤포스텔라 우체국으로 보낼까 한다. 대부분 까미노가 시작되기 전 서울과 파리에서 필요했던 옷가지들이다. 이제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어젯밤 8순은 되어 보이는 영국 남부 출신 아저씨에게 와이파이 비번 넣는 것을 도와주었다. 오래전 왔던 길을 다시 오게 되었다 하는데, 그 사연이 궁금하다.
6시 40분인데 우리 방 사람들은 아직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곤하게 코를 골던 순옥씨 때문에 다들 잠을 설친 것은 아닐까..? 그저 자장가로만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간단한 인사 후에 침실을 공유한다는 것이 산티아고 길의 순례자가 되어 가는 특별한 감성 훈련 과정 중 하나이리라. '순례자(The Pilgrimge)'에서 페트루스가 코엘료에게 했던 것처럼...
자! 이제 셋째 날 일정을 시작하자.
어제저녁에는 좀 힘들었다. 이 힘듦은 몸의 피로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 소통의 한계 등에서 오는 긴장감도 한 몫을 한다. 사람들이 즐거움을 주기도 신경을 쓰이게도 한다. 날이 갈수록 적응이 될 것이다.
수비리(Zubiri)는 헤밍웨이가 머무르며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를 쓴 곳이라는 사실도, 끔찍하게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방문지였던 곳이 오늘의 기착지 팜플로나(Pamplona)였다는 사실을 이곳에 오며 알게 되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의 배경 도시 론다와 마드리드의 음식점 ‘보틴(Botin)' 등에서 그의 체취를 느낀 적이 있었는데,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한 그는 스페인을 무척이나 사랑한 이였 것 같다. 삶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이 스페인 사람들의 기질과 많이 닮았던 것일까?
그는 “우리는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해서 우리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You can't get away from yourself by moving from one place to another.)”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스페인이라는 장소가 그 자신의 영혼을 알 수 없는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킬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나 보다.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익숙함보다 생경함 속에서 묘한 긴장과 흥분을 즐기는 것이 여행의 본질인데 이 또한 근본적인 생의 고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가 될 수는 없었으리라.
이른 아침 어제 저녁 인상적이었던 광견병의 다리(El Puente de La Rabia)를 다시 건넌다. 신선한 강물과 숲이 주는 상쾌함에 수면부족 상태의 몽롱함에서 조금씩 정신이 깨어난다. 재잘대는 새소리도 한몫을 한다. 그런데 뜻밖에 숲길을 나오면서 보이는 마그네슘 공장이 산뜻한 출발 분위기를 깬다. 이 지역이 마그네슘의 산지인가 보다. 사람 사는 도시가 신비로운 자연환경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산길을 오르고 내리며 돌이 많은 길에서는 조심해서 걷는다. 돌길이 끝나고 조붓한 오솔길이 수고한 몸을 위로해준다. 우리는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을 가고 있다. 고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기온도 오르면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봄꽃들이 기지개를 켠다. 수량이 풍부한 짙고 푸른 강물도 힘차게 흐른다.
우리는 이른 봄 서울을 떠났다. 스페인 동북부 바스크 땅은 피레네 산맥의 지리적 영향권 안에 있는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이다 보니 봄이 늦게 오는 모양이다. 우리는 봄이 오는 길목을 걷고 있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강폭이 넓어지는 지점에 유원지가 나온다. 휴일을 즐기는 캠핑족들이 점심으로 바비큐를 하는지 연기가 피어오르고 고기 타는 냄새가 시장기를 자극한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식당은커녕 열려있는 작은 카페 하나 만나질 못하고 계속 걸었다. 캠핑장에 화장실이 있어 볼 일을 보고 다시 언덕길을 올라 조금 걷다가 중년 아저씨 한 분이 사과와 오렌지 등 먹을 것을 팔고 있다. 우리는 1유로를 주고 큼지막한 오렌지를 하나 사서 나누어 먹었다. 이처럼 즙이 많고 향이 가득한 오렌지 맛은 정말 처음이다. 오렌지 반쪽으로 기운을 내서 다시 걷는다.
출발 이후 오렌지 반쪽만으로 버틴 위장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질 때쯤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팜플로나 외곽의 주거지일 것이라 짐작하며 기운을 내 십분 정도를 더 걸어 가니 팜플로나 전 약 5킬로미터 정도 지점에 있는 부를라다(Burlada)라는 휴양 도시다. 규모가 매우 큰 호스텔 아래층의 실내와 연결된 야외 식당에서 현지인들이 식사하며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다. 담배와 맥주를 느긋하게 즐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이제 가자고 가끔씩 컹컹 짖는 개는 아랑곳 않고 담소를 즐긴다. 이 지역에는 유독 독일산 셰퍼드종이 많다. 우리도 옥외 테이블 한편에 자리를 잡고 주문이 쉬운 스패니쉬 오믈렛과 맥주를 마신다. 꿀맛이다. 몸에 흡수가 고스란히 되는 것 같다.
