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스 왕은 나라를 세울 때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신탁을 받았다. 그에 따라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왕권을 증명할 징표로 황소를 보내주길 요청한다. 포세이돈은 누가 보아도 탐나는 흰 황소를 파도 위에서 떠오르게 했다. 다만 한 가지 단서가 붙었다. 이 황소를 징표로 사용하고 난 후에는 자신에게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멋진 황소가 아까웠던 미노스 왕은 이 황소는 자신이 키우고 다른 황소를 끌고 와 모두를 속이고 제물로 바친다. 포세이돈을 기만한 대가는 혹독했다. 화가 난 포세이돈은 왕비 파시파에의 마음에 음욕을 깃들게 하여 황소에게 사랑의 욕망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도 고통스러운데 자신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황소로 인하여 왕비는 병이날 지경이었다.
이때 왕비가 찾아간 사람은 다이달로스였다. 크레타 최고의 천재 장인이었지만 도덕적 판단보다 창조의 욕망이 우선이었다던 그는 나무로 가짜 암소를 만들어 왕비를 그 안에 숨겼다. 암소인 줄 알고 이를 품은 황소로 인하여 아기가 태어난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미노타우로스이다. 그는 반은 인간, 반은 황소였다. 미노스 왕은 그를 아들로 받아들일 수도, 괴물로 배척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미노타우로스가 주식으로 선택한 것은 인간. 자식을 직접 죽일 수 없었던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그를 가둘 미궁 즉 라비린토스를 만들게 한다.
이후 왕은 미노타우로스를 위하여 매년 아테나에서 젊은 남녀 14명을 바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아테나이의 영웅 테세우스는 자국의 국민이 매년 죽음의 제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겠다고 제물로 둔갑하여 자원했다. 테세우스를 처음 본 아리아드네는 첫눈에 반하여 그가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 후 무사히 나올 수 있도록 실패를 건네고 바람대로 이루어진다.
이야기의 끝은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해피 엔딩으로 이어질 것 같았지만 결말은 예상과 달랐다. 이후 테세우스는 그녀를 데리고 나라를 떠나 그녀를 낙소스 섬에 버리고 가버린다. 버려진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디오니소스. 그는 그녀와 결혼하여 그녀를 신의 반열에 올렸다. 미노스 왕은 격노했다. 화가 난 나머지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로에 가두지만 그들은 하늘을 나는 신발로 탈출한다. 이카로스는 너무 높이 날아 떨어져서 죽고 다이달로스는 시칠리아 왕국으로 도망을 간다.
다이달로스는 그곳에서도 놀라운 손재주로 인하여 환영을 받았다. 그를 잡기 위하여 뒤따라간 미노스 왕은 시칠리아의 공주들과 다이달로스의 계략에 빠져 죽고 만다. 사후 그는 지하 세계에서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재판관 3인 중 한 명으로 발탁되었다. 아리아드네는 그곳에서 디오니소스가 한눈에 반하여 결혼을 하게 되고 거의 신격화되어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는 픽션들로 유명한 호르헤 루이스의 보르헤스의 알레프를 가져왔다. 이 작품은 19편의 단편이 실린 모음집이며 여러 신화와 관련이 있다. 그중에 아스테리온의 집이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 속 아스테리온은 미로 속에 갇힌 게 아니다. 자유롭게 밖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그가 나가면 사람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기에 어지간하면 나가지 않는다. 그는 신탁을 하나 받았다. 어느 날 자신을 그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구해줄 사람이 들어온다고. 매번 사람들이 오면 아스테리온이 뭘 하기도 전에 다 죽어버린다. 그래서 그의 칼에 피가 물든 적은 없지만 모든 사람은 다 자유를 찾았다고 나온다.
