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이와 일이 Aug 13. 2022

25화 가우디를 만난 날(23일 차)

(2022.4.16. 토)

*. 산티바네스 데 발데이글레시아(Santibanez de Valdeiglesias)-아스토르가(Astorga) (12.0Km 8시 00분 출발- 12시 00분 도착)            

 < 상세 일정 : 산티바네스 데 발데 이글레시아스((Santibanez de Valdeiglesias 0.0km)성 또리비오의 십자가(Crucero de Santo Toribil 6.5km) 산 후스또 데 라 베가(San justo de la Vega 8.0km) 아스토르가(Astorga12.0 km) >


< by 개미(옥이) >


  우연은 늘 뜻밖의 일을 만들어 냅니다. 산티 바네스 데 발데이글레시아(Santibanez de Valdeiglesias)주인아저씨는 딸 둘을 데리고, 허름한 알베르게를 운영합니다. 8유로 숙박에 저녁은 12유로입니다. 빨래를 걷지 않으면 이슬에 젖는다고 걱정해주고, 뜨거운 물을 달라는 말에 온수 스위치를 누르고 손으로 머리 감는 흉내로 의사표시를 합니다. 부르고스 기사 사진을 보여주니 환하게 웃으며 ‘엄지 척’을 합니다. ‘엄지 척’은 만국 공통 언어가 된 듯합니다. 히터가 없는 알베르게인데 추울까 봐 살며시 전기난로를 가져다 놓고 또 웃습니다. 아침으로 나온 카페 콘레체 그란데가 식을까 봐 여러 번 보울에 손을 갖다 대며 어서 먹기를 재촉합니다.

< 알베르게 주인장 아저씨 >


 2년간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 버텼을까 싶습니다. 스페인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 이 까미노 길에 큰 관심을 갖고 정책적 지원을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공립(시립) 알베르게를 시골길의 작은 마을에도 하나씩은 운영하는 데 사립 알베르게들도 공립 알베르게에 준하여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숙박비가 싸서 이 길이 유럽에서 인기 있는 트레일이 되었다 합니다. 코로나 전에는 아시아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그중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합니다. 이곳 알베르게와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하던 카페나 레스토랑에 대한 지원을 스페인 정부에서도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무튼 마음이 짠합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부지런한 순례자들이 들어옵니다. 막 도착한 스페인 아저씨는 카탈루냐 저 동쪽 끝에서 피스테라 서쪽 끝까지 간다고 합니다. 40일을 걸어왔고, 앞으로 10일을 더 걸어 도착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다가 아니고 세상의 길은 매우 다양하고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배낭 무게에 유난히 힘들어했더니 남편이 짐을 더 많이 넣겠다고 합니다. 무거울 것 같아 걱정하니 ‘짐은 마음으로 지는 겁니다’라고 한마디 하며 묵묵히 앞서 갑니다. 오랫동안 염원을 해오던 터에 조기 은퇴하면서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까미노 순례길입니다. 치열한 경쟁의 수레바퀴를 살아가는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고, 차분히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 동기였지요. 남편은 그런 저에게 ‘왜 굳이 그 길이냐?’라며 만류했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임플란트 치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꺾여 버린 새끼발가락, 거기에 정년퇴직 등 차분히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오로지 고집을 꺾지 않는 아내의 ‘산초 판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함께한 까미노 순례길이지요. 까미노 순례 길 후반에 들어선 지금은 생장부터 깍지 않은 더부룩한 수염, 땀에 젖어 냄새나는 셔츠, 주렁주렁 매달린 무거운 배낭 등 그럴듯한 순례자 분위기입니다. 거기에 하루하루씩 걷는 날짜가 늘어나는 만큼 길 위에서의 사색을 즐깁니다. 이 또한 까미노가 준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이 까미노 순례길은 사람들이 만든 길이고,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고, 또 앞으로도 걸어갈 것입니다. 이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이 길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이 까미노 순례길을 더욱 풍부하게 할 것입니다.


< 산티 바네스 산의 천사 >

까미노 순례 하루 중에서 오전은 인생의 청년기에 속합니다. 걷는 걸음걸이에 힘이 넘쳐 어느새 산티 바네스 산의 정상에 올랐더니, 천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생기고 멋진 집시 아저씨가 천막으로 얼기설기 간이 숙소를 지어놓고, 마당에 돌로 아기자기 멋을 낸 쉼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삶은 계란, 오렌지, 사과, 호두, 커피 등 다양하게 먹을 간식거리를 차려 놓고 알아서 즐기라고 합니다. 광활한 산 정상에서 지나가는 순례자들과의 만남을 즐겨하는 이 남자의 삶이 참 멋지게 느껴집니다. 덕분에 오렌지 주스와 삶은 달걀을 먹고 힘을 내어 또 걸음을 걷다 보니 산 내리막길에 성 또리비오의 십자가(Crucero de Santo Toribio)가 세워져 있습니다. 마을을 내려다보고 세워진 십자가의 형상에 자못 숙연해집니다.


