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블루스
4.
연이가 어렵사리 교회에 다녀온 날에는 허리와 무릎의 통증이 심해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진통제와 파스로 아픈 곳을 달래며 젊은 시절에 몸을 돌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기사 젊을 때는 몸을 살필 겨를조차 없었다. 평온함이라곤 약에 쓸래도 없던 매일이 지옥 같았어도 몸은 돌봐야 했었는데...
친정아버지 일 년 탈상을 한 뒤로 연이는 작심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제사를 거둬 치운 연이로 인해 집안은 매일 전쟁 통이었다. 교회에 불 싸지른다고 위협하며 패악 질 하는 남편과의 무한 전쟁이 일상이었다. 연이는 꿋꿋하게 버티며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 제단을 쌓았다. 성실한 신자로서의 삶 만이 연이의 일상을 지탱하는 힘이었고 예수님은 연이를 인내로 이끄는 유일한 이유였다. 찬 새벽마다 눈물로 부르짖으며 남편을 용서하고 싶다고 몸부림쳤던 연이 마음을 남편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이해했다. 미안해했다. 그러나 연이 마음에 새겨진 못자국은 이미 상처가 되었다. 뒤늦은 용서는 연이를 위한 작은 위안으로 남았다.
연이는 건강을 이유로 주일 예배조차 참석하지 못하는 요즘이 안타깝다. 인생 말년에는 하나님 뜻에 따라 봉사하며 살리라 다짐했건만 그 조차 욕심이었는지 이제는 마음만 신자가 되어 버렸다. 힘쓰는 것 하나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정말로 몸 아끼지 않고 살아왔던 세월이건만, 연이의 말년에 건강이 발목 잡을지 누가 알았을까. 남들은 무릎이고 허리고 수술을 한다던데 연이는 수술은 애당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예비해 둔 돈도 없거니와 회복 기간 동안 간병을 맡길 자식도 여의치가 않음에 언감생심 수술은 저만치에 두고 겨우겨우 아픈 몸을 파스로 달래 가며 더 심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 내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연이는 요즘 들어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자식들에게 짐 되지 않아야겠다 생각하며 살았는데 나이 들고 보니 마음먹은 대로 몸 하나 간수하는 것도 어렵다.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은 채 살아 낼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한다. 홀로 이런 시간을 견뎌내기가 두렵다.
‘주여!’ 한숨 같은 기도가 연이 호흡을 따라 새어 나왔다.
오늘도 선재 가족이 쇼핑한다며 나갔다. 연이는 바람 쐴 겸 같이 나가자는 막내아들 말에 “ 엄마는 집에 있을래. 자네들끼리 재미있게 다녀오시게.” 라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몇 번 따라나선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다음번엔 나서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아픈 몸 끌고 따라다니는 것도 힘들지만 그래 봐야 정작 연이에게 소요되는 물건을 사는 일도 드물었다. 뒷방 늙은이라는 표현이 새삼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이구나, 생각하며 연이는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넓은 아파트에서 연이는 소일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싱크대에 담긴 몇 개의 접시들을 닦고 빨래건조대에 널려있는 옷가지들을 정리하며 연이는 먼저 간 남편을 생각했다. 빨래를 접어주면 남편이 그 위에 올라가 질근질근 밟아 주었고 그러면 다림질을 따로 하지 않아도 빨래 주름이 펴져서 말끔하게 정돈이 되었는데. 한 번씩 생각나는 남편에 대한 기억이 그리 나쁜 모습이 아닌 걸 보면 사람이 떠난 후에는 좋은 기억만 남기는 선택적 편리함이 있는 것 같았다.
연이는 자기 방으로 파킨슨 환자 특유의 종종걸음을 옮겼다. 가끔 이렇게 남편이 생각나는 날에는 습관처럼 남편이 남기고 간 낡은 지갑을 꺼내본다. 명품은 아니지만 막내아들이 준 선물이라며 지갑 귀퉁이가 헤어졌어도 남편은 이 지갑을 마지막 날까지 아껴 사용했다.
어느 화창했던 오후, 아마도 돌아가기 한 달 전 즈음으로 기억한다.
“ 이거 받아.”
“ 웬 돈이에요?”
“ 나 죽고 나서 당신 혼자 남았을 때 필요하면 써. 노령연금 모아둔 거야. 돈 없으면 애들이 당신 구박할지도 몰라. 잘 간직했다가 먹고 싶은 거 있을 때 사 먹어.”
아픈 몸으로 언제 은행에 다녀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이 내민 봉투에는 오만 원 권, 만 원 권, 오천 원 권, 천 원 권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들어 있었다. 액수가 아이들 구박에 대비할 만한 큰돈은 아니었지만 남편의 진심만큼은 크게 느껴졌다. 연이는 잠시 행복을 느꼈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연이는 봉투에 담긴 지폐들을 꺼내 한 장씩 어루만지며 남편과의 사랑을 추억하게 되었다. 죽기 전에 네 자식들에게 아빠 유품으로 물려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낡은 지갑 안에 각기 네 장씩 지폐들을 모아 정돈해 넣었다.
초겨울 짧은 해가 기울어 캄캄한데 장 보러 간 아들 가족은 소식이 없다. 제시간에 맞춰 약을 먹으려면 뭐라도 요기를 해야겠다 싶어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를 뒤져봐도 마땅히 먹을거리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음식 환경이 다른 막내며느리는 밑반찬의 개념을 모른다. 매일 올라오는 일품요리가 맛은 있는데 이런 날에는 연이가 꺼내 먹을 것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냄비에 물을 붓고 마른 누룽지 몇 조각을 넣어 끓인다. 밥상은 모름지기 한상 가득 채워야 직성이 풀렸던 연이었는데 초라한 누룽지 그릇을 보면서 눈물이 한 방울 맺혔다.
연이는 그렇게 초라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