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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01. 2024

드라마 마지막 편을 안 보는 까닭

꺄악, 왜 이렇게 멋있어. 얼마 전까지 '눈물의 여왕'에 나오는 백현우라는 캐릭터에 몰입해서 혼자 울다 웃다 난리였다. 드라마 방영시간에는 집안일이 끝나지 않을 때가 많아 보통 OTT를 통해 본다. 요즘은 드라마를 본방으로 보는 사람보다 OTT로 보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 같다. OTT가 없던 때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OTT를 통해 보는 드라마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원하는 때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것, 다음 화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예고편 없이 끝나던 드라마에 좌절하던 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다. 결말이 난 드라마를 몇 편씩 이어서 보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하루에 몇 편씩 볼만큼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다. 정말 궁금할 때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이동하며 본 적도 있다. 영 집중이 안되고 드라마 보는 맛이 사는 것 같지 않아 그만뒀다. 드라마가 끝나지 않았는데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 아쉬웠다. 보통 밥을 먹을 때 거치대를 놓고 넷플릭스를 켠다. 혹은 시간이 여유로운 날에는 안마의자에 앉아 넷플릭스를 켠다. 그렇게 띄엄띄엄 봐도 혼자서 여유롭게 보는 드라마가 내게는 휴식이다.

매번 다음 편을 기다리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라 드라마를 방영한 지 중간쯤 되었을 때 보기 시작한다. 한 편 보고 나도 아직 남아있는 것들이 한참이라 마음이 편하다. 대신 인터넷 뉴스의 연예코너는 건너뛰는 것이 좋다. 가끔 스포일러가 떡하니 제목에 나와 있는 예의 없는 기사가 테러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중간에 시작해도 일주일에 2편씩 나오니까 너무 속도를 내어 보면 다음 드라마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드라마 보는 데에도 적당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드라마가 종영했다. 출연자들이 종방연에 참여한 사진이 기사에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직 마지막 편까지 좀 남아있는데 나의 흥미가 롤러코스터를 탄 듯 맨 위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푹 빠져서 화를 냈다가, 슬퍼했다가 했는데 무슨 일일까. 갑자기 드라마가 액자 속 그림처럼 뚜렷하게 지어낸 이야기로 보여 나와의 거리가 아득할 만큼 멀어져 버린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야 계속 보는데 어떻게든 결론이 나왔다는 사실에 궁금증이 희미해진다. 보통 드라마 결말이 해피엔딩이라 그런 건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겠구나, 보지도 않은 마무리가 야무지게 지어져 있다. 좋아하던 연예인이랑 결혼할 것도 아니면서 결혼소식을 들으면 괜스레 마음이 멀어지는 느낌이랄까. 여하튼 이상한 심리에 휘말려 드라마를 마지막까지 보지 못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나의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 본다. 늘 발목을 잡았던 지구력 부족 탓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마지막 편 안 봤다고 여러 단점을 꺼내 들고 심각해진다. 이미 정해진 결말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신비주의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작전은 이런 심리를 알고 있기 때문일까. 단순하게 '시간의 문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까. 시간의 가성비를 매우 따지는 편이다. 드라마를 보는 것은 나에게 효율적인 시간 사용에 들어있을까? 밥 먹는 시간에 보고, 배속을 높여 보는 것은 가성비를 채워보려는 심산이다. 다른 할 일을 제쳐두고 휴식시간이라며 드라마를 볼 때는 가성비영역에서 탈락된 상태다. 가심비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가심비 영역에서 나의 만족을 충족시켜주고 있었는데 이미 예상되는 결론이 났다는 소식에 가성비영역으로 돌아간 것이다. 가성비영역에서 결론난 드라마는 이 일, 저 일에 치여 맥을 못 춘다. 그렇게 드라마 마지막 편마다 멀어졌나 보다.

시간을 두고 싸운다! image by freepik

스스로 시간부족자라고 생각한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할 정도로 빽빽하게 스케줄을 만들어놓고 종종 거리며 다닌다. 그 와중에 놓고 온 물건 가지러 닫힌 현관문을 다시 열어젖히고,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옆동네까지 차를 가지고 갔다 게시된 휴관 알림에 한숨을 쉰다.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니 바꿔 쓰기라도 하려고 시간의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한듯하다. 버리는 시간이 생길 것을 알고 드라마를 2배속으로 보는 것이다. 남들은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산다는데 나 혼자 24시간을 14시간으로 줄여 사는 느낌이다. 이러니 가성비가 중요하지. 가심비를 따지기 시작한 것도 그렇다. 줄어든 시간을 모두 가성비에 맞춰 사용하면 해야 하는 일, 필요한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에 쓸 시간이 없어진다. 가심비는 저성장에서 나온 트렌드라고 한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물건에 대한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서 만족도를 높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가심비의 영역에 두고, 아이가 하교하고 나면 가성비 영역이 시작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보니 만족스럽지 않고 불만이 커져서 화가 나기까지 해서 영역을 나누기 시작했다. 가심비와 가성비를 따져가며 일을 구분하고 배치했더니 전체 만족도와 효율이 모두 올라갔다. 예를 들면 혼자 있는 시간에는 집안일을 별로 하지 않는다. 집안일은 나에게 가성비영역의 일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신나게 수다를 떠는 일은 가심비의 영역의 일인데 행복한 에너지를 채워오니 가성비까지 챙기는 느낌이었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차 대신 걸어서 도서관을 다녀오는 일은 잠시라도 걷기를 할 수 있고 책 빌려오는 즐거움도 잔뜩이라 이 역시 가성비와 가심비 모두 만족스럽다. 집안일을 하며 오디오북을 들어보았는데 양쪽 모두에 집중이 되지 않아 가심비는 물론 가성비까지 떨어뜨려 그만두었다. 저녁 먹은 후에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니 당연히 가성비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아이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어 가심비의 영역으로 확실히 넘어왔다. 그 시점을 기점으로 다시 가심비의 영역이 시작된다. 이제 시간부족자가 아니라 시간관리자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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