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와 F 사이, 내리사랑

by rosa


내 딸은 나와 다르다. 많이 다르다.

INFJ인 나는 마음의 결을 오래 만지작거리며 답을 찾고, ENTP인 딸은 공기를 가르듯 단호하게 결론으로 뛰어오른다. 내 속에서 나와 같은 밥을 먹고 살았는데도 성향은 이렇게 멀다. 그러나 다름이 곧 균열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 다름이 서로의 빈틈을 메우며 관계를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딸은 한동안 DINK를 고수했다. 환경과학자인 그녀는 망가져 가는 지구에 아이를 남겨 두는 일을 윤리의 질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 불쑥 물었다. “아이를 가지면 엄마가 맡아 줄 수 있어?” 묻기 전부터 이미 나는 떠들어댔다. “엄마가 도울게. 믿고 낳아.” 아이는 계획의 산물이 아니라 신의 허락을 필요로 하는 사건이라는 내 말에 딸이 미소로 답했다. 우주에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는 ‘탄생’의 기운이 우리 집 대화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임신 소식은 딸의 방식으로 도착했다. 어느 쪽도 서운하지 않게 하겠다며 양가를 한자리에 모아 툭, 초음파 사진을 내밀었다. 감정보다 근거를 앞세우는 T의 제스처였다. F인 나로서는 낯설었지만, 그 깔끔함이 딸답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언어는 달라도 의미의 방향은 같았다. 사랑을 결정하는 방식이 다를 뿐, 사랑을 미루는 마음은 아니었다.

출산 뒤, 나는 오래전의 나를 딸에게서 보았다. “엄마, 아이가 객관적으로 예쁜 것 같아요.” 서른여섯 해 전, 내가 했던 말을 딸이 그대로 따라 했다. 삶은 때로 이렇게 환류 한다. 산후조리를 위해 우리 집으로 자리를 옮겨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딸은 제법 의연한 엄마였다. 나이가 찬 엄마의 신중함과 초보의 불안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하는 풍경. 돌봄은 숙련과 서툼의 합으로 완성되는 사랑의 연습임을, 딸은 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복직 이후 시작된 주말육아. 금요일 오후에 와서 일요일 오후에 돌아가는 고된 리듬이 반복됐다. 평일엔 한 시간 더 일해 주말 조기 퇴근을 만들고, 주말의 품은 온통 아이에게 내어 주는 삶. 만삭 때까지 친구를 만나고 거리를 활보하던 E 성향의 딸에게 이 변화는 자유의 축소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은 자유를 줄이는 대신 행복의 의미를 넓힌다는 것을, 딸은 자신의 일상으로 보여 주었다.

“한 달에 한 주는 너를 위해 써. 아기는 엄마가 맡을게.”

그 말 속에는 나의 결심이 숨어 있었다. 딸의 여백을 위해 이주일 풀가동을 감당하겠다는 마음. 완벽을 욕심내기보다 지속 가능한 헌신을 선택하는 태도를, 나는 이제야 배운다. 아직은 건강이 받쳐 주니 버팀도 기쁘다. 이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가능한 동안 최선을 다한 엄마를 딸이 기억해 주길 바란다. 기억은 사랑의 가장 오래가는 증거니까.

복돌이가 다섯 달을 넘기며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성장을 기록하는 보드의 칸은 늘 모자라다. 기고, 앉고, 혀를 내밀어 장난을 치고, 배변과 배고픔을 다른 소리로 표지한다. 젖병을 스스로 잡아 들던 순간, 나는 ‘소중한 첫 장면’을 놓친 초보 엄마의 마음을 떠올렸다. 다행히 휴대전화가 그 빈틈을 메워 준다. 나는 잰 걸음으로 영상을 찍어 보낸다. 딸은 믿기지 않는 듯 되묻는다. “진짜야?” 혹은 “에이, 설정이네.” 순간 억울하다가도 웃음이 난다. 사실을 먼저 확인하는 이성과 감을 먼저 맞대는 마음—T와 F가 엇갈리는 자리에서 우리는 같은 장면을 다른 언어로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금요일이 다가오면 나는 설렌다. 주말의 해방 때문만은 아니다. 딸이 꾸리는 가정의 단단함을 보는 기쁨, 내가 누리지 못했던 어떤 평온이 딸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안도, 그리고 무엇보다 복돌이라는 더없는 선물 때문이다. 한국적 ‘정’은 흐르는 감정의 온도이자 관계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다. ‘내리사랑’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물길이 아니다. 아래로 흘러간 사랑이 다시 위로 증발해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돌아오는 순환의 기상도다. 딸에게 흘러간 마음이 내게로 되돌아와, 오늘의 나를 적신다.

INFJ 엄마와 ENTP 딸은 자주 다른 방향을 가리키지만, 우리는 늘 같은 곳을 향한다. 효율을 좇는 손길과 감정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번갈아 아이의 등을 쓸어내린다. 논리의 빛과 공감의 온도가 서로를 데우며 하루를 채운다. 다름은 균열이 아니라 균형이 된다. 돌봄은 상대의 필요에 대한 응답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대답하고, 그 대답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전설을 천천히 써내려 간다.

밤이 깊다. 불을 끄고 창을 닫는다. 오늘도 평안하기를, 내일도 안녕하기를. 엄마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딸에게로, 딸에게서 복돌이에게로 흘러가는 물길이 탁해지지 않기를. 맑은 계곡물처럼, 천천히 그러나 틀림없이 도착하는 이것—내가 알고 있는 내리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관계의 시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우리가 매일 새로 쌓아 올리는 작은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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