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9.화)
*. 폰페라다(Ponferrada)-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22.5Km 8시00분 출발- 15시00분 도착)
< 상세일정 : 폰페라다(Ponferrada 0.0km) → 꼼뽀스띠야(Compostilla 2.0km) → 꼴룸브리아노스(Columbrianos 4.5km) → 푸엔떼스 누에바스(Fuentes Nuevas 7.5km) → 깜뽀나라야(Camponaraya 9.5km) → 까까벨로스(Cacabelos 15.5km) → 삐에르스(Pleros 17.5km) →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22.5km) >
작열하는 태양을 온 몸으로 받으며 지쳐 들어온 폰페라다(Ponferrada)를 떠납니다. 도심의 끝자락에 위치한 템플 기사단성이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합니다. 굉장히 오래된 원형을 보존하고 있고 해자의 흔적도 일부 있습니다. 어김없이 성벽 아래 정원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걸로 보아 야외 카페테리아로 오후가 되면 사람들로 북적될 것입니다. 늦으막히 하루를 시작하는 전통에도,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른 등교를 합니다. 한 여학생은 담배를 피워물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올라’ 인사를 하네요. 도심을 빠져 나오니 콘코르디아 공원 옆으로 제법 폭이 넓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공원을 빠져 나와 교차로를 지나니 빌라 촌이 나오고 초등학생이 엄마와 함께 화초를 심은 화분을 조심스럽게 들고 갑니다.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어제 배낭 사건을 계기로 20일을 지고 오다 이틀을 보내고 마음이 흔들려 남편에게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가자 했더니, ‘그 또한 집착’ 아니냐며 그냥 보내자 합니다. 사실 이틀을 어깨가 짐에서 벗어나 걸을 만 했거든요. 먹고 싶었던 떡에 고물 얹어준 격으로 마음의 짐을 덜고 어깨의 짐 일부를 보내기로 합니다. 10년 전 네팔에서는 짐꾼의 도움 없이 짐을 온전히 메고 갔었지요. 짐꾼들이 할 일을 가로챈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눈치 없이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까미노에서 짐 보내는 것을 합리화하려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짐의 무게는 각자의 몫이겠지요.
폰페라다 도심을 나와 차도 옆길로 주로 걷습니다. 불편한 걸음을 좀 해야 하는 구간도 있고 작은 마을을 지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평탄한 길이 이어져 속도를 냅니다. 콤포스티야(Compostilla), 콤브리아노스(Combrinos) ,푸엔테스누에바스(Fuentes Nuevas) , 와인공장(?)도 지나고 있습니다. 길은 계속 아스팔트로 자동차가 자주 다녀 불편합니다.
도로 옆 밭에 밀밭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진 비바람에 이리저리 꺽여 흔들리던 밀이 허리춤까지 자라고 밀이삭까지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까미노 순례길을 걸으며 하늘과 태양과 대자연과 호흡하면서 생각의 지평을 넓혀 가고 있는 것처럼 밀도 성장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캄포나라야르(Camponariare)를 지나쳐 카카벨로스(Cacabellos)까지 15.3Km를 단숨에 걸었습니다. 두 번째 마을 콤브리아노스에서 게리와 써리스 부부를 5일 만에 다시 만납니다. 까미노 시작 때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은 페이스로 걷고 있는데, 이 부부 걸음 속도가 엄청 빠릅니다. 그래서 같이 보조를 맞추다보니 이렇게 많이 와버린 것이지요..
더 이상은 무리다 싶어 점심도 먹을 겸해서 마을 중간에 있는 카페에 들어갑니다. 화장실을 물으니 고장이라며 옆집에 가라 합니다. 어이가 없기는 하나 이곳 스페인에서는 통합니다. 혼쾌히 허락해주는 상점 주인에게 고개 숙여 ‘그라시아스’하니 특유의 환한 미소로 웃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첫 인상때 가졌던 불편한 마음을 일거에 날려 버릴 만큼 맛이 있었습니다. 현지식당 중 맛집인가 봅니다. 가끔 순례자들이 몰려 있는 초입의 식당을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오면 어쩌다 이런 행운도 있습니다.
