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성공적인 학습의 과학
나름 독서를 취미로 하면서 사시사철 장르를 불문하고 책을 놓질 않는데. 이따금씩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을 지인들에게 내용을 소개라도 하려고 하면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린 적이 몇 차례나 있다
학창시절에도, 회사생활에서도 기억력은 번뜩이는 편은 아니었기에 그냥 넘어갈만도 한데, 어떤 기억들은 또 방금 인화한 사진처럼 선명하게 눈앞에 보여 그저 그림을 말로 읽어만 내면 되니 영 기억력이 나쁘다고 인정하고 살기는 싫은 것이었다.
이 책은, 기억을 포함한, 학습이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을 내어놓는데 왜 나의 공부, 그리고 독서는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였는지 지적함과 동시에 실천할 수 있을 수준으로 권장되는 학습법도 제시해주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억 이란, 학습 후에도 계속해서 효용가치가 있는 상태, 즉 내 머릿속의 책꽂이에 보관되어 있어서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어 활용할 수 있는 영구적인 기억을 얘기한다.
학습된 내용(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망각을 이겨내야 한다. 기억을 망각으로부터 면역력이 생기게 하는 방법이 결국 기억, 학습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물론 어떤 것을 배우는 것에 있어서 '기억'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식만 많고 독창성이 부족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식의 탄탄한 토대가 없는 창의력 역시 모래성에 불과하다.
암기는 무시해도 된다? 교육은 고차원적 기량을 배양해야 하므로 암기는 무시하라는 말이었다. 과연 그럴까? (중략)
기본적인 지식 습득과 창의적 사고의 계발을 맞서게 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둘 다 장려되어야 한 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지식이 풍부할수록 낯선 문제를 다루는 데 창의력이 더욱 섬세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지식만 많고 상상력과 독 창성이 부족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식의 탄탄한 토대가 없는 창의력 역 시 모래성에 불과하다.
기억을 면역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인출(Retrieval) 이다. 단순히 정보를 뇌 속에 차곡 차곡 쌓으려만 하지말고, 이 정보를 끄집어내는 연습, 경험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출하는 연습 사이에 의도적으로 시간 간격을 두고 몇 번 연습하면 이렇게 학습된 기억은 영구적인 기억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어떤 종류든 인출 연습은 일반적으로 학습에 도움이 되지만, 인출에 인 지적 노력이 더 필요한 경우 기억에 더 잘 남는 것으로 보인다.
인출 연습은 최근 몇 년간 널리 연구되어왔다. 이에 따르면 수업 시간에 한 번만 시 험을 보아도 기말 시험 점수가 크게 향상될 수 있으며 학습상의 이득은 시험의 횟수에 따라 함께 증가한다.
반복 인출이 어떻게 기억을 강화하는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 명하든,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시험 효과는 실재한다. 기억을 인출하는 행위 자체가 기억을 변화시킨다. 나중에 다시 인출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실제로 뇌에 변화를 준다! 학습 작용을 통해 신경 회로의 발달이 촉진되는데, 지식 처리의 속도는 이런 발달을 통한 뉴런 연결의 탄탄함과 비례한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내 키와는 다르게, 신경 회로의 성장은 평생에 걸쳐 계속 일어난다.
한편, 이런 인출 연습에 있어 가장 추천되는 형태는 다름이 아닌 시험 이었다. 배운 것을 인출해보고, 또 어떤 점이 부족한지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로서의 시험은, 대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과는 받내로 학습 효과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중략) 이 연구는 지식 처리 속도가 뉴런 연결의 탄탄함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생애 초기에는 뉴런 연결의 탄탄함을 주로 유전자가 결정하지만 대개 신경 회로는 신체 가 성숙하는 속도만큼 일찍 발달하지 못하고 40대, 50대, 60대가 될 때까 지도 계속 변화하고 성장한다.
이렇게 신경 회로가 성숙함에 따라 축삭돌기를 감싸고 있는 미엘린 수초는 점점두꺼워진다. 수초 형성은 일반적으 로 뇌의 뒤쪽에서 시작해서 앞으로 진행되며 성인이 될 무렵에는 전두엽 까지 다다른다. 전두엽은 뇌의 실행 기능(executive funcion)을 수행하고 고차원적 추론과 판단, 경험을 통해 연마한 기술 등을 처리하는 영역이다.
미엘린 수초의 두께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연습을 많이 할수록 연관된 경로를 따라 미엘린 수초가 더 많이 형성되고 전기 신호의 강도와 속도도 높아지며 그 결과 수행의 수준도 높아지는 것이 아주 명백히 드러난다.
그 외에 기억을 강화하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 세 가지가 상당히 내 경험과 유사했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사원들이 돌아가면서 세미나를 했다. 업무와 관련되는 주제들로 세미나 목차가 꾸려졌고, 선배들은 청중으로서 참석하고, 후배들은 돌아가면서 자기 차례의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자료를 만들어 발표하는 식이었다.
조직문화 진단에서 '교육 기회가 부족해요.'라는 의견이 많아서 시행된 이 제도는 '선배가 강의는 해주지 못할 망정, 후배가 공부해서 떠먹여줘야하냐'라는 볼멘소리로 이어졌다. 때때로 선배들은 대답하기 어려운 예리한 질문을 던지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세미나가 여러 차례 진행되면서 생각보다 듣는 사람보다 준비한 사람 본인에게 도움이 많이 된다는 피드백이 쌓이기 시작했다.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공부하고, 나만의 언어로 표현해보면서 인출을 연습한 것이고, 또 숙련된 선배들로부터 학습한 내용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모르는 부분까지 지적 받아 알게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공부인 셈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서 다양한 학습 기법들을 소개할 때, 예전에 '세미나' 일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고, 이 과정에서 나름 논리적으로 기법들을 내 것으로 재구성하는데에 성공했는데,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넓은 맥락에서(Larger context) 학습한 내용을 복습한 것이었다.
결국 책에서 말하는 내용은 『Grit 』의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지적능력은 계속해서 성장한다. 본능적으로 틀리는 경험을 겪기 싫어하고, 잘 알고있다고 착각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겨내고, 계속해서 인출하고, 완벽하게 배웠다는 착각 을 계속해서 점검해나가야 한다.
완벽하게 배웠다는 착각은 상위 인지(metacognition), 즉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례로 볼 수 있다.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 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마음 한켠의 욕망을 잠깐 누르고, 성장을 위한 한걸음을 계속 내밀어 갈 때 자신을 정확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성장의 사고방식 이다.
똑똑해 보이는 것에 집중할 때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목표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작은 위험은 물론이고 위대함으로 이어지 는 대담하고 이상적인 활동 역시 피하게 된다.
캐롤 드웨의 말처럼 실패는 유용한 정보를 주고, 정말로 전념할 목표가 있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드웩, 터프와 그 분야의 동료들이 꼭 알아두라고 강조하는 지침은 이것이다. 더 높은 수준의 학습과 성공에 필요한 가능성, 창의성, 끈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은 IQ 보다도 훈련, 의지, 성장 사고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