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이나 해외 경험이 즉각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곱씹다 보면 '내가 하는 지금 이 선택이 그 경험 때문이구나'라고 깨달을 때가 많다.
대학생 때 떠난 교환학생 생활은 가서도 힘들었고 다녀오고 나서도 힘들었어서 해외 경험이 자산이라는데 대체 이게 내 인생에 무슨 긍정적 영향을 미칠까 싶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교환학생 경험 덕에 알지 못했던, 예를 들면 친구가 없다면 굉장히 힘들어한다거나, 도시가 아닌 곳에선 지내기 힘들어하는 성향을 인지하고, 앞으로 행여라도 해외 생활을 다시 해야 한다면 해야 할 행동과 해서는 안될 행동에 대한 기준을 만들 수 있었다.
이제는 경험 자체의 성격과는 관계없이 결국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오스고르(Hossegor)는 남부 프랑스에 산다면 누구나 아는 관광 명소로, 우리는 바캉스 피크 시기를 피하려고 9월 초로 휴가 시기를 정했다. 역시 시즌이 좀 지났는데도 관광객이 꽤나 많았다. 오스고르의 정식 명칭은 소르츠 오스고르(Soorts-Hossegor)로 랑드(Landes) 주에 속해 있다. 랑드 주에 접어들자 랑드 특유의 나무들이 눈길을 끌었다.
여긴 지방색이 강한 곳이라 사실 외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좀 있다고 한다. 코르시카(프랑스 발음 코르스, Corse)를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아무튼 오스고르 바로 옆 세뇨스(Seignosse)에 있는 에어비앤비를 빌렸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다소간 잘 꾸며놓은 아파트였다. 특히 테라스 앞에 인공 연못이 크게 조성되어 있어 뷰가 좋았지만 화장실이 좀 낡은 편이고, 나무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많이 났다. 소파를 청소 안 하는지 먼지 때문에 나와 또마 둘 다 소파 근처에서 기침을 많이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살펴본 기상예보는 절망적이었다. 4박 5일 거의 매일 비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날씨가 좋았던 날도 이틀 있었고 하루는 흐렸지만 저녁에만 비가 내려 비교적 선방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 도리어 하늘의 변화가 신기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는데 바다는 날씨가 궂어도 좋아도 다 그 나름대로 보는 멋이 있는 듯했다. 여기서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것은 서핑인데 맨몸으로 온 우리야 구경만 했다. 또마는 물을 좋아하지만 호수를 좋아하지 바다에서 하는 수영은 좋아하지 않고, 난 수영을 못 하니 물놀이와 친하지 않아서 바다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특히 수평선이 드넓게 펼쳐진 대서양은 평생에 처음 보는 것이라 감상에 빠지기 부족함이 없었다.
대서양을 마주한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또마와 나는 대양(océan)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야 끝까지 거칠 것 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약간 우울한 채로 등 떠밀리듯 떠나온 여행이라 기대가 없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오스고르의 만난 풍경들은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불과 일 이주일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을, 지금은 텅 빈 바닷가가 도리어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내 마음에는 도리어 위안이 되었다. 왔다가 사라지는 구름과 파도를 보며 '멍'을 때리는 것은 생각이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겐 제격인 야외 활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