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해도 괜찮아요, 키오스크 주문.
우리 카페는 키오스크를 사용한다. 다른 키오스크에 비해서는 비교적 사용법이 쉽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중장년층 이상의 손님들 중에선 주문할 때 어려워하는 경우가 꽤 있는 듯하다.
어느 날은 5-60대로 보이는 여성 넷이 단체로 방문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원하는 메뉴를 찾아 방황하는 손가락 옆에 서서 하나하나 메뉴를 설명한다. 이렇게 복잡하면 우리 아줌마들은 어려워서 안돼. 일행 중 한 명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퉁명스레 불평한다. 순간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미소로만 대답한다.
음료를 다 만들고 트레이에 올려 자리로 가져가니 아유 부르면 가지러 갈 텐데-라며 웃는다. 괜찮아요, 저희는 원래 다 가져다 드려요-라고 대답하고 각각 주문한 내용에 맞게 네 사람의 앞에 음료를 올려둔다. 잠시 후 일행 중 한 명이 카운터로 와서 뜨거운 물을 좀 받을 수 있겠는지 물어온다. 잔이 뜨거우니 자리로 가져다 드리겠다고 하고 뜨거운 물을 가져가니, 일행이 앉아있는 원탁에서는 이렇게 친절한 카페 처음이야-하며 다소 부산스러운 찬사와 웃음이 터져 나온다. 또다시 미소로만 대답하고 돌아온다.
얼마 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그들이 일어나 돌아갈 채비를 하며 잔을 정리하는 걸 보고, 그대로 두고 가시면 치워 드려요-라고 얘기하자 일행은 웃으면서 저마다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키오스크 앞에서 불만 가득했던 손님 또한 한껏 풀린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가게를 나선다. 웃으며 나가는 그녀들을 보며 아까 키오스크 앞에서의 일들을 되돌아본다. 아, 혹시 두려웠던 게 아닐까? 주문을 받는 일은 이제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하지만 기계에게는 점원에게 하듯 내가 궁금한 걸 뭐든지 물어볼 수 없다(Chat GPT가 적용된 키오스크가 나오기 전에는). 내가 원하는 걸 주문하기 위해 정해진 답을 잘 입력해야 하는 현실은 누군가에겐 시험을 치르듯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내가 돈을 내는 것임에도. 너무 많은 혹은 너무 적은 정보, 화면 속에서 계속 줄어드는 남은 시간, 뒤에 줄지어 서서 내 주문이 끝나길 기다리는 사람들, 초조함에 고개 돌려 점원을 찾아도 시야에 없거나,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에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이 모든 상황이 좋지 않은 경험이었으리라. 이렇게 생각해 보니 그녀의 불평은 일종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기계가 어려운 것이지 내가 잘못해서 못하는 게 아니라고.
최근 본가에 가서 엄마와 얘기하다가 엄마도 역시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했던 경험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유를 가지고 보면 다 할 수 있지만, 처음 보면 긴장해서 곧잘 주문하지 못하고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키오스크 앞에서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상냥하게 안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오스크가 어려운 것이지,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닙니다. 설명도 주문도 제가 해드릴 테니,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저번보다 더 높은 연령층의 여성 네 분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한 분은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들어오신다. 어떻게 안내할지 머릿속으로 문장을 고르며 키오스크 앞으로 나선다. 말을 건네려는 찰나 일행 중 한 분이 능숙하게 몇 가지 메뉴를 고르며 일행에 물어본다. 언니는 망고 에이드 맞지? 허리를 구부려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걷던 손님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어 맞어-하고는 유유히 점찍어 놓았던 듯한 자리로 가서 앉는다. 주문은 빠르고 정확하게 완료된다. 나에게는 아직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