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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총 Aug 25. 2022

Ep.6 와신상담

35살, 나는 해고당했다.

부당해고 6일째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회사에서의 답장은 없었고, 나는 회사에게 내 이메일에 대한 답을 촉구하는 리마인드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메일 주소들이라곤 이미 이전 메일에 포함된 5명, 매니저, 아시아 HR 2명, CEO, 본사 HR 담당자가 전부였다. 아니, 이 정도면 충분히 많은 메일 수신자인데, 연락이 없다는건 이들도 암묵적으로 이 일을 묵인하고 처리하려는 것 같았다.

글로벌에 높은 책임자들 중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련자들을 찾을 수 있을까'


문득, 1,2,3,4차 면접 절차에 참여한 면접관들이 생각났다. 글로벌 총괄 매니저, 유럽아시아 총괄 팀장 등, 나와 면접을 진행한 사람들은 모두 높은 결정권자들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이름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는 것 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연락처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 갑자기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구글 캘린더!'


면접 인비테이션들은 주로 구글 캘린더를 통해 미팅이 잡히기에 캘린더를 뒤졌다. 있었다. 1차부터 4차까지 면접 초대 메일에  면접관들의 이메일 주소가 리스트에 있었다. 4차는 나를 부당해고한 매니저이므로 이미 예전부터 메일링에 들어가있었고, 중요한건 2, 3차의 임원급 매니저들이었다.


나의 부당해고에 대해 공식입장을 요청했던 메일에 이어 면접관들을 메일 참조에 넣고 리마인드 메일을 써내려갔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실만을 바탕으로 내용을 적었다.


 “난 아직 너희들의 공식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부당해고 통보 이후 너희 회사의 어느 누구도 나에게 답을 주지 않고있다. 너희의 공식적인 입장없이 나의 근무일은 이미 시작이 되었다. 나는 이 회사에 근무하고 싶던 사람으로써, 너희들의 대응이 매우 유감이다. 공식입장을 재요청한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철자 하나, 문법 하나, 단어 하나도 그 악랄한 것들이 악용할 수 없도록, 나의 의도가 영어로도 동일하게 전달되도록,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이렇게 2차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낸지 몇 분 되지 않아, 아시아 HR팀장이 왓츠앱으로 전화를 수차례 걸아오기 시작했다.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전화를 받지 않자, 메세지와 메일로


“딱총씨, 당신을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 빨리 미팅을 할 수 있을까요?”'


라는 내용을 보내왔다. 이 HR팀장은 나의 부당해고일부터 지금까지 내 메일을 무시하던 사람이다. 이번에 보낸 이메일에는 본인 부서 관련 글로벌의 여러 임원들이 수신자로 들어가있었기에, 자신의 근무태만이 모든 상사들에게 발각됐으니,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허겁지겁 내게 연락을 건 것이다.


괘씸하고 열받았지만 내가 현재 여유부릴 상황이 아니기에, 우선 통화를 진행했다. 그 매니저가 말했다.


"전부 우리의 잘못이고, 딱총씨 당신이 우리 회사에서 퇴사하게 된 부분은 미안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근무하도록 도와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건 보상금 지급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 묻자면, 딱총씨 아시아 매니저가 당신에게 지난주에 해고통보를 한 사실이 맞지요?"


또 개소리였다.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 죄송합니다. 참고 참아 욕설을 배제 중인데 참아지지 않네요.


이 매니저는 지난주 본인이 휴가였기에 '난 휴가라 이런 부당해고에 대해 몰랐다.'는 식으로 내부에서 내 아시아 매니저에게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넘길 의도로 전화를 한 것이다. 이 HR 매니저는 그동안 내 메세지를 수없이 무시했음에도 본인은 휴가복귀 후 처음 이 사실을 알았다는듯한 태도를 취해 더 화가 났다. 통화에서, 그리고 통화를 마친 후 메일에서도 그 팀장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너가 지금 나와 통화한 내용을 메일로 정리해서 답장해라.  그리고 그것이 너희 회사의 공식입장인지도 묻는다."


보내자마자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딱총씨, 최대한 빨리 미국 legal에 얘기해서 공식입장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본인은 나와 대화하는 액션을 취했고, 앞으로는  legal이랑 얘기하라는 듯 들렸다. 책임 던지기가 미국 legal까지 갔다. 열불이 났지만, 한편으론 일관된 이들의 부당한 대응이 후에 나의 주장에 더욱 신빙성을 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머리를 짜내고 짜내 그 회사의 높은 사람들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과연 이 HR담당자가 내게 연락을 취했을까?란 생각이 드니 지금의 힘든 싸움을 한꺼풀씩 풀어내고 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이렇게까지 나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내 자신이 처량해보였다.


갑자기 가슴이 갑갑하고 심장이 빨리 뛰는 느낌에 더불어, 몰려오는 슬픔에 눈물이 올라왔다. 우울증 증상이었다. 약을 바로 챙겨 먹었다. 몇 분 뒤, 잠시 마음이 진정되었다.


정신차려야 한다. 이제부터 본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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