드디어 산티아고까지 198.5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기쁨의 환성이 터져 나옵니다. 까미노길 순례는 재미있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장을 넘기고, 다음이 궁금해 빨리 읽다 보니 벌써 후반까지 온 것이지요. 이 책이 다 끝나면 아쉬울 것 같은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아껴 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지금 까미노 순례길이 딱 그렇습니다.
이제 오늘 걸어야 할 길이 7km정도 남았습니다. 도로로 이어지는 길이 계속 되더니 포도밭 사이로 난 자갈길로 이어져 발튀에 데 아리바(Vatieiie de Ariba) 마을에 도착합니다. 이 마을을 지나며 폐허가 된 빈집을 어제에 이어 많이 봤습니다. 스페인 경기가 한동안 안좋기도 하였고, 코로나 펜데믹으로 순례자들 마저 2년 동안 발길이 뚝 끊긴 여파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래저래 마음이 아파 사진도 못 찍고 마음에만 담습니다.
마을을 벗어나 평원같은 포도밭이 펼쳐진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포도밭 가운데 소나무 두 그루 사이에 그림 같은 하얀 집이 보입니다. 풍광은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으나 속상한 마음은 가시지 않습니다.
드디어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가 보입니다.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서쪽에서 바람이 몰아 칩니다.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들어온 마을 입구에 아주 오래된 산티아고 성당이 보입니다. 조금 더 걸어오니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성이 일부는 허물어진 형태로 우뚝 솟아 있고, 아기자기한 집들이 제법 많은 산장 같은 마을입니다. 이곳에서 스페인 민박도 촬영했다고 하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 마을 구경은 내일로 미루어야 하겠습니다.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근처 수퍼에서 포도주도 한 병 사고 남편이 좋아하는 치즈와 라면도 끓여 먹으며 즐깁니다. 영국 형제 분들, 조금 까칠하신 프랑스 부부와 키친 테이블에서 각자의 취향대로 식사를 합니다. 젊은 프랑스 커플과는 피니스테레와 호카곶 이야기를 하면서 엔리케 왕자와 한 때 포르투갈의 영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느 산골 휴양지의 아늑한 분위기가 나는 정말 추천하고픈 알베르게입니다. 우리보다 며칠 전 다녀간 한국청년도 후기를 남겨 두었네요.... 모처럼 편안한 내집처럼 추운 저녁을 따뜻하게 보냅니다. 내일 일정은 28Km로 막바지에 1,330m를 올라가야 하는 길이라 걱정이 되나, 해낼 수 있겠지요......
아침의 폰 페라다(Ponferrada)는 신선한 기운을 뿜으며 일터와 학교로 향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덕분에 순례자들의 몸과 마음도 가뿐하다.
폰 페라다(Ponferrada)의 지명은 라틴어 폰스 페라타(Pons Ferrata)에서 유래했는데 ‘철로 된 다리’라는 뜻이다. 1082년 오스문도(Osmundo) 주교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을 가던 도중에 실(Sil) 강에 다리를 세운 데서 생긴 이름이다.
한때 스페인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1980년대 말에 많은 광산이 폐광되어 광업이 쇠퇴했고 현재는 관광업과 농업(과일 및 포도주 산업)이 산업의 주를 이룬다.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로마 제국 시대의 금 광산 유적인 라스메둘라스(Las Médulas)가 있다. (위키백과 참조)
12세기에 건설된 템플기사단의 성이 있는데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된 멋진 성이다.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난다.
어제 배낭 분실 사건으로 아내는 배낭을 원래대로 메고 가자고 한다. 600킬로미터를 하루도 쉬지 않고 걸어오느라 매우 지쳐 있어 무사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기 위해 짐을 반으로 줄인 결정은 한 것인데, 다시 원래의 짐을 지고 가는 것을 논의하는 것조차 심리적으로 지친다. 일단 며칠만 더 짐을 보내기로 아내와 잠정 합의를 한다.
