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Sarria)의 아침도 비와 함께 시작합니다. 우비 입은 순례자들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모습입니다. 심지어는 대형버스를 대절하여 단체로 온 사람들도 있어 순례길이 시끌벅적합니다. 초보 순례자들은 이제 시작인지라 걸음도 빠르고 굉장히 의욕적으로 걷습니다. 반면 생장에서 시작하여 700km를 걸은 고참 순례자들은 느긋하고 차분한 발걸음입니다.
올드 타운으로 올라오니 시내가 한눈에 보이며, 무너져 한쪽 벽만 남은 성에 잡초만 무성합니다. 스위스 청년 렌초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큰 키에 붉은색 우비를 입고 거인 같은 모습으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한 5일 만에 만난 것입니다. “아름답지요?”를 연발하며 촉촉한 감성을 폭발시키는데, 참 귀엽습니다.
조금 올라오니 막달레나 수도원(Convento de la Magdalena)이 보이고, 그 앞에는 묘지가 있습니다. 수도원은 이사벨 여왕 시대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플라테레스코 양식 문과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양식의 회랑이 유명합니다. 알베르게도 겸하고 있어 많은 단체 순례자들이 성당문을 나서서 길을 떠나는 모습이 분주합니다.
그 길을 벗어나 오솔길로 오니 기차선로가 있고 두 갈래 길이 보입니다. 순례자들이 앞서가는 곳으로 뒤를 따릅니다. 이 지역은 물이 많은 지역으로, 푸른 초원에 돌담이 쌓인 목초지가 펼쳐있고 그 가운데 순례자가 걷는 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돌담 옆으로 큰 떡갈나무와 밤나무들이 있어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지고 돌담에는 초록 이끼가 비단을 두른 듯 끼어 있어 매우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중세 시대 배경인 영화를 찍을 법한 풍경입니다. 가끔 유럽 미술관에 들렀을 때 본 듯한 풍경화를 연상시킵니다. 베토벤과 괴테가 걸었을 법한 길 같기도 하고요...
그런 기분에 취해 4.3km를 오니 바르바델로(Barbadelo) 마을이 나오고 카페가 있어 잠시 쉬어갑니다. 사리아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는 지역이어서 그런지 지나는 마을마다 카페가 있습니다. 아침 식사도 할 겸 들어간 카페는 인산인해입니다. 기념품 숍도 겸하고 있어 그동안 걸어온 길의 지역 카페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까미노 순례길에서 맛을 들인 카페 콘레체를 먹고 있는데 앙증맞은 비옷을 입은 진우와 하람이, 큰 배낭을 멘 엄마가 들어옵니다. 이 까미노 순례길의 유명 인사들입니다. 하람이가 모처럼 한국 사람을 만나서인지 말문을 엽니다.
“어제요, 우리 가요.. 25km를 걸었어요.” 자랑스럽게 말하니, 옆에 있던 형이 한마디 더 합니다. “오늘은 22km를 걸어갈 거예요." 이 모든 결정을 아이들 스스로 하게 하고, 엄마는 따라간다 합니다. 다양한 기념품을 집었다 놨다 하며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는 모습은 천상 일곱 살 개구쟁이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어른도 힘에 부치는 그 먼 거리를 걸어 내고 있으니, 어제 툴툴 걸렸던 제가 몹시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이 길이 먼 훗날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이 되고 이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엄마의 인생도 그렇고요... 아이들이 식사를 하는 것을 보며 다시 길 위에서 만날 것을 기약합니다.
8세기에 지어졌다는 아주 오래된 성당이 보여 들어갑니다. 아주 작은 성당입니다. 성당 묘지도 있습니다. 정문 문양이 비바람에 닳아 희미해진 고색창연한 성당입니다. 무신론자인 남편은 “왠지 작은 성당에서 기도하면 하느님이 잘 들어주실 것 같다"라고 합니다. 이유인즉 큰 성당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 시끄러워 기도 소리가 하늘에 닿지 않을 텐데, 사람이 적은 예배당 기도 소리는 잘 전달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성당 분위기입니다.
길게 이어진 상쾌한 숲길이 만들어 내는 그늘 사이를 걷기도 하고, 오르막을 살짝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며 걷는 이 길은 소의 분비물 냄새도 없고 정말 걷기에 편안합니다. 마냥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길가마다 표지석으로 남은 숫자를 알려줍니다.
