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샬롯H Aug 23. 2022

별 것도 아닌 싸움



나는 2021년 6월에 정식으로 비자를 받아 프랑스로 돌아왔다. 프랑스엔 이미 수회 와봤지만 비자를 받아 온 것은 처음이었다. 대학생 시절 교환학생을 벨기에로 오면서 학생 비자를 받아본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와서 별로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는 하지만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되지 않는가? 


본의 아니게 망쳐버린 교환학생 경험으로 인해 얻은 교훈은 여러 가지가 있겠다. 그중 하나는 나는 가족보다 더 친구가 없는 환경을 가장 외롭게 느끼고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극히 내향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일대일로 친구를 못 사귈 정도는 아니니 까짓 거 언어 교환 애플리케이션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프랑스인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보니 행동을 하고자 하는 동기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우울증이 몸을 지배하면 '밖에 나가야지', '친구 좀 만나야지', '방이라도 청소해야지'라고 생각만 하지 쉽게 몸뚱이가 움직이지 않는 것과 유사한 원리이다. 


비자를 받아 프랑스에 재입국하고 나선 코로나19 사태 관련 행정 명령 때문에 외출 자체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길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없이 남자 친구와만 지내게 되었다. 우리는 둘 다 많이 독립적인 스타일이라 사실 자기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데 멋도 모르고 계속 한 집에 붙어있게 되었던 것이다.


불과 몇 달 전 아버지에게서 낡은 자가용을 한 대 받은 또마와 편도 한 시간 반 정도의 부모님 댁을 주말에 함께 왔다 갔다 할 일이 많아졌다. 운전을 하면 원래 성격이 그대로 나온다더니, 다혈질인 성격인 데다 초보 운전자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마는 운전을 하다 쉽게 버럭버럭했다. 


쉽게 짜증이 나지만 또 쉽게 가라앉는 성격이기 때문에 지금은 아빠 성격 같다고 생각하면서 대충 그 순간만 조용히 넘기거나, 듣고 있으면서도 내심 안 듣는 식으로 유체이탈을 한다. 하지만 그때엔 자신감도 떨어지고 외부 자극에 훨씬 민감해져서 조수석에 나란히 앉은 나는 심하게 긴장되고 굉장히 눈치를 보게 되었다. 


프랑스에 오니 내가 하던 대로 청소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청소를 하는 루틴을 정해놓고 따르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 살면서는 일주일에 한 번, 바닥에는 청소기를 돌리고 일회용 물티슈를 밀대에 끼우고 깨끗이 닦고, 화장실도 락스로 전체적으로 청소를 했었다. 프랑스로 오면서 원룸을 뺐을 때에는 너무 번쩍번쩍하게 청소를 해놔서 부동산 아주머니는 '업체를 쓰셨던데요'라고 했을 정도다. 


또마는 처음에 물통에 양잿물(l'eau de javel)을 받고 물걸레 밀대를 사용하는 스타일을 고집했다. 양잿물은 우리나라 락스와 유사하다고 보면 되고, 락스와 마찬가지로 물에 희석해서 사용한다. 프랑스에선 바닥 청소용으로 자주 쓰기 때문에 향기가 역하지 않도록 처리된 것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물티슈로 바닥 청소를 하면 환경을 해친다나 뭐라나... 나는 혀끝까지 수많은 반박이 차올랐지만, 이것이 집안 문화 차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참고 그의 스타일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는 애당초 내가 서울에서 살던 원룸 면적의 2배가 넘는 데다 도저히 물걸레로는 내가 원하는 반만큼도 깨끗하게 청소를 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 역시 완전히 건식이니 물을 쫙쫙 끼얹으면서 하는 락스 청소를 할 수도 없었다. 터널 비전 탓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청소가 내 삶의 제일 큰 문제같이 보였다. 어느 여름날 거의 2시간이 걸려서 청소기와 물걸레 청소까지 마치고 나니 땀이 비 오듯 했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순간 눈물이 왈칵했다. 소위 오는 '현타'의 순간이다. 


그렇게 꾹꾹 쌓였던 감정은 그날 폭발해버렸다. 또마에게 '내가 프랑스에 온 건 너랑 살기 위해서인데 나는 네 눈치만 보고, 넌 나를 도와주지도 않고, 우리는 집에만 박혀 있고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라고 그간 쌓인 말을 두서도 없이 막 내뱉었다. 원래 잘 울지도 않는데 울면서.


또마는 여자 친구가 우는 것을 처음 봐서 놀랐는지 나를 달래며 미안하다고 우선 사과를 했다. 고친다고 고치는데도 성질이 가끔씩 나는 것이 있는데 더 고치려고 노력하고, 문제가 있는 행동이 보이면 바로 말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둘이서 같이 밖에서 할 만한 것이나 또는 내가 혼자서 배울만한 것도 찾아보자고 했다. 


이렇게 얘기해 주니 나도 화가 한풀 꺾였다. 가끔 폭발은 할지언정 풀릴 땐 바로 풀리는 스타일이다. 


"나도 뭔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프랑스는 8월까지는 뭐든 다 닫혀 있는 데다가 뭘 배워야 할 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무언가를 배우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으니 찾아봐야겠어."


"그래 그렇게 하자."


본디 또마가 강요한 적도 없었지만 의무감에 항상 어디든 동행하는 것을 멈췄다. 부모님 댁에 갈 때 툴루즈에 남아 있기도 했고, 그가 친구들을 만날 때 같이 안 나가기도 하는 등 나는 서서히 내 페이스을 되찾아 갔다. 그리고 청소 밀대도 내가 원하는 물티슈형으로 샀다. 


그렇게 내 마음의 불안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이전 04화 심인성 어지럼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