너무 외로워 제2의 자신을 가상으로 만들어 이런저런 역할 놀이를 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보고도 죽지 않는 인물이 들어온다. 바로 테세우스. 그래서 아스테리온은 전혀 거부하지 않고 테세우스의 칼을 맞아 자유를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로 속에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고독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니 재미로만 봐주시길 바란다. 신화의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 몇 가지 가설을 더해 보았다. 바로 모든 왕이 벌벌 떨던 신탁과 신화의 상징적인 면을 파헤치면서 아리아드네의 역할을 조금 더 비중 있게 만들어 보았다.
"미노스 왕, 미노타우로스는 내가 너에게 내리는 벌이야.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미노타우로스를 지켜야 해. 안 그러면 너와 나라는 끝장이야. 다만, 그가 신이 지정한 사람이 그를 죽인다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책임을 묻지 않을게. 근데 그게 너희 나라 사람은 아니야."
이런 신탁이 있었다고 해 보자. 그러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왕비의 불륜에도 그를 아들로 인정하고 손을 대지 않음도 이해가 되고, 엄청난 미로는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함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함이 되어 버린다. 이런 그를 테세우스가 운명에 따라 죽이고 만다. 이러면 14명의 제물로 들어간 인물이 굳이 아테나이 사람이어야만 했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신탁에 의해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할 목적의 사람.
아리아드네가 처음 본 남자에게 실패를 준 것도. 이렇게 되면 낙소스 섬에 아리아드네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이별이 되어 비련의 여주인공의 비중이 낮은 자리가 아니라 신격화된 자리에 앉는 결말이 이해가 된다. 미노타우로스는 죽음으로 자유를 얻게 되고 미노스 왕은 이제 자신의 왕권과 국가의 이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면 미노타우로스가 죽고 난 후 왕의 분노가 설명이 된다. 나라의 골칫덩이를 없애준 것치고 신화에서의 그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자면 포세이돈이 이런 신탁을 내렸다면 미노타우로스를 절대로 죽일 수 없었고, 자국민의 손이 닿게 둘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라와 자신의 운명이 달려 있었기에. 미노스 왕은 공정함과 결백함을 요구하는 재판관이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끝까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야 공정함이 인정되어 재판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인물은 다이달로스이다. 그의 행동들을 보면 기술과 윤리를 바로 떠올릴 수 있다. 머리와 솜씨가 좋아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내는 그였지만, 왕비의 불륜을 위한 황소를 만들 정도로 윤리 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이달로스를 보면서 AI를 비롯한 각종 과학이 발달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윤리 의식이 제거되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 발생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신화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해석을 허용하는 이야기이다. 그 빈틈을 상상력으로 메우며 아리아드네와 미노타우로스를 다시 바라보려 했다.
미노타우로스는 단순한 괴물일까? 신의 저주인가, 인간의 죄악이 만들어낸 비극인가? 어쩌면 그는 포세이돈이 내린 형벌이 아니라, 미노스 왕이 신과 백성, 그리고 스스로를 속인 대가로 태어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미노타우로스는 과연 죽어야 했을까?
테세우스의 칼이 그를 죽이던 순간,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괴물로 태어나 미로에 갇혀 살다가,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해방될 수 있었던 존재. 그의 죽음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희생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이 만든 공포의 산물이었을까? 미노스 왕이 끝까지 자신의 손을 피로 물들이지 않은 것은 단순한 왕의 도덕성이었을까, 아니면 신의 저주를 두려워한 것뿐이었을까? 신탁의 진실이 무엇이었든, 그는 결국 신들의 세계에서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재판관이 되었다. 스스로의 손을 더럽히지 않은 자만이 공정할 수 있다는 듯이.
그리고 아리아드네. 그녀는 사랑을 위해 실패를 건넨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따르기 위해 한 선택이었을까? 낙소스 섬에 남겨진 그녀를 신이 데려간 것은 비극일까, 아니면 인간의 세계를 떠나 신들의 세계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었을까?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그것은 신과 인간, 운명과 선택이 얽힌 거대한 퍼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퍼즐을 맞추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신들이 만들어 놓은 운명에 따라 휩쓸리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신화 속 인물들과 얼마나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