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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롯H Aug 24. 2022

오스고르, 가랑비에 옷이 젖다



지난 다툼 이후 뭘 배울까 고민하다 돌아가신 또마 외할머니의 살림살이에서 물려받은 미싱을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수업을 듣기로 했다. 다행히 괜찮은 아틀리에를 찾아서 등록했는데, 여자만 있는 환경이라 왠지 친해질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해서 그런지 서로가 잘 섞이지 못하는 느낌이 드는 중이었다. 


하루는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아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점심 나절까지 보냈다. 나는 구글 검색창에 '툴루즈(Toulouse)'와 '수업(cours)'라는 완성어를 돌려 넣으며 이런저런 수업을 서칭 하다 발레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나 무심결에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초급 성인도 수업을 하는 커리큘럼을 가진 한 발레 스튜디오를 찾아냈는데 이미 9월 중순이라 학기 등록이 가능한지 문의 메일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메일을 보낸 지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지금도 등록은 가능하고 1회 10유로인 시범 수업(cours découvert)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하며 초급 수업 중 하루 아무 때나 오면 된다는 친절한 답장이 왔다. 나는 내심 빠른 답장에 감탄하며, 지금은 여행 중이니 다음 주 정도에 수업을 들으러 가겠다고 복장은 어떻게 하면 되냐는 메일을 한 번 더 보냈다. 그마저도 친절하게 답장이 금방 도착했다. 


"몸이 편한 것이 가장 중요해요. 복장이야 레깅스, 스타킹 아무것이나 상관이 없어요. 천 슈즈가 없다면 양말을 신어도 괜찮아요."


나는 현재 다른 도시에 있어 다음 주에 돌아가는 대로 초급 수업에 참석하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프랑스에서 와서 살아보면 알게 되는 중 하나는, 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이완된 그리고 더 느린 리듬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한국인인 내 눈에서 이들은 굉장히 대충대충 산다. 발레 수업에 대충 평상복을 입고 오라고 하는 것도 전형적 프랑스 스타일의 연장선이며 일이나 학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의 경우 6주에 한 주는 방학이 있고, 직장인이라 해도 대개 여름에 2~3주, 겨울에도 2주 정도는 휴가가 있고, 기본적으로 쉬어야 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오스고르에서 일기를 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봤다. 한국은 OECD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연간 근로시간이 멕시코에 이어 2등이었고, 2020년 기준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노동생산성이 궁금해졌다. 2020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회원국 38개국 중 32위, 2021년은 조금 나아져 27위를 기록했다. 


30년 넘게 한국에 살며 회사에 다니는 것을 스스로 단념했던 이유를 함축하는 통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비자는 프랑스 1년 체류 후 노동 가능한 비자로 전환되었는데, 여행 당시엔 노동 계획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기 시작했던 때였고 또마나 또마 친구들을 보니 왠지 회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내 생각을 바꿀 정도로 프랑스는 노동자로서 일하기에 퍽 좋은 나라이다. 


한국이 분명 발전한 원동력이며 나조차도 경쟁 사회 속에서 쉼 없이 달려오며 성취를 쌓아온 사람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우리는 쉬는 법을 모르고 몰아치기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룬 것이 딱히 많지 않지만, 내가 만일 프랑스에서 프랑스인으로 태어났다면 절대 이 정도까지 악착같이 살아내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일기를 쓸 시간이 많았던 오스고르에서 나름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처음엔 부정적인 내용의 일기를 쓰다가 이런 자기 연민적 태도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스고르에서 마지막으로 적은 일기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일 또는 공부 만을 하는 게 정답인 것 같은 한국 사회의 삶은 이제 놓아두고 하고 싶은 것을 좀 더 많이 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프랑스 생활에 서서히 젖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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