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는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랐을 때, 바다에 떨어진 정액과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이 전승은 그녀의 이름이 거품을 뜻하는 아프로스에서 유래했다는 점과 연결되며, 그녀가 서풍 제피로스에 의해 키프로스 섬으로 인도되어 아프로디테 포르네(음란한 아프로디테)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또 다른 전승에서는 그녀를 제우스와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묘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지역과 전승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손꼽히는 아프로디테는 여러 신들로부터 구애를 받았지만, 결국 제우스는 그녀를 헤라가 남성 없이 낳은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결혼시킨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마법의 허리띠 케스토스 히마스를 이용해 아레스와 사랑에 빠지고, 이들 사이에서는 포보스, 데이모스, 에로스, 안테로스, 하르모니아가 태어난다. 이들의 사랑은 결국 태양신 헬리오스에 의해 들통나고, 헤파이스토스는 보이지 않는 그물로 두 사람을 포획하여 신들에게 공개한다. 사건은 포세이돈의 중재로 마무리되지만, 아프로디테의 연애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또 다른 신인 헤르메스와도 관계를 맺어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낳는다. 그는 열다섯 살 때 요정 살마키스와 융합되어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지닌 존재가 되었고, 이후 그 호수에 뛰어든 자도 같은 존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신들이 이를 들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프로디테는 인간 남성인 안키세스와도 사랑을 나누어 아이네이아스를 낳았고, 그는 훗날 로마의 시조가 되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조상이 된다.
또한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가장 널리 알려진 에로스의 탄생에 대해서도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카오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가장 원초적인 설화부터, 닉스나 포로스와 페니아의 결합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 혹은 아레스 또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까지 일곱 가지에 이른다. 가장 유력한 전승은 헤르메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과 상징이 이를 뒷받침한다. 에로스는 그 부모의 상징을 그대로 물려받아,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고 관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프시케와의 이야기는 인간과 신의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고난과 시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신화다. 프시케는 인간 왕의 딸이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신들의 영역에 가까워 사람들이 더 이상 아프로디테를 숭배하지 않게 만들 정도였다. 이에 분노한 아프로디테는 에로스를 보내 프시케를 추락시키려 했지만, 에로스는 프시케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는 아프로디테 몰래 프시케를 보호하며 산속의 궁전으로 데려가 함께 살게 하지만, 조건은 단 하나, 그의 얼굴을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프시케는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이고 사랑을 키워갔지만, 그녀의 언니들의 질투 어린 말에 휘둘려 결국 밤중에 촛불을 켜고 에로스의 얼굴을 확인하게 된다. 그 순간 촛농이 그의 어깨에 떨어지고, 배신감을 느낀 에로스는 그녀를 떠나버린다. 이후 프시케는 에로스를 되찾기 위해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찾아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게 된다. 곡식의 분류, 양털 채취, 지하 세계에서의 임무 등 불가능한 과제를 수행하며 그녀는 점점 더 성숙해진다. 마지막으로 지하 세계에서 받아온 단장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안을 들여다본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버리고 만다.
에로스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깨우고, 제우스에게 청하여 프시케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준다. 신들의 회의 끝에 아프로디테도 이를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다시 결합하게 된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헤도네(기쁨)라 불리며, 사랑과 영혼의 만남이 가져오는 궁극적인 감정을 상징한다.
아프로디테의 사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불완전하거나 금기시된 결혼과 불륜, 둘째는 인간과의 사랑 같은 이루어질 수 없는 열정이다. 전자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후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안드레 애치먼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에서 나타난다. 사랑을 둘러싼 갈등과 파국,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는 이러한 작품들은 아프로디테의 신화에서 비롯된 감정의 원형을 공유한다.
헤르마프로디토스의 경우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미들섹스처럼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과 연결된다. 더 나아가, SF 장르에서 성별의 모호함이나 성 구분 없는 생식 구조를 다루는 작품들 역시 이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앤젤라 채드윅의 XX는 여성 간 생식이라는 급진적인 상상을 통해 성과 존재의 경계를 재조명한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처럼 신분과 본질의 차이를 넘는 사랑의 전형으로, 사랑이 육체적 매혹을 넘어 정신적 교감과 시련을 통해 성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미술에서는 카노바의 고전적 조각부터 뭉크의 고뇌 어린 그림까지, 에로스의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천사, 악마, 혹은 맹목적 충동으로 다양하게 묘사되며, 사랑이라는 감정의 양가성과 복잡함을 예술로 승화시켜 왔다.