드디어 표지석에 100km가 보입니다. 저 경계석을 넘어서면 두 자릿수로 줄어들게 됩니다. 감격의 순간을 뒤에 오는 남편과 함께 나누고 싶어 기다립니다. 표지석 앞에 바르셀로나에서 단체로 오셨다는 노인분들이 앉아 쉬고 있다가, 우리 둘의 사진을 찍어 주고는 핸드폰을 들고 가버리는 장난을 하시는 모습에 한바탕 웃습니다.
거리가 줄어들수록 걸음걸이가 느려집니다. 이 순간을 천천히 즐기고 싶은 마음, 적당히 시원한 날씨, 비가 갠 후 맑은 공기, 푸르른 나무들과 초원, 그 속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 등을 마음속에 담으며 걷기 때문일 테지요.
점심때가 되어 밥을 먹으러 간 식당은 자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먼저 들어가 식사를 마친 부부가 일어서며 그 자리에 앉으라고 합니다. 얼른 자리를 잡으려 하는데, 카페 종업원이 굳이 우리를 문가의 임시 좌석에 앉으라 하네요. 아마도 단체 손님을 받으려 하는 눈치인 것 같은데, 왠지 홀대를 당한 것 같아 호젓하고 영감을 주던 순례길 기분을 잡치기 싫어 일어섭니다. 내친김에 더 가다 보니 문어 요리가 그려진 고풍스러운 식당에서 렌초가 스페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합석하여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갈리시아 수프와 특산물인 알이 굵은 아몬드를 넣은 빵이 맛있다며 스페인 여자분이 음식을 추천해줍니다.
30일을 걸었고 이제 남은 날이 나흘입니다. 우리가 길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수많은 사람들은 정작 이 길이 끝나면 무슨 느낌이 들 것인지 궁금해진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렌초 일행이 일어섭니다.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길을 나서는데, 이번에는 독일 친구 랄프 일행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오랜만의 만남입니다. 다시 만나면 서로 이름을 기억하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 전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랄프는 아홉 살과 일곱 살배기 아이들의 아빠이며 큰 식품 회사를 운영하는데, 머리를 식히려고 친구와 왔답니다. 아내도 허락을 했다지요. 삼십일이나 자리를 비우고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이 독일 친구들이 우리 청년들과 비교되어 부럽습니다.
언제나 그날의 목적지는 작은 언덕 위에서 만나게 됩니다. 오늘도 여지없습니다. 다리를 건너 언덕 위에 온통 하얀색의 건물과 집들이 아름답습니다. 강폭이 아주 큰 강이 흐르고 길고 높게 강 위로 드리워진 다리가 무척 인상적인 이 도시가 뽀르또마린(Portomarin)입니다. 다리를 건너 시내에 들어서는데 버스에서 내린 학생 수학여행단의 모습이 보입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까워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 By 베짱이(일이) >
예닐곱 살 무렵 서울 영등포의 이른 아침 동네 골목 어귀에 검은 우산과 우의를 걸친 사람들의 운구 행렬이 비를 맞으며 마을 입구를 빠져나가던 빛바랜 영상이 아직도 강렬하게 지워지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검은 모자를 뒤집어쓴 우의와 우산들 위로 희뿌연 빗줄기가 사정없이 반사되는 음산한 풍경이 육십 년 세월 뒤 지구 반대편의 사리아에서 재현되는 듯하다. 갑자기 늘어난 우의 입은 사람들의 행렬이 빗속을 걷고 있다. 포도주가 덜 깬 상태여서인지 이 장면이 비현실적이다. 계단을 오르다 언뜻 고개를 들고 앞을 보니 키가 큰 스위스 출신 R이 우뚝 서 있다.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그는 핑크빛 우의를 길게 늘여 입고 서서 느긋하게 인사를 건넨다.
사람들의 수가 점점 불어 나며 그동안 고적했던 아침 출발 장면과는 달리 도시의 거리가 부산하고 북적인다. 비를 맞으며 줄지어 걷는 순례자들 모습은 순례길의 상징과도 같다. 이곳의 4월은 우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3월 말에서 4월 말 사이 비 올 확률은 오분의 일이다. 34일 중 7일 정도는 비를 맞게 되어 있는데,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하루 중 걷는 시간이 길다 보니 우의를 입고 걷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건기에도 우의는 필수다.
한 시간여를 걸었나 보다. 정신이 맑아지고 늘어난 순례자들의 싱싱한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나고 새로 출발한 순례자들의 설렘과 경쾌함이 30일 걸은 순례자들의 지친 심신의 피로를 덜어주며 순례길 위에 묘한 화음을 만들어 낸다.
