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의 꽃샘추위가 제법 매섭게 찾아왔던 탓인지, 3월 중순에 접어들고서도 봄이 온 게 맞나? 하던 찰나. 이윽고 만개하기 시작하는 벚꽃들은 우리가 기다리던 봄이 찾아왔음을 따스하게 알려주었다.
봄이라는 단어는 ‘보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돋아나는 새싹과 꽃망울, 푸르른 산, 동면에서 깨어난 동물과 같이 봄은 우리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물한다. 그리고 이러한 만물의 시작은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출발, 자신감을 느끼게끔 한다.
어린 시절 수 차례의 봄에 겪었던 새 학기의 시작, 방학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만남을 포함한 일련의 아련한 기억. 그때마다 느꼈던 온도와 습도, 흙의 향기. 이는 어느새 우리 몸에 내재되어 따스한 봄의 날씨만으로도 그날의 기분을 업시켜주고 기운을 복돋워주는 촉매가 된다. 이렇게 느끼게 되는 종합적인 감정들을 가리켜 우리는 ‘설렘’이라 부른다.
지난 주말에는 태화강 대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벚꽃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주중에 못했던 숙제도 하고 책도 보며 여유를 즐기다, 밖으로 나가 한참을 걷고 또 벤치에 앉아 봄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넘쳐나는 생기만큼이나 세상을 밝게 비추어주는 벚꽃의 아우라를 딱히 유별스럽게 느끼지 못할 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나에게, 도리어 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되었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내 몸의 봄 레이더가 발동될수록 너무 들뜨지 않으려 애쓰게 되었다. 어떤 방향으로든 감정의 기복을 줄이고 싶었달까.
직장이나 주변에서 봄이 왔음을 나누는 대화를 할 때면 종종 “시간이 정말 빨라요. 곧 크리스마스가 오겠어요. “하며 설렘에 초를 칠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벚꽃만큼이나 크리스마스도 설렘을 상징하는 날인데 문득 그 결이 제법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벚꽃이 희망과 시작을 상징하는, 밝고 화사함을 가져다주는 설렘이라면, 크리스마스는 수고와 위로를 느끼게 해주는, 아늑함과 위안을 가져다주는 설렘이 아닐까.
희망과 밝은 내일은 우리에게 큰 에너지를 준다. 무엇보다 강한 동기부여제이다. 봄이 가장 생기 넘치는 계절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희망의 크기만큼 언젠가 받게 될 실망도 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법 힘들더라. 또 이번 봄은 뭐랄까. 좋은 일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지금의 고통이 얼마나 지속될까에 대한 걱정이 더 큰 시간이다.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길었고, 반면 이번 봄은 무척이나 짧게 지나갈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걸치는 외투가 얇아지지만, 가끔 또 문득 뜬금없이 캐럴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날의 그 시간의 나는 희망보다 위로가 필요해서일까?
오늘도 여느 금요일과 같이 서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한 두곡의 캐럴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크리스마스가 정말 코앞으로 다가올 즈음에는 이번 봄에 가지지 못했던 새로움과 생동감을 가진 내가 되어있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