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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Apr 15. 2024

느려도 한 걸음

멈추는 것보단 낫다



병휴직에 들어가기 전 나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우선은 이사를 하는 것, 회복될 틈 없이 계속 무너지는 느낌만 다가오는 그곳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곳을 벗어나 나의 삶의 활력을 되찾길 바랐다. 근무지가 있는 그곳에서 벗어나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사는 0순위 목표였고, 그 뒤의 목표를 정할 여유조차 없이 매일 이사를 위한 준비를 했다.

 


내가 병휴직을 하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누가 알 수 있었을까? 내가 방학이 며칠 안 남은 학기말에 관리자에게 막말을 들을 것이라는 걸. 피해자에게 징계받아 힘들었다고 말하는 가해자. 잘못한 일도 아닌데 상대방이 기분이 나빴다고 하니 사과를 하는 나. 사과를 들은 적 없다는 상대방.  못 들었으니 다시 제대로 사과를 하는 나. 주변 사람이 이미 내가 여러 번 사과를 했다고 말해줘도 끝까지 사과를 들은 적 없다고 하는 상대방. 나를 대하는 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나에게 화는 너무도 잘 내는 그 사람. 나는 그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막혀오기 시작한 게 이미 1년이 넘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만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다. 본인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으면서 나에게는 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왜 잘 지내보려는 노력은 나 혼자만 해야 하는 것인지. 나이가 어려서. 직위가 어려서. 인맥이 적어서. 그나마 주위에서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보다는 직위가 낮다. 그래서 굳이 좋지 않은 일에 얽히고 싶지 않을 것이고, 실제로 얽히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5명 중 나와 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그 사람과 내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상황 속에 몇 년을 살다 보니 이제 주위 사람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힘든 건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발버둥을 치고,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던지 나의 힘든 상황은 그들의 생각으로 인해서는 나아지지 않는다. 나에게 필요한 건 어떠한 "행동"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생기지 않도록, 서로가 겪은 부정적 사건들을 그 후에 또 다른 누군가가 반복하지 않도록 서로 돕는 "행동"이 나의 희망이다. 그러나 그동안 내 주변에는 무엇인가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고 변화도 없었다. 그저 나 혼자 백조처럼 수면 아래에서 보이지도 않는 발버둥을 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럴 힘조 없다. 나의 내면은 이미 탈진하여 쓰러진 지 오래다. 빈 껍데기가 돼버린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지친다. 이런 상태로 대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우선 쉬어야지.

그렇게 병휴직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과거의 좋지 않았던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학교폭력 업무를 전담하고 있었을 때의 여러 사건들과, 악성민원인들, 갑질 관리자들의 교육활동 침해와 폭언 등 나쁜 기억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과거의 나를 스스로 위로하다가, 상대방들을 욕하다가, 이미 그 사람들은 떠나가버렸고, 나는 아직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아직 힘들어한다는 사실에 억울함이 차오른다. 그 어떤 사람들도 나에게 단 한 번의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냥 털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을, 나는 그게 안된다. 남들이 보았을 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냥 한 번 똥을 밟은 게 아니다. 내가 살아온 과정은 똥 밭이었다. 똥 속에서 구르고 구르다 울고불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그런 똥 밭에 있다가 운 좋게 탈출했지만 이미 똥 독이 올라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나 "앞으론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싹을 틔울 때쯤 나는 또 똥 밭에 빠졌다. 이쯤 되니 세상의 모든 똥이 나를 찾아오는 듯한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 나는 독으로 가득 차버렸고, 미래는 불안감에 모두 쓸려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계속하는 것으로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집중하여 몰두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았고, 계속 무엇인가를 하다 보니 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처음엔 그것들이 잡생각을 잊게 해 주는 나의 힐링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힐링이 되지 못했다. 잠시 생각을 멈춰줄 수는 있어도 내 마음속의 아픔은 그대로 썩어가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진짜 쉼을 즐길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진짜 그냥 쉬는 것일까?" 고민을 할 때가 있다.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긴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니 쉴 수가 없다. 내가 편히 쉴 수 있을 때는 아마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사과를 받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을 때일 것 같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나 따위는 잊고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지나버린 일에 대해서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것을 생각만 해도 지치는데 그 누가 그런 일을 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어져간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취미 부자로서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재밌게 산다고들 한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해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사는 게 재미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재밌지가 않다. 단지 아무 생각 안 하려고 집중할 무엇인가가 필요할 뿐이다. 과거의 언젠가에는 취미 활동은 단지 잠시 즐기기 위해 적당히 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지금은 그 적당히가 너무도 어렵다. 사실 지금의 나는 내가 맞긴 한 것인지.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도 알기 어려워졌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새로운 활동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러다 보니 취미가 많아졌는데 지금은 재밌고 신기한 것보다는 단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생각을 줄이기 위해, 할 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취미활동을 하고 있다. 친구들이 보았을 때  내가 매일 피곤한 것은 실제로 피곤할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들 말할 정도로 나는 많은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그 많은 일들 중에 내가 꼭 해야 할 일들은 빠져있다는 것. 그건 아주 큰 문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활동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일들이고, 꼭 해야 할 일들은 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이 어려운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나를 위한 일은 하고 싶지가 않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고, 하려고 하면 너무 힘들고 지친다. 그래놓고서 가족이나 친구들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열심히 도와준다. 고양이와 강아지 쉼터에 봉사활동도 다닌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너나 잘 챙겨"라고 친구들이 말할 정도로 나는 나만 빼고 다른 것들을 챙긴다. 근무할 때도 그랬다. 나는 나보다 나의 학생이 언제나 먼저였다.