이사벨 여왕 시대에 만들어진 막달레나 수도원(Convento de la Magdalena) 건너편 묘지에 비를 맞아 젖어 있는 묘비명들을 곁을 단체 순례객들이 무심히 지난다. 죽음의 차가운 이미지가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렬과 겹쳐지면서 삶과 죽음이 자연스레 섞여 드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늘 죽음은 삶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다만 눈에 잘 띄지 않고 가끔씩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왔을 뿐이다. 지나는 마을마다 크고 작은 묘지들을 지났지만 오늘처럼 감상에 젖게 되는 것은 비 오는 날의 분위기 때문일 게다.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습하고 포근한 기후가 빚은 이끼 낀 키 큰 나무들 사이의 진한 녹색의 숲 그늘 길을 걷다 보니 영화적 상상력이 떠오른다. 때 묻지 않은 태고의 대 자연 속에서 펼쳐질 법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800km 중 아직 100km를 남겨두고 있으나 부쩍 늘어난 순례자들과 목적지에 가까이 다가왔다는 묘한 안도감이 길 위에 나를 맡기고 그저 걷고 또 걷게 한다.
바르바 델로(Barbadelo)라는 마을에서 아침식사도 할 겸 쉬어 가기로 한다. 제법 큰 식당으로 입구의 홀에서는 기념품을 진열하여 팔고 있고, 그 옆 공간이 식당이다. 우의를 벗고 사람들 틈에서 젖은 몸을 말리며 커피를 곁들인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조금 있으니 이 길을 걷고 있는 용감한 세 모자가 우의를 걸치고 홀에 들어선다. 아이들과 엄마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들의 눈빛에 피로의 기색이라고는 없고 엷은 미소만 가득하다. 아이들과 엄마가 식사하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힘차게 걸어가 감격을 나누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비는 멎었고 구름 사이로 가끔 햇살이 비치기도 한다. 대기는 여전히 청량하다.
유럽 최고의 카톨릭 국가답게 순례길의 작은 마을에도 어김없이 성당이나 수도원이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문턱이 낮은 예배당에서의 기도는 더 간절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8세기에 지어진 아주 작고 빛바랜 예배당에서 아내와 함께 간절히 기도한다. 아내의 기도가 하늘에 들리기를 기원하며... 성당 묘지 앞 뜰에 잠시 앉아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본다. 사람들이 많아지니 속세가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긴장도 조금 풀어지는 것 같다.
100km 표지석 앞에서 들뜬 표정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부터 두 자릿수를 보며 걷겠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지면서도 한편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든다.
뽀르또마린 가는 길은 상쾌한 숲길이 이어진다. 시원한 숲 그늘과 이낀 낀 돌담길이 너무 매력적이다. 함께 걷는 이들이 많아서인지 발걸음은 더욱 경쾌하다.
길가에 카페들도 많다. 점심 요기를 하기 위해 반지하의 아래층과 위층으로 이루어진 고풍스러운 레스토랑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갈리시아 수프로 요기를 한다. 새로 사귄 스페인 길동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R을 만났다. 식당을 나오며 걷다가 오랜만에 독일 친구들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얼마나 걸었는지 강 건너 언덕에 모습을 드러낸 순백의 도시가 뽀르또마린(Portomarin)인가 보다. 강폭이 넓은 강과 오래된 교량이 멋지게 강의 양안을 연결해 준다. 너무 멋진 풍광 앞에서 하루의 노독이 이미 다 풀렸다. 도심을 통과하여 외곽에 위치한 알베르게를 찾는다. 왠지 썰렁하고 사람도 없다. 키친을 사용할 수 있어서 오늘은 숙소에서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편안히 먹기로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슈퍼로 향한다. 이제야 시장기와 함께 조금씩 피로가 밀려온다. 숙소에 도착한 후에도 순례길은 이어진다. 식사를 하고 도착지의 명소도 찾아보고 그러려면 또 걸어야 한다. 씻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의 다리는 쉬질 못한다. 그래서 실제 우리가 걷는 총거리는 800Km를 훨씬 넘을 것이 틀림없다. 이제 밀려드는 피로감이 하루를 걸은 순례길의 무게이다. 내 몸과 영혼의 한계를 알고 쉬는 일이 걷는 일의 어머니임을 안다. 순리를, 섭리를 깨닫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