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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딸을 보며

불편한 블루스

by rosa

6.


딸이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연이는 어린애처럼 들뜨는 기분이다. 살가운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딸이 오면 묵은 수다도 떨 수 있고 가끔 손에 들려오는 선물 보따리가 연이에게 맞춤한 것들이라서 역시 엄마를 잘 알고 있구나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연이는 딸을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했다.

간호사로 일하는 선영은 연이에게는 주치의나 다름없다. 처음 파킨슨병의 증상을 알아봐 준 것도 딸이고 장손자의 간경화를 알아보고 급히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딸 덕분이었다. 동네 의사나 한의사도 알아보지 못했던 병을 단박에 알아본 딸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연이의 신경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그리고 건강검진까지, 동네의원에서부터 대학병원까지 딸은 어찌 그리 잘 알고 찾아다니는지 연이는 고마움에 앞서 선영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딸이랑 병원 다니는 이야기를 하면 많이 부러워했다.

혼자만 아니라면, 형편만 좀 좋았더라면 세상 어디 내놔도 빠질 것 없는 딸이 고생하며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연이는 항상 가슴 한쪽이 저렸다. 이제 도와줄 체력도 경제적 능력도 없는 연이는 아픈 맘으로 간절하게 기도 할 뿐.



“ 엄마, 어르신들이 유치원처럼 아침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오는 데가 있는데, 엄마 다니실래요?” 갑작스러운 딸의 말에 연이는 어리벙벙해졌다. ‘이 나이에 유치원이라니.’ 연이는 딸의 첫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 유치원이 아니고 노치원이요, 아침에 선생님들이 집으로 와서 엄마를 모시고 학원 같이 만들어진 곳으로 가는 거 에요. 거기에 엄마처럼 오시는 어르신들이 계시거든요, 같이 밥도 먹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게임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있다고 해요.” 딸이 풀어서 설명을 해주니 연이도 이해가 됐다.

“그런데 가면 돈 많이 들 거 아니야? 비쌀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데를 가!” 연이는 사람이 움직이면 돈이 따라 움직인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기에 걱정이 앞섰다.


“ 엄마 그건 내가 알아서 해요. 집안에만 있으면 엄마 심심하잖아요! 가서 새 친구도 사귀면 기분 전환이 될 거고 운동도 하니까 건강에도 좋을 거고.” 딸의 말이 솔깃했지만 연이는 여전히 돈 들어갈 일이 걱정스럽다. 손주들 유치원비로 백만 원이 넘게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오래전인데 그 돈을 어찌 감당하려고 라는 생각이 들면서 연이는 싫다고 해야지 다짐했다.


그날 딸은 싫다는 연이를 억지로 나서게 했고 네 곳이나 다니면서 시설과 프로그램을 비교하고는 시설이 좋고 식단도 좋아 보이는 주간보호센터 한 곳을 결정했다. 어딘가에 서류를 넣었다고 했고 며칠 후 담당 사회복지사가 와서 연이의 파킨슨병 상태를 살피고 갔다.


딸은 한번 결정하면 뚝심 있게 일을 추진하는 편인데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말 나온 지 열흘 남짓 됐을까? 딸이 무슨 결정서라는 서류 파일을 들고 왔다. 요양등급을 받았고 나라에서 보조해주는 프로그램이라서 연이가 걱정할 것 없이 재미있게 다니면 된다고 했다.


말은 안 했어도 연이는 등교를 앞둔 신입생 마냥 설레는 기분을 느꼈다.

한참 후에 딸이 자기 부담금을 삼십만 원가량 다달이 낸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연이가 센터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던 터라 안 간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재미있게 생활하면서 딸에게 행복한 엄마를 보여 주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다.’라고 연이가 맘먹었다.

이때까지는 연이에게 새로운 인생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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