한 번씩 정신을 차리고 나를 되돌아보면 슬픔이 가득 차오른다. 마음이 먹먹하고 숨이 막힌다.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화낼 힘도 없이 지쳐서 쉬고 싶어 진다. 지금 나는 출근을 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 쉬고 있음에도 쉬는 것 같지 않다. 정말 쉬고 싶은데 그렇게 하질 못하니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다.



그래서일까. 요즘의 내 생활은 더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산만함이 더 심해졌고, 부주의해졌다. 며칠 전에는 요리하다가 불이 났다. "불 안 끄고 왜 가만히 있냐"라는 말과 함께 친오빠가 불을 꺼줬다. 어떤 활동을 하든 효율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안정성도 고려하지 않는다. 더 편한 방법이 있음에도 그냥 몸이 움직이는 대로 하다가 망치기 일쑤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도 몸은 멋대로 움직인다. 친구를 차에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신호등에서 차를 멈췄다. 친구가 "왜 멈춰? 지금 초록불이야."라고 말해주지 않았으면 계속 서있었을 것 같다. 비 오는 날 저녁에는 좌회전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하다가 차선을 잘못 들어 역주행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서 다행이었다.


운전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운전을 한다. 다리를 건너다가 투명한 유리바닥을 보면 그 위에서 쾅쾅 뛰어본다. 밤중에 내려다보는 물결이 편안해 보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이유는 너무도 많다. 최근에는 일을 하지 않아서 나에게 더 집중할 시간이 비교적 많아졌고, 덕분에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정리가 되지 않아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많이 힘들었구나, 너무 참기만 했구나,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아서 내 아픔을 매번 무시했구나, 아플 때 아프다고 했어야 하는데, 1번 정도는 괜찮다고 넘겼던 게 쌓이고 쌓여 결국 상처들이 곪고, 썩어버렸다. 스스로를 잘 돌봐보겠다고 다짐을 했었음에도 아직은 서툴러서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나의 한 걸음이다. 우선은 나에 대해 스스로 알아가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 느려도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추어 나아가보려 한다.


어제 인터넷에서 본 글이 있다. 긍정적인 어머니의 말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시험에서 45점을 받은 아이에게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100점인데 45점이나 더 맞았다니 대단하구나"라고 했다. 갑자기 내가 칭찬을 받은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 100점이구나. 가끔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살아있으니 100점이구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100점이다. 잘했다. 장하다. 대단하다.

기특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내일 또 만나길 바란다.

모레도 글피에도, 그글피에도, 그리고 몇십 년 후에도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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