신화 속 인물은 우리가 흔히 사람처럼 인격체로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개념이나 상징을 인격화한 존재이다. 아프로디테는 사랑과 아름다움이라는 추상 개념이 의인화된 존재이며, 그녀의 연애나 결합은 단순히 인간적인 연인 관계가 아니라 상징과 상징, 개념과 개념의 결합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그녀가 여러 신들과 맺는 관계는 각각 고유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시각으로 단순히 음란함이나 도덕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이러한 신화의 구조를 오해하는 셈이다. 그녀의 관계들을 통해 사랑이 무엇과 만나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레스와의 결합: 사랑과 전쟁의 조합은 열정과 파괴가 공존하는 폭발적인 감정을 낳고, 포보스(공포), 데이모스(공포심), 에로스(사랑), 하르모니아(조화)라는 상반된 후손들을 탄생시킨다.
헤르메스와의 결합: 지혜와 아름다움의 결합은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 즉 양성성을 지닌 헤르마프로디토스를 통해 표현되며, 이는 성의 고정성을 해체하는 은유로도 해석된다.
디오니소스와의 결합: 쾌락과 다산이 결합하여 욕망의 해방과 생명의 풍요로 이어지며, 프리아포스라는 생식의 신이 탄생한다.
안키세스와의 결합: 필멸자와 신의 사랑은 인간 세계 속에서조차 사랑이 신성한 힘으로 작용함을 보여주며, 아이네이아스를 통해 로마 신화로까지 연결된다.
아도니스와의 결합: 사랑과 덧없는 생명의 조합은 비극이지만 강렬한 감정을 남긴다. 아도니스와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으며, 이 짧고 덧없는 사랑은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파리스와의 결합: 선택과 유혹의 상징으로서, 사랑이 세계를 전쟁으로 몰고 갈 수 있는 힘을 지녔음을 드러낸다.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한 대가는 헬레네와의 사랑이었고, 이는 곧 트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국을 불러오는 신화적 전환점이 된다.
에로스와 프시케: 사랑과 정신, 육체와 영혼의 결합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를 초월하는 시련과 구원을 통해 완성되는 여정임을 보여준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헤도네는 사랑의 궁극적 결실이 기쁨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전한다.
이처럼 아프로디테의 다양한 관계는 단지 음란함의 상징이 아니라, 사랑이 무엇과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의미와 힘을 창조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신화적 실험이자 비유다. 그녀는 단순한 미와 사랑의 여신이 아니라, 금기와 욕망, 질서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존재다. 그녀의 사랑은 종종 파국을 불러오며, 이는 그녀가 상징하는 사랑이 단순한 조화가 아니라 충돌과 불균형 속에서 발생하는 강렬한 감정임을 보여준다.
에로스 역시 그 존재 자체가 시대에 따라 상징성이 달라지는 대표적인 신이다. 고전 고대에서는 천사의 모습을 한 무해한 사랑의 신으로, 종교의 색채가 가장 강했던 중세에는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악마적 존재로, 르네상스에는 인간 내면의 갈망을 대변하는 이상적 존재로 변모해 왔다. 특히 중세에는 가슴에 심장을 꿰는 탄창을 멘 모습, 눈을 가리고 맹목적으로 화살을 쏘는 존재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사랑이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파멸로 이끈다는 당대의 시각을 반영한 결과이다. 반면 르네상스 이후에는 눈가리개를 벗은 에로스가 등장하면서, 사랑이 파괴만이 아닌 구원과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변화는 에로스가 단순한 신이 아니라 시대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 개념임을 잘 보여준다.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이야기는 존재의 경계를 넘는 통합, 곧 새로운 가능성의 탄생을 보여주며 이는 단지 육체의 융합이 아닌 정체성과 개념의 재편으로도 읽힌다. 아프로디테가 신과 인간을 넘나들며 사랑을 실천하는 방식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감정의 깊이와 복잡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아프로디테는 인간과 신의 경계, 사랑과 욕망, 금기와 충돌의 정점에 위치한 존재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의 승리가 아니라, 감정의 복잡성과 존재의 모호함을 드러내는 신화적 장치이다. 그녀의 자식들과 그 후손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까지 포함하면, 아프로디테는 단지 사랑의 여신을 넘어 하나의 신화적 세계관을 이루는 핵심축이 된다.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는 결국 아프로디테로부터 흘러나온 고대의 정념과 그 그림자를 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