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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하다가 헌신짝처럼 버려진 신화 속 배신자들

프로크리스, 스킬라, 메데이아, 아리아드네

by 야담

신화 속 배신자들은 감정 하나에 모든 걸 건 여자들의 반복된 서사를 따라간다. 그녀들은 헌신했지만 신화는 그들을 배신자로 기록했고 결국 남은 건 버려진 감정뿐이다. 이 글에서는 네 가지 신화 사례와 현대 문학 속 유사 구조를 통해 판단력 없이 감정만 좇은 이들의 반복된 파국을 짚어본다.




신화 이야기




케팔로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시던 프로크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프로크리스는 여신과의 서약을 어기고 케팔로스와 결혼하며 마법의 창과 사냥개까지 그에게 내어준다. 그러나 어느 날 케팔로스가 사냥 중 중얼거린 “아우라여,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해다오”라는 말을 들은 이가 그녀에게 바람을 피운다고 오해를 전한다. 프로크리스는 그의 뒤를 몰래 따라가 덤불에 숨어 기다리다 인기척에 놀란 케팔로스의 창에 맞아 죽는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야 진실을 알지만 모든 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스킬라는 니소스 왕의 딸로 아버지의 머리카락 하나가 나라의 운명을 지키고 있다는 전설이 있는 인물이다. 미노스 왕이 쳐들어오자 스킬라는 그에게 한눈에 반해 자신의 아버지를 배신하고 머리카락을 잘라 넘긴다. 그러나 미노스는 그녀를 더러운 배신자라며 외면하고 떠난다. 사랑을 믿고 모든 것을 내던졌지만 돌아온 건 경멸과 버림뿐이다. 스킬라는 그 뒤를 좇다 바다에 빠지고 결국 새로 변해 하늘로 날아간다. 그녀의 사랑은 끝내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반해 아버지인 아이에테스를 배신하고 불을 뿜는 황소를 제어하는 약과 마법으로 그를 돕는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오빠를 죽이기까지 하며 이아손과 도망치지만 이아손은 그 후 다른 여성과 혼인을 결심한다. 배신당한 메데이아는 그를 응징하기 위해 신부에게 저주받은 예복을 보내고 자식들까지 죽인다. 그녀는 강인한 여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감정에 삼켜져 이성을 잃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의 헌신은 이성 없는 복수로 변모하고 결과는 파괴뿐이다.



아리아드네는 크레타 섬의 공주로 테세우스를 도와 미궁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탈출할 수 있도록 실타래를 건넨다. 이로 인해 그녀는 조국을 배신하고 그와 함께 도망치지만 테세우스는 그녀를 낙소스 섬에 홀로 버린다. 다행히 디오니소스가 그녀를 거두고 신으로 만들어주며 결말은 비극을 피하지만 그녀 역시 감정에 기댄 선택으로 인해 구조로부터 소외된다. 그녀가 믿은 사랑은 돌아오지 않았고 구조는 그녀의 헌신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었다.




신화와 문학




장아이링의 색, 계에서 여주인공 왕지아즈는 항일 조직의 지령을 받고 친일파 이 선생에게 접근해 암살하려 한다. 하지만 작전 중 점차 그에게 진심으로 끌리게 되고 암살 직전 그에게 탈출을 알린다. 이 선생은 그 덕에 살아남지만 왕치아즈는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처형된다. 그녀는 첩자의 임무보다 감정을 우선했고 그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구조는 그녀의 감정적 선택을 용납하지 않고 냉혹하게 응징했다.



마이클 온다리치의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는 헝가리 탐험가 알마시가 주인공이다. 그는 영국 장교의 아내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지만 전쟁이라는 구조 안에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독일군에 군사 정보를 넘긴다. 그녀가 다친 채 동굴에 남겨진 동안 그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사막을 넘고 결국 독일군의 도움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그녀는 죽고 없다. 그는 그녀의 시신을 옮기다 비행기 사고로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고 전후에는 이름도 없는 환자가 되어 병상에 누워 있게 된다. 감정이 구조를 이길 수 있다고 믿은 그의 선택은 끝내 누구도 구하지 못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귀부인 안나가 사랑을 선택하며 사회적 몰락의 길을 걷는 이야기다. 그녀는 남편과 자식, 지위까지 포기하지만 연인 브론스키와의 관계 역시 불안정해진다. 사회는 그녀의 감정적 일탈을 용서하지 않고 그녀는 점차 고립된다. 끝내 기차에 몸을 던지며 생을 마감하는 그녀의 서사는 감정만을 좇는 선택이 사회 구조 속에서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감정은 아름다울 수 있으나 질서 안에서는 언제든 죄가 된다.




고찰


이 신화와 문학 속 인물들은 모두 강한 감정에 이끌려 판단을 흐리며 파국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건 이들이 단지 피해자나 비운의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화는 이들을 비극적으로 묘사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선택에 책임을 묻는다. 그들은 사회 질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감정만을 믿었고 그 감정은 사회 질서 속에서 무력했다. 사회 질서는 개인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제거하거나 처벌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그 결과 이들은 사랑을 위해 행동했지만 파괴와 배제로 응답받는다.



