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기도는 나의 음악 /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 사랑은 단 하나의 / 성스러운 깃발...’로 시작하는 ‘민들레 영토’라는 시는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한참 감수성 예민하던 아이들은 그 시를 수학 문제 풀던 연습장에 멋 부려 필사해서는 친구들에게 보내곤 했다 (이런 게 도대체 언제 적 얘긴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매일 보는 친구들에게 무슨 편지를 그렇게 많이 썼는지, 한 문장이 세 단어를 넘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은 이해 못 할 것 같다. 공부는 하지 않아도 밤마다 편지는 썼으니까. 게다가 ‘민들레 영토’는 예쁘장한 수녀, 이해인이 쓴 시라니까 더욱더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세상과 동떨어져 수도하며 기도처럼 담아낸 시에는 꽃내음과 바람결과 푸른 하늘이 가득했다. 이해인의 시가 7,80년 대 시문학의 대중화에 한몫했음이 분명하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도 신촌에는 ‘민들레 영토’라는 술집, 카페, 식당 등이 있었으니 그녀의 인기는 꽤 오래 지속된 것 같다. 몇 년 전 시드니에서 ‘민들레 영토’라는 상호를 보고 혼자 웃은 적이 있었다, 그녀의 시는 시대를 초월하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녀의 시에 그렇게 몰입한 거 같지는 않다. 도대체 해맑은 얼굴과 예쁜 말로만 지어진 그녀의 투명한 시는, 내가 선입견으로 가지고 있던 시인의 고뇌나 시의 비극과 전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열네 살 내가 알고 있던 삶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궁금하지만. 하여튼 그녀의 시집은 가지고 있어도 별로 찾아 읽는 시는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가 오랜 대장암 투병 끝에 ‘고운 말은 꽃이 되고 고운 마음 빛이 되고’란 책을 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출판사 리뷰를 찾아보던 나는 “나의 잘못이나 허물을 지적받았을 때도 변명을 앞세우기보다는 일단 고맙다, 죄송하다는 말부터 먼저 하고 나면 마음이 자유롭고 떳떳해지는 승리감을 맛보게 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 온다.’ 이러한 속담을 의식적으로 자주 기억하면서, 아무리 화가 나도 극단적인 막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인내를 실습합니다. 남에게 들은 말을 어설프게 전달해서 평화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어리석음에 빠져들지 않게 해달라고 오늘도 기도합니다.”라는 구절에 끌려 이 책을 구입하기로 했다.
중년의 질풍노도 시기를 겪고 있는 지금, 세계적으로 횡행하고 있는 유튜브의 가짜 뉴스, SNS 막말, 편가름과 몰상식에 상처받고 있는 지금, 고운 말은 말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녀는 책에서, 역시 그녀답게, 언어문화나 습관의 예와 일상 매뉴얼을 통해 고운 말에 담긴 말의 힘을 담담히 써 내려갔다.
우리는 오랫동안 고운 말의 위력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권력을 가지려면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고 힘이 세야 하며 나아가서는 폭력적이며 악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권력은 ‘짓밟고’, 다른 사람의 인권을 '유린’하고, 자유를 ‘통제’하는 주체라고 체념하듯 믿어버리는 이유다. 권력의 결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권력을 잡는 과정도 다르지 않다. 권력 형성의 과정에 있어서만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권력을 잡는 순간 그 권력을 어떻게 잡았는가는 봉인되어버리기 일쑤이다. 권력의 주변에는 늘 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이유다.
고운 말은 전혀 우리가 알고 있는 권력의 속성을 닮지 않았다. 닮기는커녕 고운 말은 어찌 보면 하대와 무시로 일관하는 권력에 투항하고 복종하는 피권력자의 언어로 여겨진다. 공손하고 인내하는 삶의 태도는 고운 말에 담겨 말하는 사람의 위치를 확정한다. 특히, 한국말처럼 존대와 하대가 다양하게 구사되는 언어문화에서는 대화를 들어보면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관계가 단박에 드러난다. 예를 들어, 점원의 나이와 관계없이 무조건 반말로 시작하는 손님이 있다, ‘저거 얼마야?’ 손님이 반말을 하면 손님이 자기보다 어려 보여도 ‘네, 만원입니다’라고 존대를 하게 되는 게 점원의 위치다. 이 관계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로 깨끗이 정리된다. 몇 년 전 사회면을 장식했던, ‘라면 상무’라든지 ‘땅콩 회항’도 똑같은 맥락이다. 끝까지 '공손'만 하다가 비행기에서 내려지거나 라면 국물을 뒤집어쓰고도 아무 말 못 했던 비행기 승무원의 이야기를 상기할 때 과연 누가 고운 말에 그 어떤 권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럼에도 진실이 담긴 고운 말은 힘이 있다고 그녀는 조용히 항변한다. 가시가 장미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못하듯, 고운 말속에 담긴 진실의 첨예함 역시 고운 말의 고움을 훼손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모든 고운 말은 진실을 담고 있다. 진실을 회피한 고운 말은 사교의 언어는 될 수 있을지언정 영향력을 발휘하는 고운 말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십여 년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흑백 인종차별정책 (Apartheid) 폐기와 함께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그동안의 인종차별 폐해들을 청산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오랫동안 지배와 통제의 목적으로 자행되었던 국가폭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 여성은 아직 어린 소녀일 때에 백인 군인들에게 윤간당했던 기억을 위원회에서 담담히 기술했다. “그 사건을 기억하는 것조차 너무 아프고 무서웠기 때문에 나는 어린 나를 그 기억의 방의 구석에 세워놓고 나와야 했어요. 어린 나를 그곳에서 추방했지요. 난 그녀를 마주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 난 그녀를 데려오려 해요. 아직도 그 기억은 아프고 무섭지만, 오늘 그들을 용서함으로써 나 자신을 되찾고 싶어요.’ 그녀는 정연하게 자신의 경험을 구술했지만 끝내 터지는 울음을 붙잡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흐느낌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로서의 순전함을 무참히 훼손한 군인들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들을 용서함으로써 기억의 경계 밖에 서 있던 작은 소녀를 다시 삶으로 불러들여 성장하기를 원했다. 그녀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가장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가장 강력하게 관계의 주도권을 빼앗았다.
일제 말기, 해방을 몇 달 앞둔 후쿠오카의 교도소에서 이마 반듯하고 입매무새 단정한 28세의 젊은 시인이 눈을 감았다. 그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했고 일본에 유학하면서는 북간도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차였다. 자연의 변화에 섬세하면서도 추상과 같은 내면의 성찰을 쉬지 않던 시인은 제국주의의 가장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방법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다. 힘과 폭력으로 시인의 존재를 제압하고 말살하며, 대동아로 위세를 떨치던 제국주의는 이제 사라졌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던 윤동주의 아름다운 싯말은 지금도 살아 입술에서 입술로 가장 애송되는 시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저항하지 않았지만 어떤 저항시보다 폭력과 압제에 더 저항적이었고, 총칼을 휘두르지 않았지만, 고요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폭력을 물리쳤다.
우리는 고운 말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고운 말에 대한 생각의 틀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고운 말은 단지 교양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고운 말은 단지 언어를 사용하는 법이 아니다, 언어에 실린 가치관과 세계관이다.
고운 말은 단지 관계의 기술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연대하는 견고한 내부의 울림이다. 그리하여 대열에서 낙오하는 사람을 일으키고 격려하여 다시 걷게 하는 미학적 차원의 동력이다.
고운 말은 착한 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