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를 묻으며 다정을 기다린다.

by 도연
grigogl. 꽃씨를 묻으며 다정을 기다린다.


꽃씨를 묻는다

흙속에 꾸욱 꾸욱.

무심히 흙을 얹고 손으로 살살 펴주었다


목화씨를 묻은 자리

백일홍 씨를 뿌린 자리

천일홍 씨를 눌러 놓은 자리

뒤죽박죽 섞여 있다

서로 치이지 않아야 할 텐데.


라벤더씨는 백개나 들어있다 해서

마땅한 자리가 어디일까 고민이었건만

코웃음만 나온다

살랑 실바람만 불어도 가뿐히 실려갈 만큼 작다

어디라도 날아가서 뿌리를 내려도 좋으련만.


흙을 걷어내고 씨를 뿌린 후 마구 섞어주었다

그리고는 그 위에 다시 흙을 솔솔 덮고

다정하게 토닥여 준다


다정도 병이라지만,

소홀함 없이 다정을 주고 다정을 받고 싶다

때가 되면 내게도 다정한 꽃을 보여줄 테지.


해질 무렵이면 건너오는 찬 기운에

계절을 잊을까 잠시 멈춘 손.

다행히 바람사이로 파고드는 한낮의 볕이 꽤 따갑다


이제는 기다려야겠지.

기다림은 지루하다

기다림은 망각의 시간이다

기다림은 느긋한 걸음이다

기다림은 눈을 지그시 감는 일이다

기다림은 설렘이다


그리고,

기다림은 틈틈이 다정하다.



[그럭저럭 시, 스물일곱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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