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멈춤의 날'이었던 그날은 서이초 선생님의 49재였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모인 교사와 시민들은 서이초 선생님을 추모하며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교권보호, 안전하고 존중받는 교육환경 조성 등을 요구했습니다. 엄청난 것을 바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학생과 교사가 온전히 교육 활동을 영위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아래는 서이초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해 집회에 모인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외쳤던 그날의 저의 발언입니다.
그날 이후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민국의 교사입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듣고 저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실 분들이 생길까 걱정스러웠지만, 전 현재 이런 사회에서는 계속 버텨낼 자신이 없어서, 모두가 힘을 모아 공교육 붕괴를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10년 이하의 저경력 교사이지만, 몇 년 전 학교에서 도망쳐 세상에서 숨어 지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학생이던 시절부터 십 년 넘게 배우며 바란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월급을 받았다며 저를 찾아온 학생과 학부모님, 내가 A학교로 가는 것을 고민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꼭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던 A학교 예비 신입생 학부모님, 선생님과 다시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해주던 나의 제자들과 같은 행복한 기억 때문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서이초 선생님의 소식을 들은 그날, 저는 두려움과 공포, 불안감으로 온몸을 떨며 펑펑 울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겪었던 일들이 떠오르며 불안감이 심해져 한동안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웠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힘겨워졌습니다.
정신의학과에 진료를 보러 가서 입 밖으로 꺼내니, 제가 회피하던 생각들마저 마주 보게 되어 더 무서웠습니다.
"의사 선생님, 서이초 선생님 사건을 들으니 제가 전에 겪었던 일들이 다시 생각나요. 그리고 그때 병원에서 입원을 권유받지 않았더라면, 저도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거예요. 입원을 해서 학교로부터 격리될 수 있었고, 그래서 살아남았는데, 그게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그때 기간제교사여서 도망칠 수 있었어요. 기간제였으니까 병원에서 나와서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고, 그냥 계속 1년 넘게 숨어있을 수 있었는데, 그것조차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그런데 선생님, 저에게 있었던 일들은 다 5년 이내에 있었던 일들이잖아요. 과중한 업무, 악성민원인, 갑질관리자를 만났던 일들에서 저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지금도 서이초 선생님 사건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렇게 무너지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때도 학교를 관두는 죄책감이 너무 커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데 이젠 그때 보다 소속과 책임이 더 커졌으니 도망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앞으로 몇십 년은 더 교직에 있어야 하는데 이런 일은 분명히 또 생기겠죠. 요즘엔 이런 일들이 너무 흔하잖아요. 그게 너무 무서워요. 버티고, 이겨내고, 그럴 힘은 이미 없어요. 아무 일도 안 생겼으면 좋겠는데 또 생길 거라는 것을 아니까. 폭탄이 또 터질 텐데 그때 저는 못 버틸 거예요. 못 버틸 자신이 있어서 더 무서워요."
몇 년 전, 저는 끊임없는 학교폭력업무와 지속적인 악성민원에 고통받다가 정신의학과 첫 진료에 입원을 권유받았습니다. 그렇게 학교에서 탈출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상태는 좀비와 같았습니다. 밥을 먹지 않았고,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나온 눈물은 멈추지 않아 안정제를 맞아야 잠들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뒤늦게 교권보호 위원회를 개최했으며, 폐쇄병동에 입원하여 핸드폰 사용이 금지된 저와 연락하기 위해 병원으로 전화하였습니다. 통화를 힘들어하는 저를 보며 병원 측에서 전화를 중단시키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 진행을 위해 저에게 출석을 요구했고, 출석이 불가능했던 저는 그간의 고통이 담긴 진술서를 제출했습니다. 교권보호 위원회와 그 진행과정, 그 모든 것들은 저를 괴롭히기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학교를 사직하면서 교권보호위원회는 당사자가 없어 결과 없이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교권보호위원회는 교사를 위한 것이 맞습니까? 보호는 공격받기 전에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교권 추락과 무책임한 관리자들, 모든 것을 교사 탓으로 돌리는 악성민원과 폭력에 노출된 교사들의 고통을 정말 모르셨습니까? 교사들이, 공교육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교육청은, 교육부는 모르고 있었습니까?
저를 도와주지 않았던 그 학교의 선생님들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교직사회가 서로 도울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아무도 저를 도울 수 없었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것은 저를 걱정해 준 사람들 덕분입니다.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한 후 저는 조금씩 정신을 차렸습니다.
제 고통을 지켜보셨던 선생님의 걱정 어린 전화를 받았고, 제 소꿉친구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계속 읽었습니다. 그 덕에 조금씩 생긴 용기로, 계속 숨어있고 싶지 않아 밖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사라진 저를 찾아 헤맸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저를 굶기지 않겠다며 반찬을 해 오고,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밥을 먹고, 저를 홀로 두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이렇게까지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같은 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저를 도울 방법이 없어 함께 눈물 흘렸습니다. 서로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것이 현재 공교육의 현실입니다.
저는 겨우 살아남아 아이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는 일이 많아 바쁘고 힘들어, 매일 아픈 선생님이 아닌, 학생 곁을 지키는 든든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갑질 관리자를 만나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을 다시 견뎠고, 또다시 아무런 보호 없이 방치되었습니다. 자신의 인권도 지켜내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제가 운이 나빠서 과중한 업무, 악성민원, 갑질 관리자를 다 겪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요즘 기피 업무들은 대부분 신규교사, 기간제교사, 새로 전입하는 교사들에게 떠넘겨지고 있습니다. 과중한 업무와 악성민원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모두 폭탄 돌리기를 하며, 본인의 생존을 우선시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을 알기에, 우린 서로를 탓할 수 없습니다.
젊은 교사들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것이 맞습니까?
경력 교사들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것이 맞습니까?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방관만 하니, 희망을 기대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고통에 비명을 질러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소리 지를 의미도 찾지 못하셨을 겁니다.
관리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모든 잘못을 교사에게 떠넘기는 현실이 끔찍합니다.
교육부가, 교육청이, 학교 관리자들이 학부모에게 쩔쩔매고, 학생들에게 쩔쩔매니 힘없는 교사들은 그대로 휩쓸려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나요? 왜 민원이 들어오면 관리자는 교사에게 무작정 해결하라고 합니까? 교육청과 학교 관리자들은 무슨 책임을 지나요? 왜 학교와 교육청이 욕먹지 않기 위해서 교사를 징계하고, 교사에게 책임을 묻습니까? 왜 교사를 학교와 교육청의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겁니까? 왜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욕먹지 않기 위해 해주어야 하고,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를 해야 하며, 왜 우리가 서로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비참한 환경에서 각자 생존을 위해 버텨내야 합니까?
반대로,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책임 있는 행동을 하였습니까?
저는 학교폭력 업무를 전담하며 만난 악성민원인들에게 단 한 번의 사과도 듣지 못했습니다.
갑질 관리자에게도, 그것을 방관한 관리자에게도 제대로 된 사과를 듣지 못하였고, 아무런 관계 회복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렵기만 합니다.
우리는 벌써 많은 선생님들을 잃었고, 더 이상 선생님들을 잃을 수 없다고 외치는 이 상황에서도 이미 지쳐버리신 선생님들께서는 세상을 등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부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최근의 힘들었던 상황과 더불어 그 이전에 겪으신 모든 어려움들이 빠짐없이 밝혀져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겪은 일들 또한, 다른 선생님은 겪지 않길 바라며 저는 이 자리에서 제대로 된 보호대책 마련을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