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경찰서는 故 이영승 교사 사망 사건으로 피소된 학부모 3명과 학교 관계자 5명 등 총 8명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함을 발표하였다.
2024년 5월 23일 오전, 이와 관련된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경찰이 전면 재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밝힐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서명에 동참하였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은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가득 찼다.
희미하게나마 기대하며 간직한 내 희망의 씨앗은 썩은 씨앗이었던 것일까.
2022년 여름,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소식에 나는 다시 과거의 공포들이 밀려와 무너져 내렸었다. 내가 힘들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어린 선생님들의 죽음으로 되돌아온 것 같아 한없이 죄스러웠고 후회스러웠다. 우리의 고통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모든 이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될 앞으로의 교직생활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살아남고 싶은 마음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아직 운이 좋아서 살아있는 나'는 서이초 선생님의 49재에 대한민국의 교사로서 발언을 하였다.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그 후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나는 갑질신고에 대한 2차가해에 시달리다 결국 병휴직을 하였고, 언제나 그렇듯 실질적으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갑질신고를 한 이유도 '살고 싶어서'였고, 도교육청 앞에서 발언을 했던 것도 '살고 싶어서'였고, 현재 병휴직을 한 이유도 '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병휴직이 끝나 복직이 시작되는 9월에 살까 말까를 고민한다. 최근에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라도 다 해보자며 의식의 흐름대로 살고 있다. 그러나 죽기 전인데,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해외여행 또한 마음대로 못 가더라. 하지만 그렇다고 교직생활을 관두면 나의 사건은 교사 사건이 아닌 게 돼버리니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죽는다면 그 모든 것은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과, 무책임한 관리자, 교육청, 교육부 때문이라고 꼭 말하고 싶으니.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그러하다. 나의 삶은 비교적 행복했고, 불행한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일들은 스스로 이겨내지 못해 삶이 흔들릴 만큼은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느낀다. 내 삶을 무너트리고, 망가지게 한 것은 과도한 업무, 지속적 악성민원, 방관하는 동료교사와 책임을 회피하는 관리자, 추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만 하고 여전히 제자리걸음뿐인 교육청과 교육부 때문이라고확실하게 하고 싶다.
과거에 내가 학교폭력 업무를 전담하며 겪었던 일들이 없었다면, 나는 갑질신고도 하지 못하고그저 참아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제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살면서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을 기대하기보다는 더는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살고 있고, 엄청난 기쁨과 행복이 온다고 해도 그것과 함께 부정적 사건 또한 겪어야 한다면,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학부모와 학교 관리자, 동료교사, 교육청, 교육부 등 학교와 관련된 이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내가 현재까지 아직 살아있는 이유는 그날의 발언에서도 언급했지만 참 운이 좋았다.
'정신과 첫 진료에서 정신의학과 병동 입원을 권유받았고, 학교로부터 격리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내가 세상을 등지고 떠났을 때, 학교관리자들과 교육청이 몰랐다며 책임을 회피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때문에 나는 마지막으로 교육청에 연락을 했었다. 그전에도 나의 어려움과 고통을 이야기한 것은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우연히도, 바로 상담이 연계되었다.
처음 방문한 상담소의 상담사는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그걸 왜 다 참고 있었냐며 '스스로를 학대한 수준이다'라며 나를 탓했다. 당장 관두고 갔었어야 했다며 왜 계속 일을 하고 있었냐고 말하는 그 사람을 보며 분노가 솟구쳤다. 자살 종용 상담사 같았다. 상담을 해서는 안될 사람이 상담을 하고 있으니, 그것도 교육청에서 연계해 준 곳이 이런 곳이라니. 너무 화가 났다. 그 후 그 상담사는 내 눈앞에서 교육청 관계자와 통화하면서 본인이 담당하기 너무 무섭다며 다른 곳에서 상담하는 게 좋겠다고 말을 했었다.
그런데 거기서 내가 상담을 관두면 어떻게 되었을까?
'심리적 소진이 심각했던 해당 교사에게 상담 지원을 연계해 주었으나 본인이 지원을 거부하고 자살하였다'이런 말이 떠돌아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런 결말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난 떠나더라도 교육청이 제공해 주는 모든 지원을 받고 떠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충분하지 않았으니, 충분한 지원을 해주었다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는 그런 말을 절대 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현재까지도 나는 아직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렇게 2번째 상담을 받게 되었다. 이번엔 병원으로 연계를 해 주어서 정신의학과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보았는데, 첫 진료에 입원을 권유받았었다. 첫 진료에서 내가 의사 선생님께 들려드렸던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 일이 너무 많아요.
