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서른한 살의 나 기록

쉬이 가시지 않는 우울감과 마주하는 대화

by 루체

30대에 접어들며,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은 앞으로 이겨내야 할 일들 중 가장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줄이기 위해 인간관계의 범위를 줄이기도 하고 외출을 줄이기도 해 보았지만, 그러한 삶의 방식의 변화들이 곧 내가 감내해야 할 고통의 총량을 줄이는 데에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깊은 관계는 그 깊이만큼의 스트레스를 불러오는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가 판단하기에도 나는 불필요하리만큼 사람과 상황에 과몰입하는 편이다. 이는 보통 감정적으로 더 섬세한 사람들의 특징이라고들 한다. 돌이켜보면 20대의 나는 내가 섬세한 편이라는 평가에 상당히 만족해하고 그것을 반가워했던 것 같다. 누군가 힘들어하고 외로워할 때 남들보다 더욱 그들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으며 또 그만큼 더욱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이는 내가 생각하는 내 자신에 대한 가치를 올려주었다. 지난날 내 자존감 상승의 원천 중 하나였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이 과연 내가 가진 장점인지, 내 스스로의 가치를 올려주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의문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최근 내가 겪는 우울감의 대부분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이전의 나는,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고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에서 삶에 대한 원동력을 느껴왔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그 대상이 넓고 얕은 관계의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얕은 관계였기에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필요한 노력도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단순하거나 단기간에 해소 가능한 일들이 많았다.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대부분이 겪는 문제는 당장 해결될 수 없는 사안들이며, 그중에는 평생 해결이 되지 않는 일들도 산재해 있다. 최근 내가 겪는 답답함에는 특히 가족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우울감을 자주 겪는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내가 가진 현재의 모습이나 성향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정말 많이 변했고, 또 변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과 지금의 모습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충돌이랄까. 그 크기나 모양을 가늠할 수가 없어서 아직까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물론 방법이라면 천천히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는 것뿐이겠지만, 그 과정에서의 아픔을 최소화하고 싶고 그것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욕심이랄까. 어쩌면 이 욕심도 불필요하거나 쓸데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뭘 그렇게까지 고민하냐고, 피곤하다고들 얘기하겠지. 하지만 어쩌겠나. 이런 모습들이 쌓여져 만들어진 게 나인 것을.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맹목적인 위로를 받고 싶은 요즈음이다. 나에 대한 칭찬이나 좋은 얘기들도 별로 달갑지 않고, 그토록 집중하던 역량개발, 자기 계발도 지친다. 그동안 달려온 나를 위한 일시적인 휴식이 필요한 것인지, 지난 경험들이 내 모습을 아예 바꿔버린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실 후자일까 봐 불안하기도 하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더 노력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다. 삶에 대한 책임감과 무게감이 가중되는 것을 체감한다. 비록 힘들고 외롭지만 이 시기에만 겪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조차 소중히 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더 성숙한 내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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