오늘 200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하는 날이다. 걷는 날이 오래다 보니 이제는 오전부터 지친다. 4월 중순 이베리아 반도 중북부의 태양은 매우 강렬하다. 순례자들에게 점점 더워지는 날씨가 반갑지 않지만, 이 더위는 들판의 밀과 포도 같은 작물들과 온갖 생명들에게는 축복의 에너지임에는 틀림없다.
길을 걸으며 대지의 생명들이 언 땅속에서 숨죽이며 기다리다 하늘을 향해 생의 의지를 힘차게 과시하는 당찬 모습을 본다. 우리는 뭇 생명들의 성장의 시간 속을 걷고 있는 것이다. 순례길의 목적은 서로 달라도 이 길을 가는 사람들도 각자 성숙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고행(苦行)의 시간이기도 하고 견성(見性)의 시간이기도 하다. 생(生)은 고(苦)이고, 길도 삶이다. 고(苦)의 끝에서 락(樂)을 만날 수 있듯이 삶의 길에는 즐거움도 있다.
우주와 대지의 운행이 혹독한 고난의 연속임을 왜 모르겠는가? 눈보라 속에서 언 손을 번갈아 녹이며 스틱을 한 손에 몰아 쥐고 걸을 때, 비바람이 그치질 않아 비옷을 입고 바람에 떠밀리는 몸을 이끌고 고개와 허리를 잔뜩 숙이고 하염없이 걸을 때, 구름 속에서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춰주길 갈망하던 그 태양이었는데, 지금은 덥다고 원망을 한다. 거친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인간을 중심으로 합리화한 문명에 길들여진 연약한 나를 원망해야하지 않을까? 날씨는 흐린 날도 갠 날도 더운 날도 추운 날도 또 바람 불고 눈비가 오는 날도 있는 것을... 한 여름 찌는듯한 더위에 땡볕을 걸었을 수 많은 순례자들을 생각하며 힘을 내본다.
하염없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시간이 흐른다. 긴 시간의 정적이 깨진 것은 두 번째 마을 꼴룸브리아노스(Columbrianos)에 진입하며 G와 T 부부를 만나면서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이들도 우리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 걷고 있다. 여러 날만에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것은 서로 페이스가 다르고 하루의 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길에서 서로 한 팀이 되어 움직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래서 각자 걷고 길 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간혹 함께 먹고 마시고 동침하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맥주도 한 잔 하고 요기를 하며 좀 쉬기로 한다. 음식도 훌륭하고 분위기도 좋은 식당을 우연히 찾았다. ‘고(苦)-락(樂)’의 작은 고리 하나를 맺는 것이다. 이제 다시 고(苦)의 시간 속으로 든다.
얼마 가지 않아 198.5km 표지석을 지난다. 애써 담담한 듯 지나지만 마음 한켠에는 작은 감동이 인다. 이 길에서는 ‘100km’부터는 아껴 걷는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제부터 이 말의 의미를 새기며 마음을 다잡는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는 여름 휴양지로 이름난 곳 답게 깊은 계곡과 수려한 산세가 돋보이는 멋진 도시이다. 도로변 흰색 벽에 붉은 지붕을 한 예쁜 산장과 카페와 알베르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멋진 풍광을 즐길 여유도 없이 갑작스런 기상 변화로 비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진다. 예약된 숙소에서 몸을 녹이고 식사를 해야겠다. 오늘은 짐을 분실하지 않았다.
마침 개방된 주방이 넓직하게 마련되어 있다. 근처 수퍼에서 준비한 포도주와 저녁거리로 냉온탕을 오가며 지친 몸을 위로한다. 늘 일찍 출발하여 숙소에 자리를 잡은 영국 형제분들과 프랑스 커플이 먼저 식사를 즐기고 있다. 우리도 이들과 어울려 락(樂)의 순간을 즐긴다. 내일의 고(苦)는 내일의 락(樂)으로 위로받을 것이므로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침실의 창을 여니 깊은 계곡의 물소리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반가운 초승달이 산봉우리 위의 짙은 보랏빛 하늘 위에 운치 있게 떠 있는 밤이다. 산티아고 길 위에서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