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후 나의 일상에 대한 글을 매주 1개 이상 쓰겠다던 나의 다짐은 그저 흔한 다짐일 뿐이었고, 실행은 참 어려웠다.
나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
이런 것들은 언제나 내 머릿속 한 편의 공장에서 쉼 없이 반복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선 나에 대한, 내 삶에 대한 걱정과 고민, 계획들로 가득하고 혼자 좌절했다가 다시 스스로를 응원했다가, 모든 것을 포기했다가 다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볼까 망설여본다.
최근의 나를 되돌아보자면 역시나 아직도 엉망진창이다.
나는 나를 위해 휴직을 하였고, 나를 돌보기 위한 시간들을 마련했고, 쉼을 택하려고 끝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스스로에게 '그동안 충분히 쉬었는가?' 물어본다면 '아직. 전혀 쉬지 못했다.'라고 답변할 수 있다.
일에서는 벗어났지만 쉼에 다가가지는 못했다.
반백수 상태로 매일 놀고 있는 사람이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나의 상태는 그렇다.
심지어 나를 잘 아는 모두가 나에게 '약속 좀 그만 만들고, 사람 만나지 말고, 좀 쉬어'라고 말을 한다.
나도 느끼고, 남들도 느낄 정도면 정말 문제인 거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이 되지 않으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나의 상태가 스스로 안타깝고 속상할 뿐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오로지 나만의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때 느껴지는 그 여유들을 즐기며 나는 나의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혼자 있지를 못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에너지가 차오르는 사람이 된 것도 아니면서,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에너지가 있는 척이라도 하는 내가 좋았던 것 같다. '나는 괜찮아. 웃고 있잖아. 나는 행복한 거야.' 이렇게 스스로 착각하고 세뇌시키면서 그저 그렇게 내면의 고통을 무시했다. 그러다 혼자가 되는 순간 또 방전되고, 사람들과 만나면 다시 에너지를 쥐어짜 내어 웃다가, 그렇게 모든 게 방전되어 버렸다. 내면의 에너지도, 스스로를 돌보려는 의지도, 필요성도 아무것도 없었다.
난 단지 너무 쉬고 싶었을 뿐인데, 쉬는 건 어떻게 하는 거더라..?
글을 쓰는 환경에 대해서도, 나는 혼자만의 장소에서, 홀로 여유로움과 사색을 즐기면서 나만의 글을 잔잔히 써 내려가는 것을 추구하지만, 정작 혼자 있을 땐 글을 쓰지 않는다. 글을 쓰지 못한다고 해야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하며 주제나 글감을 설정하고 그것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도, 막상 어느 순간부터 나의 글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 다른 주제의 글이 완성되어 간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눈물이 흐르고, 나는 왜 그럴까, 왜 나에겐 이런 일들이 자꾸 생기는 걸까?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등 여러 생각이 오간다. 어느 순간 머릿속이 지친다.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로 가득 차기도 하고, 극단적인 생각도 자주 오간다. 그런 나의 의식의 흐름을 나는 스스로 감당하기가 아직 어렵고 무서워서 혼자 있는 공간에서, 혼자만의 여유를 부리며 글을 쓴다는 것은 아직 나에게 불가능하다. '나는 겁쟁이였구나.'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겁쟁이었나 보다.
언제나 이런 상태로 계속 살고 싶진 않기 때문에 쉼을 택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회복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 지금이 참 먹먹하다. 내가 노력한 것이 없어서 속상하다고도 말하기가 부끄럽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건 쉬는 일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해서 그 일들이 꼭 나에게 쉼을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았다. 스스로를 잘 돌봐보자고 다짐을 아무리 해 보아도, 하루아침에 스스로를 돌보는 게 무엇인지 모르던 사람이 잘 돌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이든 말로만 하는 것은 참 쉽다. 실천은 정말 어렵고. 그 당연한 것을 나는 오늘도 증명했다. 실천은 참 어려운 거구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지금의 나에겐 쉼이 아니라 단지 또 다른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몇 주 전부터 새로운 약속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그 다짐을 한 지 2주가 지났음에도, 그전에 만들어놓은 약속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 참. 내 정신을 흔들리게 만든다. 제대로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니 몸도 지쳐버렸다. 최근 며칠 동안은 너무 아파 내내 잠을 잤다. 병원에 어떻게 다녀온 건지, 친구들이랑 무슨 연락을 주고받았는지도 잘 생각 안 날 만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왜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살아?'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그리고 그 답을 너무 쉽게 찾아버렸다. '내가 싫어서, 나를 보기 싫으니까.' 나는 스스로를 직시하기 싫어서 계속 다른 걸 찾아 다른 걸 보고 있었다. '정말 겁쟁이였구나.'하고 또 생각했다.
