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에 다시 당신을 찾았습니다. 세상이 얼기 시작하던 11월의 끝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면서도 햇살이 찬란하던 그때 당신께서 저 땅 아래 묻혔으니 어느새 반년이 흘렀습니다.
오늘 우리는 울지 않았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당신이 담긴 하얀 도자기 위로 흙을 나눠가며 뿌리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당신이 좋아하시던 사이다를 얹어놓고 당신을 추억했습니다.
이제 그곳에서 당신은 어떠하신가요. 번뇌와 고뇌를 다 저편으로 넘겨두고 당신의 어버이와 형제들 사이에서 행복하신가요. 부디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 나는 당신의 자녀들을, 우리들을 저 깊은 곳 혹은 저 높은 곳에서 굽어살펴주세요, 하고 이기적인 부탁을 했습니다. 매번 받기만 하는 것이 버릇없게도 습관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영원히 눈을 감은 당신을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당신의 색색깔 삼베옷 끄트머리를 어루만지며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그저 죄송하다고 외쳤습니다.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은 어쩌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참 후에야 했습니다.
오늘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나를 예뻐해 주고 사랑해주어서 참 감사하다고, 참으로 사랑했다고 결국 말하지 못했습니다. 내 이기적인 마음이 미안한 마음을 더 크게 만들고 있나 봅니다. 다음번엔 꼭 그 말을 전하고 와야 하겠습니다. 따뜻한 아랫목과 끊이지 않는 텔레비전 소리, 그리고 당신의 잔잔한 웃음소리가 그리워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