다시 배낭을 메고 스틱을 집어 들고 현지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일어선다. 공원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시가지가 나온다. 도로의 조가비 표지를 따라 걷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첫날부터 연속 같이 잠을 잔 대만 친구 B와 그의 한국 친구 H이다.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한국 친구들이 더 있는데 H가 파악하기로는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다섯 명이라고 한다. 걷다 보면 더 만날 수도 있다면서 한국 친구들의 단체 카톡방에서 우리 이야기를 하며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을 걱정했단다. 사실은 우리가 그대들을 걱정했다고, 우리 걱정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이들이 점점 멀어지고 몸이 노곤해져 거리의 벤치에 앉아 거의 졸고 있는 상태였는데, 시애틀 친구들과 이름을 기억 못하는 캐나다 아주머니가 나타난다. 이제 자기들 예약한 숙소까지 1.9 킬로미터 남았다고 S가 이야기하자 유쾌하게 D가 ' 마일'이라 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멋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교위에서 12세기 이 다리가 건축되어 있다고 쓰여 있는 것을 J가 읽는다. 옆의 S는 내게 한국어로는 안 적혀 있다고 놀린다. 회전 교차로를 지나는데.. 빨간불에 S가 건너자.. D가 ‘미국 놈들이란..’하고 핀잔을 주며 나를 보고 웃는다. 첫날부터 만난 사이라 이들과는 이제 서로 농담을 편하게 할 만큼 격의가 많이 없어진 듯하다.
세비야나 그라나나에서 본 알카사르다. 유난히 거대한 성벽이 앞을 가로막고 해자에 놓인 다리에서 앞서 있던 캐나다 아주머니가 서두르지 않으면 다리를 거두어 올리겠다고 위협한다.
지치고 낯선 길 위에서 얼굴 아는 이를 만난다는 것이 반갑고 무척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어의 장벽은 애정과 진심으로 돌파하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는 팜플로나에 입성한다. 성의 입구인 수말라까레기 문(Portal de Zumalacarregui)을 지나고 고딕 양식의 막달레나 다리(Puente de la Magdalena)를 건넌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건너편 건물에서 고개를 내밀며 ‘꼬레아?’라고 외치며 아는 척을 해 주는 어린 소년들의 환영 인사에 기분이 우쭐해진다.
숙소가 서로 달라 시애틀 일행과 헤어지고 알베르게를 찾아 짐을 풀고 산책을 나선다.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가 온 길을 돌아본다. 성 안에는 산책하기 좋은 예쁜 공원(Ronda de Pamplona Park)이 있다. 길을 물어 대성당이 있는 호세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녁을 먹을 이루나 식당도 찾아보고, 내일 짐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보내려면 우체국을 찾아 몇 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로마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어 로마네스크 양식과 프랑스식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공존하는 이 아름다운 팜플로나 성은 로마의 폼페이우스(BC106~BC48)의 군대 주둔지였고 이후에 무어인들이 지배할 때는 '반발루나'라고 불렀다. ‘폼페이우스’와 ‘반발루나’의 합성어 같은 ‘팜플로나’는 샤를마뉴(742~814)의 흔적도 있고, 나바라의 산초 3세(1000~35)가 나바라 대제국의 수도로 삼기도 했다. 1571년에 스페인 왕국의 펠리페 2세가 방어형 성채를 지었고, 1841년에 는 나바라 왕국의 수도였다가 이제는 스페인 나바라 주의 주도(州都)이다. 이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 역사적 배경을 지닌 도시가 팜플로나이다. 로그로뇨에서 유학한 한국인 젊은이 H는 이곳에 친구가 있다며 하루 더 머물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볼 것이라 했다. 광장도 돌아보고 식당과 우체국도 어렵사리 위치를 확인하고 숙소로 돌아가 씻고 다시 거리로 나선다. 저녁은 이루나(Iruña) 식당에서 하기로 한다. 이루나(Iruña)는 팜플로나의 바스크어 명칭이다. 옥외 테라스에는 빈 테이블이 별로 없다. 우리는 고풍 그 자체인 19세기에 지어진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헤밍웨이를 기념하여 꾸며진 방으로 가 그의 열정적인 삶과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선하고 큰 눈과 하얀 턱수염의 그를 추억하며 시간 여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