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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롯H Aug 25. 2022

서른네 살, 발레를 시작하다



오스고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주 동네에 있는 스포츠 용품 판매점에 들렀다. 옷차림은 편하게 하고 오면 된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신발은 구색을 맞추는 것이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발레 슈즈(프랑스어로는 천으로 된 것은 쇼송, Chaussons이라고 한다)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바닥이 하나로 이어진 것과 두 개로 나누어진 것이 있다. 내일 한 번 쓰고 영원히 안 쓸 수도 있는 물건인데 너무 좋은 것을 사는 것도 우스우니, 더 저렴한 바닥이 하나로 이어진 쇼송을 샀다. 


다음날 발레 시범강의 1회를 받으러 갔다. 툴루즈에서 가장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장 조레스(Jean Jaurès) 역에서 대략 도보로 5분 정도를 걸으면 나오는 조용한 스튜디오이다. 평소엔 5분에서 10분 정도 자주 늦는 나지만, 첫날이니만큼 조금 일찍 도착했다. 사이트에서 누가 가르치고 있는지 이미 확인해서 바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사이트에서 본 두 명의 선생님 중 머리를 민 남자 선생님이 직접 사무실에서 나와서 나를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당신이 민지죠? 저는 민이에요. 반갑습니다.

(Bonjour, c'est toi Minji? Je m'appelle Minh. Enchanté.)"


선생님은 자기가 메일에 직접 답변을 한 것이라고 하면서 탈의실을 안내해 주었다. 메일을 보내면 답변이 왜 이렇게 빨리 오는지 조금 궁금했는데, 아시아계인 선생님이 직접 메일을 관리한다고 하니 금방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민은 베트남에서 태어났지만 발레는 현재의 우크라이나(그 당시는 소련) 키이우에서 배웠고 프랑스엔 1992년부터 살고 있다. 다양한 나라에서 살면서 일해서 그렇겠지만 그는 최소 4, 5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폴리글롯이기도 하다. 


나는 이미 개강 이후 3주 이상 늦게 등록했기 때문에 초급반이었음에도 그래도 약간 걱정이 되었다. '혹시 한국처럼 많이 경직된 분위기일까? 나만 복장이 이상한 것은 아닐까?' 별의별 의문을 떠올리며 여기까지 온 터였다. 첫 수업 때는 사람이 한 6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처음이라 버벅거렸지만 나름대로 동작을 흉내 낼 수 있었다. 선생님만 남자인 것이 아니라 수업을 듣는 사람 중에서도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매 동작을 할 때마다 땀을 많이 흘리며 '휴우'라고 한숨을 남발해서 다들 키득거리며 웃었다.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 굉장히 부담감이 컸던 시기였기 때문에 첫 수업을 온 것 자체가 큰 모험이었다. 다행히 선생님이 굉장히 상냥해서 마음이 많이 놓였고, 주 2회 수업을 등록하게 되었다. 처음 몇 달은 딱히 친해지는 사람이 없이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수요일 정오에 발레를 들으러 가기 시작했다. 일도 딱히 많지도, 딱히 친구도 없었기에 운동 좀 하자는 마음으로 규칙적으로 몸만 왔다 갔다 했다.


내가 다니는 발레 스튜디오는 본래 수십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마담 베티니(Madame Bettini)에 의해 운영되던 곳이다. 그런데 몇 년 전 그녀가 사망했고, 그 후 민과 엠마뉘엘이 스튜디오를 이어받아 운영하게 된 것이다. 처음 두 달간은 월요일과 수요일 수업 모두 민이 가르쳤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다음 주부터는 월요일에는 엠마뉘엘이 가르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수업이 끝나고 잠시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사진에서만 보던 엠마뉘엘을 보고 인사한 적이 있다. 발레리나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발레리나라는 말이 정말 맞았다. 발레리나들이 잘 입는 타이트하게 잘 맞는 운동복을 입은 마르고 창백한 그녀는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소파에 앉아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Bonjour)."


댄서라는 모델을 현현하는 엠마뉘엘을 보고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얼른 인사를 건네고 후다닥 나왔던 나는 민의 '선언'으로 인해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은 금방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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