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누구보다 이상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어리광쟁이
대학 시절 학생회장을 맡을 만큼 외향적이었던 나는, 그 행위를 기점으로 180도 다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졸업 이후에는 연락하고 지내는 대학 친구가 1명도 없을 정도로 그 시절의 내가 낯설고 힘든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성향의 변화를 겪은 당사자로서 외향성과 내향성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외향인과 내향인의 차이를 가장 쉽게 설명하고자 할 때,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향에 따라 갈린다고 표현한다. 외부 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 사람과 고요한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삶의 기운을 재차 충전하는 사람.
한창 내향인으로써의 자부심(?)을 크게 가진 시절에는 이를 내면의 단단함의 차이라 생각했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내향인은 이를 혼자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다! 외향인은 혼자 이겨낼 만큼 단단하지 못해 친구나 지인과 함께 이를 이겨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하고 말이다.
반면 최근에 가지는 생각에는 이전과 다소 거리가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위로도 있겠지만 피로감이나 소모감 또한 당연히 파생되기 마련일 텐데 대체로 외향인들은 이를 크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이것 역시 단단한 내면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내가 고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 다른 주변인의 어려움이나 가십 또한 여유 있게 받아들여줄 여유가 없어서 선택적으로 관계를 차단하는 것이 내향인의 특징이 아닐까. 과연 특정 성향의 내면이 더 단단하다고 단정 지어 얘기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물론 혼자가 편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마음속 깊은 내면 어딘가에는 늘 관계에 대한 결핍이 공존한다. 다만, 상대방이 대체로 나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던 지난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결국엔 혼자가 낫다고 단념하게 한다. 또한 내가 겪는 문제들은 어차피 타인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이니 굳이 고통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슬픈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워하고 적적해한다.
가끔 내면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사실 강하다기보다는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스스로 견뎌낼 뿐이라 생각한다. 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주변에 들춰 보이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아주 가끔은 긴 고민 끝에 용기 내어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활동을 해보기도 하지만 불행히도 여태까지는 만족감을 느꼈던 적이 없다.
헬스(웨이트 트레이닝)를 좋아하는 나는 종종 우스갯소리로, 웨이트는 고립! 인간관계도 고립!! 하고 너스레를 떨며 나를 포장하곤 한다. 그리고 아직은 혼자가 편하다고 느낀다. 아직은 내 마음의 그릇이 간장종지라는 것을 인정하며, 세상 어딘가에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어리광 피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