감정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힘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선택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이성적 분석이나 전략적 판단 없이 감정에만 의존할 때 인간은 통용되는 질서를 무시하게 되고 이는 곧 파국으로 연결된다. 신화 속 배신자들은 모두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일탈을 감행하지만 그 어떤 이도 사회 질서를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 질서는 이들을 가차 없이 배제하며 감정을 ‘불순물’로 간주하고 제거한다. 결국 그들의 사랑과 분노는 사회 질서 안에서는 ‘오류’로 처리된다.



메데이아는 복수의 대가로 자녀를 희생시키며 자신의 감정을 신격화하지만 신화는 그녀를 구하지 않았다. 스킬라는 사랑을 위해 나라를 팔았지만 미노스는 그녀를 경멸했다. 이들은 모두 사랑을 ‘절대적 정당성’으로 믿었지만 공적 질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정은 그 세계의 기준 안에서 권력이 아니었고 지배 질서를 바꾸기 위한 도구조차 되지 못했다. 신화는 이 과정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감정의 실패를 기록한다. 사랑은 위대했지만 그 사회의 규범 안에서 무력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비극은 예정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감정을 중시하라는 메시지를 자주 접하지만 현실에서 감정은 여전히 사회적 기준에 의해 재단된다. 특히 여성의 감정은 시대를 막론하고 쉽게 ‘과잉’으로 취급되고 ‘불안정’한 것으로 낙인찍힌다. 메데이아의 분노가 광기로 읽히고, 아리아드네의 헌신이 버림받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감정은 언제든 사회 질서 안에서 ‘위험’으로 간주되며 그 위험은 제거의 논리를 정당화한다. 신화는 이 불균형을 드러내면서도 냉정하게 그 메커니즘을 재현한다.



이성 없는 감정은 위험하다. 하지만 이 말은 감정을 억제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감정을 사회 안에서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감정은 단지 즉흥적 충동이 아니라 의미 있는 대응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지닌다. 문제는 그것이 현실의 규범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현될 때다. 신화 속 인물들은 감정을 절대화했고 그 결과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배적인 질서를 설득하거나 협상하지 않았고 감정만을 무기 삼아 싸웠기에 그 기준 안에서 패배한 것이다.



통용되는 질서는 인간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감정이 기존의 질서를 위협할 때 그 기준은 감정을 제거하려 한다. 이성 중심의 사회, 권력과 질서 중심의 세계에서는 감정은 종종 경계 밖으로 밀려난다. 메데이아의 선택이 처벌로 이어지는 것처럼 감정은 그 체계의 틈 안에서 살 수 없다. 지배 질서를 바꾸려면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며 감정은 언제나 전략과 설계 없이 움직이면 오히려 자신을 소진시킨다. 신화는 이 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그 사회의 질서와 감정의 충돌을 그려낸다.



신화는 강한 감정을 가진 이들을 찬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이 가져올 결과를 경고하고 그들이 통용되는 질서 속에서 어떤 식으로 소외되는지를 보여준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도왔지만 버려졌고, 프로크리스는 사랑을 의심하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다. 그 누구도 사회적 기준 안에서 자기 감정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신화는 이 실패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의 과잉은 자멸의 서곡이며 그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자는 반드시 배제된다는 법칙을 반복한다.



이 점에서 신화 속 감정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렵고 위험하며, 통제되지 않으면 자신도 타인도 해칠 수 있는 불완전한 힘이다. 메데이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녀의 감정은 사랑과 증오를 모두 품고 있으며, 그것이 동시에 발현될 때 그녀는 신화 속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그 위험은 그녀의 본성이 아니라 그녀가 감정 외에 다른 선택지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녀의 파국은 감정의 위대함이 아니라 감정의 고립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신화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감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전략이나 현실 조건에 대한 인식 없이 감정만으로 움직일 때 문제는 생긴다. 사랑, 분노, 질투, 헌신 이 모두가 인간을 움직이지만 그 에너지는 사회 질서 속에서 변형되며 재단된다. 감정을 현실의 기준 안에 위치시키지 못한 인물들은 그 에너지로 그 질서를 깨뜨리려 하지만 결과는 늘 자신이 그 세계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파국은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방식에 달려 있다.



우리는 여전히 감정을 찬양하고, 진심이면 통한다는 말을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신화는 이 믿음이 지배 질서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다. 감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쉽게 배제되는 이유가 된다. 감정에 책임을 더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파괴의 불씨로 남는다. 이 신화들은 그 점에서 감정의 위험성과 현실의 냉정한 기준들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경고는 고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결론




신화 속 배신자들은 감정에 이끌린 선택이 사회 질서 속에서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무너진 이들의 서사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경고이며 동시에 인간 감정의 한계를 드러내는 분석이다. 그들은 감정을 선택했지만 그 세계의 질서는 감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파국은 예고된 것이었다. 신화는 말한다. 감정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지만 세상은 감정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공적 질서는 감정의 진심을 묻지 않으며 감정에 이성이 더해지지 않을 때 그것은 파멸의 씨앗이 된다. 그러므로 감정이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현실을 관통하는 기준들에 대한 인식과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이 신화가 우리에게 반복해 던지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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