 내처 걸음을 재촉하여 산 후스토 데 라 베가(San justo de la Vega)를 지나 아스토르가(Astorga)에 도착합니다. 진입할 때 파란색 철제 육교가 나타납니다. 육교는 매우 완만하게 구불구불되어 있어 휠체어 탄 사람이나 자전거를 탄 사람도 쉽게 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묻어나 흐뭇합니다.


 로마시대의 유적이 있는 아스토르가(Astorga)에는 볼거리가 많습니다.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몰려 광장의 야외 바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대성당 건물은 중앙 예배실 외에 13개의 예배실이 있어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찾아간 가우디의 주교관은 역시 가우디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멋진 곳입니다. 건축도 멋지지만, 진정 멋있는 것은 가우디의 죽음입니다. 전차에 부딪혀 치명상을 입은 그가 빈민들을 구제하는 병원에서 죽어가며 했던 말입니다.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거지 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 주교 궁에서 죽음마저 천재적인 가우디를 만난 날입니다.

<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 궁>


  아스트로가(Astorga)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바람에 더 걸어 다음 마을까지 가려던 계획을 또 수정해야 합니다. 알베르게를 찾던 중 또 반가운 얼굴이 보입니다. 속옷 사건의 주인공이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오늘 알베르게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빨리 서두르라고 합니다. 부랴부랴 공립 알베르게로 향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순례자들이 속속 들어오고 체크인 차례가 되어 우리도 침대 2개를 요청합니다. 순례자 카드에 도장을 받고 배정받은 방으로 갔는데, 아니 이게 웬일일까요. 2층 침대가 1개만 있는 독방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자 하고 들어간 이곳에서 우리는 환호합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까미노의 두 번째 기적이 우리를 이 길의 끝까지 무사히 인도해 줄 것이라고요.......          




< by 베짱이(일이) >


  숙소 산티바네스 데 발데이그레시아스(Santibanez de Valdeiglesias)의 아침 식사는 ‘카페콘레체   그란데(cafe conrech grande)가 문자 그대로 큰 공기로 하나다. 그런데 아내가 식당에 아직 나오지 않자 주인장 노인은 안절부절 아내의 커피잔에 손을 대 보고 식기 전에 어서 나왔으면 하는 제스처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내가 민망할 지경이다.  

이전 마을에서 일찍 출발한 순례자들이 몸을 녹이려고 들어 온다. 우리 숙소에 커피라도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있어 반갑다.

 이들 중 목적지가 피스테레(Finisterre)인 분이 있는데 우리가 함께 걷고 있는 까미노 친구들 중 피스테레나 무시아(Muxia)까지 가는 이들이 꽤 있다. 이들의 일정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많이 흔들린다. 피스테레(Finisterre)는 대서양과 만나는 땅(terre)의 끝(finis)이고, 무시아(Muxia)야고보와 마리아의 기적으로 알려진 성지이며 자연 풍광이 좋고 로마 시대의 유적도 은 곳이어서 우리도 내친김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 같아선 산티아고 이후 일정을 계획한 것이 있어 일정을 늘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산티아고 도착 이후에도 3주간의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고스(Burgos)에서 구겐하임 미술관(Museo Guggenheim Bilbao)이 있는 빌바오(Bilbao)에 다녀오는 일정도 포기했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이년 이상 감염병 때문에 순례객들이 적어 우리 주인장 부녀가 어떻게 버티었을까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했었다.      

  어제는 18킬로를 걷고 나의 동반자가 너무 힘들어해서 멈추었었는데 바로 그곳이 이곳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짧은 만남이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는 이들이 있다. 재회의 가능성을 남겨둔 채 주인장과 깊은 눈인사 후  ‘부엔 미노’로 작별한다.     

