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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롯H Sep 03. 2022

광란의 크리스마스

나를 끌어올린 것들

발레 수업을 들은 지 한두 달 지나면서 서서히 안면이 익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중 선생님이 설명할 때 매번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여자 학생과 나는 통성명을 하고 천천히 대화를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옥타비아, 나이는 나와는 연년생인 내 동생과 동갑으로 대략 동년배였고 직업은 애니메이터였다. 우리는 수업 외에도 같이 만나서 커피라도 한잔하자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몇 번 약속이 미뤄진 끝에 우리가 만나기로 한 것은 노엘(Noël, 프랑스어로 크리스마스를 의미) 연휴가 시작되기 대략 2주 전 토요일 오후였다. 그때는 단순히 옥타비아와만 친하게 지내면 되겠거니 하는 방어적인 마음이었는데, 생각보다 그녀는 굉장히 외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옥타비아는 같은 수업을 들으러 오는 피라나와 이리나에게까지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약속에 합류시키는 것이 아닌가? 급작스러운 변경 사항에 나는 다소 당황했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것을 물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대로 파티에 참여하기로 했다.


우리는 우선 저녁에 시내에 있는 바에서 브라스 밴드의 공연을 보기로 했다. 바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브라스 공연에도 취미엔 없지만 본래 약속에 대해선 남의 의견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편이라 알겠다고 했던 차였다. 약속 당일 이리나는 토요일 오후에 있던 토슈즈(프랑스어로는 프왕트 pointes라고 한다) 수업으로 너무 지쳐서 못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셋이서만 만나기로 했다. 


피라나와 나는 이름 정도 밖엔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그날 처음으로 일대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피라나는 태국-라오스 계 혼혈로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29살이라고 했다. 태국에서는 2년 살았을 뿐, 그녀는 프랑스 인이었다. 그녀는 내가 '석사 공부를 중단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다'라고 하니 나이를 물어봤는데, 그녀는 놀라며 자기보다 조금 더 어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어렸을 땐 젊어 보인다는 말에 변태처럼 좋아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정작 나이를 먹어가며 이런 말을 들으니 내심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코로나19로 모든 사회적 만남이 제한됐던 한국과는 대조를 이루듯 사람이 드글대는 프랑스 바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과 콘서트를 관람했다. 생각보다는 브라스 밴드의 보컬이 굉장히 실력자라서 흥이 났고, 자유롭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음악에 흠뻑 빠진 사람들을 오랜만에 보았다. 


우리는 거기서 옥타비아의 친구들 무리를 만나 2차를 위해 다른 바로 향했는데 그 바의 이름은 브뢰겔 랑시앙(Breughel l'ancien), 우리말로 바꾸면 화가 '대(피터르 브뤼헐'이란 뜻이다. 나는 이동하면서 또마에게 바 주소를 보내주고 12시 정도쯤에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Breughel l'ancien


입구에선 원래 백신 패스를 검사해야 했고, 문 앞에 버티고 선 직원은 모두 다 패스를 꺼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들어갈 때는 백신 패스에는 눈길을 주지도 않고 모두 들여보내 주었다. 경찰의 검문도 있으니 무늬로만 구색을 맞추는 모양이었다. 


거기서 옥타비아는 우리에게 생강이 들어간 특제 칵테일을 사주었다. 노랫소리가 너무 커서 수다를 떨어도 잘 들리진 않았지만 우리는 애써 대화를 더 나누었다. 술을 더 들이켜자 확실히 알딸딸해졌고, 여기서 더 눌러앉아 놀아야 할까 싶은 심경의 변화가 올 때쯤 또마가 도착했다. 그는 백신 패스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스크를 그대로 쓰고 들어왔고, 나와 함께 피라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또마 말로는 이쪽 동네는 자정 이후 안전이 의심될 수 있는 동네라 데리러 왔다고.


피라나는 역 근처에 산다고 해서 역까지만 바래다주며 헤어졌고, 우리는 지하철에서 트램을 갈아타고 집으로 왔다. 나는 대충 씻고 눕고 나서야 과연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니 목이 칼칼했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단 하루 목감기 약을 먹고 쉬기로 했다.


다행히 나와 피라나, 옥타비아는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에는 말이다.


그렇게 2021년 광란의 노엘 파티가 지나갔고, 나는 드디어 툴루즈에 사는 한국어나 한국 문화를 알지 못하는 친구들을 처음으로 사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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