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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은 Jul 21. 2023

동료 교사가 죽었다.


 7월 19일 밤, 친한 선생님한테 연락이 왔다.

"인디스쿨 봤어..?"

또 어떤 선생님께서 큰일을 당하셨나, 싶었다. 또 폭행인가, 싶었다. 고소는 이제 놀랍지도 않았기에.


"신규 선생님이 학교에서 자살하셨대..."


 머리가 멍했다. 자살. 자살이라니. 사실 선생님의 자살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2016년에도 학생에게 반성문을 쓰게 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민원 및 아동학대 고소에 시달리던 선생님은 유서를 쓰고 자살하셨다. 그러나 자택에서 자살하셨다는 이유로 순직 신청이 거부되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자살하셨다는 말에 마음이 더 아팠다. 자택에서 자살하면 개인사로 치부되고 일단락될 테니 학교에서.. 그런 선택을 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불과 발령 2년 차인 선생님에게 누가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그 어렵다는 서울 임용을 합격하고 아이들을 가르칠 꿈에 부풀었을 새내기 선생님을 누가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았을까.


 학부모의 갑질과 민원이 이유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학교와 교육부는 선생님을 보호했을까. 선생님이 숨진 채로 발견된 건 18일 오전. 최초의 기사가 나온 건 19일 밤이다. 무려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되도록 학교와 교육부는 무얼 했을까.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학교에서는 이 일을 함구하려고 노력했고, 해당 반 아이들은 19일에 선생님이 아프시다며 다른 선생님들의 보결 수업을 과학실에서 들었다고 한다. 해당 학교의 어떤 학년 학생들은 수련회도 예정되었던 대로 갔다고 한다. 만약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학교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교실을 옮겨 수업하고, 싸늘하게 식어가는 학생이 병결석이라고 말하고, 즐겁게 수련회를 떠났을까.


 물론 들려오는 이야기가 거짓일 수 있다. 이 사건에 카더라가 넘쳐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학교장은 이 사건에 주목이 쏠리자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이후 이것은 '학부모회'의 검토를 받고 입장문으로 수정되었다. 이 입장문의 내용은 그저 책임회피를 위한 변명으로 가득 차있을 뿐이다. 고인이 왜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 이유는 나타나있지 않다. "저희 탓이 아니에요"를 변명으로 길게 늘여 썼을 뿐이다. 고인이 학폭 업무 담당이었는지, 1학년을 희망했는지, sns에서 거론되는 정치인 가족이 학급에 있는지, 학폭 사건이 발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교사의 인권이 침해되었느냐다. 학년을, 업무를 희망했으면 갑질을 당해도 괜찮은가? 정치인 가족만이 갑질을 할 수 있는가? 학부모는 학폭 사건에 대해서만 갑질을 하는가? 더불어 일각에서는 이 일을 고인의 개인사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으로 종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남자친구와의 결별 때문이라나.. 기가 차는 이유에 '개인사로 고통받는 사람이 학교에서 자살을 하냐'라고 교육청에 전화를 하자 답하길, '그럼 한강에서 자살하는 사람은 한강에 원한이 있는 거겠냐'.... 그래, 교육청도 관리자도 그 누구도 우리의 편이 아니구나.



 나는 운이 좋아 그런 학부모를 만나지 않았지만, 당장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선생님만 보아도 학부모의 갑질로 마음의 병을 얻은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밤늦게까지 장문의 문자 폭탄을 받고 하루종일 폭언이 섞인 민원 전화를 받는 일은 허다하다. 좋은 관리자를 다행히도! 만났다면 정신과를 다니고 병가를 쓰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인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능력이 좋아서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던 것일까? 고인은 멘탈이 약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걸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나는 단순히 운이 좋아 아직은 살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부끄럽게도 이제야 분노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음엔 내 차례일 수 있음을. 선생님은 참아야 하니까, 여론은 우리 편이 아니니까, 우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니까, 우린 노동자가 아니니까 등등의 핑계로 미루고 미뤄서 사람이 죽었다. 98년생의 어린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


수백 개의 근조화환이 학교를 둘러쌌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학교 앞에서 고인을 추모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쪽지가 정문을 가득 채웠다. 어떤 이유에선지 학교는 추모하러 온 사람들을 내쫓았다. 정문을 몇 시간 동안 걸어 잠갔다. 도로변으로 나가 추모하라고 내몰았다. 추모할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자 플라스틱 탁자와 전지 몇 장을 덩그러니 내놓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이 날씨에 지붕 한 장 없이. 아, 이것이 교육계에서 교사의 현 위치구나. 민원 총알받이로 쓰이다 수명을 다하면 슬퍼해줄 장소마저 제공받지 못하는 도구.


 93%의 교사들이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고 한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엎드려 자는 아이를 쓰다듬어 깨우며 걱정한다. 혹시 내가 아이에게 무안함을 줬다는 이유로 고소당하면 어쩌지. 발표가 떨린다는 아이에게 할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도 걱정한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켰다고 고소당하면 어쩌지.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교사들이 교권 회복을 외치는 건, 아동 인권을 침해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교사로서의 권리가 지켜진다고 아동의 인권이 침해된다면, 그것은 올바른 권리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정상적인 교육을 행하는데 우리를 보호해 줄 제도이다. 문제 학생을 적절히 지도하고서도 고소당하지 않을 구체적인 방안, 학부모의 무분별한 폭언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 근거 없는 아동학대 고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에어백을 원한다.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발안 따위로는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그것이 효력 있었다면 고인은 아직 우리 곁에 있을 테니까.


교권이 무너지면 공교육이 무너진다.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말은 다수의 선량한 학생들 또한 위험에 노출된다는 말을 뜻하기도 한다. 실제로 소수의 문제 학생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학생은 학습권을 침해받을 뿐만 아니라 안전마저 위협당한다. 여러분의 자녀, 조카, 동생, 손주를 위해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제서라도 무너진 교권을 바로 잡아야 한다.





 더불어 우려의 말씀을 전한다. 해당 학교가 위치한 지역의 특성, 정치인이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 등으로 인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교권 추락이라는 문제는 절대로 어떠한 정당 또는 이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일에 정치가 개입되는 순간 "교권 회복", "교육활동 정상화"라는 목적은 더럽혀진다. 교권 추락은 어느 특정 정당의 잘못이 아니라, 이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사회 문제이다. 제발, 한 선생님의 억울한 죽음이 단순한 가십거리로 소비되고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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