  

< 오르비고 마을 >

한나절 걷고 도착한 오르비고(Orvigo) 마을은 너무 예쁘기도 하고 벌써 지친 몸을 생각해 하루 쉬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아직 목적지까지 가려면 지금 온 만큼은 가야 한다. 멋진 강과 다리와 강변이 있는 중세풍의 분위기가 있는 이런 곳에서 하루 정도 쉬어 가는 여유를 가질 수는 없는 걸까? 그런데 문제는 이제 몸이 지쳐 가니 자꾸 일찍 쉬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침에는 힘이 나지만 두어 시간만 걸으며 지친다. 쉬었다 다시 길을 나서지만 쉬고 싶은 순간이 점점 당겨지는 것이다. 이래서야 마지막 열흘을 갈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든다. 다행히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지도 관절 통증이나 감기 증세도 없는 것은 다행이지만 산티아고 시작 전의 열흘간을 포함해 한 달 이상의 노독(路毒)이 쌓여 몸에 전달되는 것 같다.  

힘들면 쉬어가기로 했지만 너무 자주 쉬게 되면 다시 일어나기 어려워짐을 알기에 배낭을 다시 어깨에 올리고 스틱을 쥔다. 예쁜 골목을 빠져나와 갈림길에서 갈등하다 찌푸린 이모티콘 쪽으로 가 보기로 한다. 왜 찌푸린 길인지 확인해 보려는 나의 엉뚱한 오기 같은 것이 작용한 것이다. 아내도 아무 생각 없이 내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내가 온 길을 가 보지 않은 길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치고 힘든 여정에서 선택의 후회까지 보태지면 피로가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선택한 책임을 상대에게 미루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의식적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나는 아내가 힘들어할 때를 이제는 잘 알아차린다. 지난날 많은 순간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내를 기다려주지 못한 과오가 있다. 재미난 대화의 소재도 고갈되고 노래 부르기도 한계 효용의 법칙이 적용될 때쯤이면 더 이상 강행군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피레네를 넘을 때 해가 떨어지기 전 도착하려면 일정한 속도를 내야 했고, 메세타의 비바람 속에서 쉴 곳이 없어 마냥 걸어야만 했다. 이제 쉴 수 있고 쉬고 싶은 마을이 많은 구간에서는 짐을 내려놓고 싶은 유혹을 이겨야 한다.


 아스또르가(Astorga)까지 가는 길에서는 까미노 친구들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낯선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거리의 야외 식당가를 지나는데  다리를 쉬고 있는 순례자들 사이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아르헨티나 아저씨로 우리 둘 사이에서 불리는 분인데 사실은 남미계 LA시민이다. 몸매가 날씬하고 키는 작지만 아주 찰지게 혼자 걷는 분이다. 그는 부르고스에서 헤어진 D와 통화를 했는데 그들 일행 중 한 사람이 코로나가 확진되어 출국이 늦어졌다는 소식을 전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코로나 감염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 눈치인데, 출국 전 공항에서 확진된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난감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는 이곳 숙소를 예약 안 했으면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숙소 예약을 미리 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곳은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고 순례자들도 많이 머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스또르가의 공립 알베르게는 성벽에 위치한 전망 좋은 곳이다. 우리는 운 좋게 이 층 침대가 있는 독립실을 배정받았다.  침대나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대신 뜻하지 않은 횡재(?)였다. 짐을 부리고 거리로 나선다.

 로마 시대의 목욕탕을 비롯한 주거 유적이 전시되어 있는 야외 박물관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줄지어 관람을 하고 있다. 이 줄 뒤에 서서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현지의 어린아이들과 함께 둘러본다.   대성당과 가우디의 주교 궁도 관람한다. 주교 궁은 가우디가 이곳에 와 보지도 않고 자신의 설계도면을 보내어 당시 주교가 이 사택을 지은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본 가우디의 숨결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내부 관람을 마치고 야외 공원으로 나오니  황혼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스토르가 거리의 건물에는 다양한 대형 벽화들이 많다.

2015'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 표시가 붙은 음식점에서 연어 샐러드와 하몽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드물게 보이는 동양인에 대한 절제된 관심의 눈빛도 반갑고 고마웠다.  


알베르게에는 오늘 길에서 만난 젊은 독일인 친구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영국 형제들을 만나 반가웠다. 낯선 순례자들도 많이 있는데 개방된 부엌에서 각자의 저녁을 해 먹는다. 우리도 오랜만에 조리 음식을 사다가 이들과 어울려 식사를 한다. 전망이 좋은 야외 테라스에서 아스또르가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와인과 맥주를 나누어 마신다. 아내는 오늘도 어김없이 일기를 쓰고 있다. 글을 써서 카페에 올리는 것이 숙소 도착 이후 자기 전까지 과업인지라 아내는 하루 두 번 이 길을 걷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나와 저녁 시간을 정답게 나누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순례자들과도 어울릴 시간이 적다.

  산티아고 길에서의 감회를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려는 아내의 목표를 인정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아스또르가(Astorga)의 밤이다.



이전 07화 24화 조금 느리게, 천천히......(22일 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