- 잠자고 일어나면 일을 하고, 일하고 집에 가면 잠을 자고, 또 일어나서 일을 가요.
- 일 하면서 쉬는 시간이 없어요. 밥 먹는 15분이 유일한 쉬는 시간인데 얼마 전에는 밥 먹는데 어떤 선생님이 일 이야기를 해서 '저 밥 좀 먹으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면서 밥 먹다가 울었어요
-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학교에서 안 쉬고 일을 해요. 물도 안 마시고 차도 안 마시고 먹는 게 없으니까 화장실도 안 가요. 저녁밥도 안 먹어요 밥 먹을 시간에 빨리 일 끝내고 집에 가고 싶어요. 근데 그렇게 일 해도 일이 안 끝나요.
- 정시에 퇴근한 적이 없어요. 빨리 퇴근하면 밤 10시 11시 정도고, 저녁 7시나 8시에만 퇴근할 수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연속 2주 내내 새벽에 퇴근한 적도 있어요. 학교에서 애들이 저한테 학교에 사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학교에서 산다는 소문이 돈대요.
- 가장 늦게 퇴근한 날은 새벽 4시에 퇴근했고, 2시간 자고 다시 출근했어요.
- 업무 전화랑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핸드폰 알림 소리만 들으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하루에 50통 이상 전화를 하는데 대부분 30분 이상 걸려요.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계속 무음으로 해놓고 알람은 다 꺼버렸어요.
- 핸드폰에 알람이 뜨면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파요.
- 악성민원인 전화를 받기 싫은데 계속 전화가 와요. 제가 전화받지 않으면 다른 선생님들께 전화를 걸어서 그분들이 저에게 또 전화를 하거나 제 교실로 찾아와요. 수업 중에도 찾아오고 상담 중에도 찾아오고, 업무 보고 있을 때도 찾아와서 일을 제시간에 할 수도 없고, 문자로 남겨두라고 해도 계속 전화를 해요.
- 악성민원인 전화 차단하고 싶은데 관리자도, 교육청도 자기들도 참고 있으니 저 보고도 참으래요. 같이 힘내자고만 하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 제 삶이 없어요. 쉬는 날에도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사실 쉬는 날도 없어요. 학교에 있든 밖에 있든 전화가 계속 오고, 학폭업무는 기간 내에 처리해야 하는데 계속 사안들이 생기니까 쉴 수 없어요. 사안이 한번 생기면 똑같은 이야기를 양측 관련 학생과 학부모, 학생부장, 교감, 교장한테 계속 연락을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다 저한테만 연락을 계속해요. 근데 저는 특수교사니까 학폭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수업도 해야 하고, 특수교육대상 학생들 지도도 해야 해요.
-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니까 장염, 위염, 식도염이 다 같이 와서 2주 동안 입원했는데 입원해서도 계속 노트북으로 일을 했어요. 독감에 걸렸을 때도 집에서 전화로 계속 상담했고, 학교에서도 연락이 계속 와서 제대로 쉴 수 없었어요.
위에 언급한 이야기들은 정말 간단하게 말하고 끝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첫 진료였고, 처음 본 사람이니 말이 길어지는 긴 이야기들은 꺼내지도 않았었다.
정말 나를 힘들게 하는 이야기들은 시작도 하지 않았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입원을 권유받았다.
정신의학과 병동 입원 권고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일이 많아서 입원은 못할 것 같아요.'
'학교에 다른 사람들은 업무를 잘 몰라서 어차피 계속 연락이 올 거예요'
'정신의학과 병동은 핸드폰 사용이 안된다고요? 그거 너무 좋네요... 핸드폰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하지만 입원은 어려울 것 같아요. 학폭 업무는 시간 내에 끝내야 하는데 지금 제가 없으면 일 처리가 제 때 안될 거예요.'
그렇게 병원을 나와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병원을 나와서 다시핸드폰 전원을 켜고, 교육청에서 상담을 연계해 준 담당 주무관님에게 상담이 끝났다고 이야기를 하는 중에 또다시 전화가 쏟아졌다.