휴직을 하고, 이 시간을 헛되게 쓰고 싶지 않다는 고민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일주일에 1번씩 청년꿈터와 문화센터에서 은공예, 해금, 수채화를 배우고, 직장인밴드 활동을 할 때가 아니었다. 같은 아파트 옆동에 사는 친구, 옆동네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들, 소꿉친구, 대학동창들, 과거직장동료 등 사람들과 친목이나 다지고 놀 때가 아니었고, 평일에 근무하지 않는 친구들이 누구인지 체크하고 빈 일정을 꽉꽉 채워 나랑 놀아줄 사람을 찾을 때도 아니었다. 헬스나 둘레길 같이 다닐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보아야 할 것은 안 보고, 다른 곳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마음속 한 켠에서는 진작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머리로도 알아버렸으니 이제 도망갈 곳이 없다. 여기서 더 도망간다면 어디 가서 양심 있다는 말은 하면 안 될 것이다.
이젠 정말 스스로를 직시할 때가 된 것 같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에 대해 알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나를 돌보겠다 했으니 그동안 스스로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었다. 다쳤으니 치료해 줄게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상처는 보지 않고 약만 뿌려댄 꼴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최근 내가 정말 속상했던 일이 있었는데, 이 생각을 하고 나서 참 생각이 많아졌었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이름, 나이, 직업을 간단히 소개하면 끝날 일이었는데, 이젠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정쩡하게 소개하고 편견을 얻을 바에는 차라리 소개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지경이다. 예를 들어, 현재 상황의 일부만 보아도 저는 휴직 중이에요.라고 했을 때 '왜 휴직했어요?'라고 한다면 관리자 갑질 때문에 힘들어서요.라는 답변에서 소개가 끝날 수 없다. 무슨 갑질이 있었는지, 그 갑질은 어느 정도의 강도로, 어느 정도의 기간 지속되었는지까지 나는 설명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은 나를 예민한 사람, 특이한 사람, 전형적인 MZ세대의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끝낼 것이고, 난 그것 또한 불편하다. 내가 왜 낯선 사람들에게 나의 휴직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받아야 하는 것인지, 나의 잠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나의 최근 몇 년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것을 설명해야 하는지 너무 지치는 일이다. 특히 휴직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 관리자는 사실 나에게 갑질신고를 받기 전에 2번의 갑질신고를 받고 나를 만났고, 나에게 받은 갑질 신고가 3번째 갑질신고였다는 이야기까지 하면 사람들의 표정은 급격히 변한다. 그제야 '휴직할 만해서 했구나. 힘들었겠어요.'라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온다. 나는 이런 표정 변화를 왜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왜 힘든 기억을 굳이 떠올려 내어 설명을 해야 하는지 너무 힘들었다. 자기소개라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그러다 요즘은 그냥 솔직하게 '그 이야기는 아직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설명에 지쳐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한 말이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그 말을 쉽게 받아들였고, 그러다 보니 나도 한마디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제가 할 수 있을 때 천천히 이야기해드릴게요.'라고.
사실 아직은 전혀 괜찮지가 않으니까.
정말 괜찮아지면 그때 이야기 해 드릴게요.
지금은 스스로를 더 다독거려야 할 것 같아서요.
너무 힘들었는데, 나는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웠던 것 같아요.
오늘부터는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내면의 나와 좀 더 친해져 볼게요.
아프면 쉬어도 제대로 쉴 수 없으니까.
그동안 제가 아무리 열심히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던 이유를 이제 찾은 것 같아요.
요즘 정말 편하고 좋았는데,
얼마 전 도시의 야경을 보러 갔을 때
입으로는 '정말 예쁘다'라고 말을 하면서
머리로는 '왜 저기에서 뛰어내리는지 알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아직은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꼈어요.
무엇 때문에 아팠고,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니까,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것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