교육청, 동료교사들, 학부모, 진로직업프로그램 강사님 등.....
전화를 하는 중에도 계속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캐치콜 문자가 계속 들어왔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함께 통화 중이던 주무관님은 계속 걸려오는 전화와 부재중 문자들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차라리 지금은 핸드폰을 꺼두는 게 좋겠다고 말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 지경이 되니 정신이 차려졌다. 나는 지금 일을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전화가 쏟아지니 일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나의 업무는 애초에 1명이 해낼 수 있는 업무도 아니었다.
학교폭력 사안을 접수할 때 양측에서 피해를 주장하면 2건으로 접수를 해야 하는데, 우리 학교는 2건으로 접수하면 사안이 너무 많아져서 관리자의 요청에 따라 전부 1건으로 접수를 시켰다. 그럼에도 상반기만 해도 50건 넘는 사안이 접수가 된다. 그 정도로 학폭이 많은 학교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 업무를 혼자 하고 있었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업무를 혼자 하고 있었다. 한 인간이 망가질 만하기엔 충분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너무 궁금하다.
그분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도움을 청했었는지, 도움을 준 고마운 분들은 누구이며,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방관했던 사람과 책임을 회피한 사람은 누구인지,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 모든 것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어떤 것들이 문제였는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온전히 아이들의 교육에 몰두할 수 있는 안전한 학교가 되길 바란다.
나는이 글을 쓰는 지금은 물론, 모든 글을 쓸 때 혹시 내 글로 인해 자극을 받을 누군가를 걱정하며 최대한 부정적인 자극을 주지 않기위해 노력한다.대부분의 교사들이 그러지 않을까. 우리는 아이들의 거울이 되니 언제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나의 삶임에도 내 삶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아이들의 거울은 교사뿐만이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의 거울임에도 몇몇 어른들은 교사에게 그 책임을 모두 전가한다. 본인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교사에게 바라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다. 교사도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내가 교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의 인권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죄송하다 말하고, 워라밸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부당함을 알면서도 묵묵히 참아내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을 그저 이해하면서, 그렇게 나는 인간으로도, 교사로서도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절망감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학교에서 도망쳤었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가? 하지 못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악성학부모의 괴롭힘에 나는 고소를 고민하였고, 변호사 상담도 받았었다. 수많은 전화를 걸어왔던 그 통화기록 사본을 아직도 가지고 있으며, 과거 사용하던 핸드폰에는 그 당시의 통화녹음과 나에게 보낸 메시지 캡처사진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 부모와 싸우는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학생들이 학교를 다닐 때 눈치 보며 다니지 않길 바랐다. 부모를 고소한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고, 아이들은 아이답게 고민 없이 학교를 다니길 바랐다. 악성민원인들은 그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갑이라서 우리가 가만히 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위한다며 공격하는 것이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싸우고 공격하는 것은 교사도 할 수 있으나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이유를 당신들도 고려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 참아본 결과, 나를 지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지금은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 이들을 보면 참지 말고 대응하라고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선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살아남은 현재의 나는, 갑질 관리자와 그에 대한 2차 가해로부터 그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뭐라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병휴직을 하였지만, 교육청과 인권위원회에 2차 가해에 대한 신고를 하였고, 공무상 병가를 신청하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신고 접수 후 곧 3개월이 되는 지금껏 아무런 소식이 없지만, 언젠가 나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운이 좋아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학교폭력 업무 전담, 지속적인 악성민원, 갑질 관리자, 방관하는 관리자, 2차 가해 이 모든 것을 다 겪고 있는 나는 솔직히 운 좋은 사람은 아니다. 내가 살아남아있어 운이 좋다고 말해야 할 당사자들은 악성민원인과 관리자, 교육청이 아닐까.
어쨌든 지금의 나는 과거의 경험으로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을 때 나는 나를 위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너무 지쳤을 땐 도움을 청할 수도, 나를 위한 행동을 할 힘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테니 평소에 나를 위한 행동을 내가 해야 한다. 이것을 더 일찍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렇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나를 위한 행동을 하다 보면 언젠간 다시 좀 힘들더라도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싶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언젠가가 온다면 그땐 나도나의 아이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당당하게 알려주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자신 있게 가르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