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네게 레몬을 주거든,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나는 드라마를 좀처럼 보지 않는 편이다. 보통 10회 이상 매회 1시간 가량의 분량으로 편성되는 드라마를 다 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다음 화에 이어질 내용을 알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답함이 그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주변 지인들의 성원(?)에 힘입어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재밌다고 난리 난리... 1화만 보고 대충 본 척 대화 나누고 말아야겠다 생각했던 나는 총 16화의 드라마를 이틀 만에, 그것도 아주 정신없이 보았다. 1화부터 눈물샘을 자극하니 조심하라는 주의가 우스울 정도로. 뭐 눈물샘 자극? 아주 매화 폭풍 눈물을 흘리며 보았다.
'폭싹 속았수다'는 '매우 수고하셨습니다'의 제주 방언이라고 한다. 작품의 배경이 제주인 점과, 주인공인 애순이를 비롯하여 극 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삶을 치하하는 의미라고 받아들여졌다. 이들의 이야기는 무한한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위로하였으며, 또 반성하게 하였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드라마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작가님은 그간 얼마나 많은 폭풍과 마주하였을까 하는 존경심 또한 느꼈다.
때때로 특수하거나 제법 한국적이라고 느끼는 표현들을 볼 때면 이를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해 보는 버릇이 있다. 문득 이 드라마의 영문명이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When life give you tangerine', 직역하면 '삶이 네게 귤을 줄 때'라는 의미이다.
영어권에서는 이런 표현이 있다고 한다. 'When life give you lemons, make lemonade.'. '삶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로 직역된다. 레몬은 알다시피 인상을 찌푸릴 만큼 신 맛이 강한 과일이다. 그러한 레몬의 특성을 고통과 역경에 비유한 표현이라고 한다. 레몬을 달달한 레모네이드로 만들라는 것은, 그 역경을 행복이나 보상과 같은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그렇게 되도록 만들라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서 Lemon을, 작품의 배경인 제주를 상징하는 과일 '귤'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작품에 맞게 과일을 변경하여 영문 제목을 명명한 것은 어쩌면 그저 단순히 재미있고 재치가 느껴질 뿐일 수 있으나, 곱씹어볼수록 더 깊게 생각하게 된다. 한 번쯤 먹어보았겠지만 레몬과 귤은 아주 다르다. 신 맛을 특징적으로 나타낸 표현에서 레몬을 대신한 귤이라는 과일은 상대적으로 맛보고 즐기기에 어렵지 않은 과일이기 때문이다. 또 이어지는 구절인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는 구절은 아예 삭제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레몬이 상징하는 역경 자체를 역경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Life'는 원시 게르만어로 지속, 인내를 뜻하는 'Leiba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해야 한다면 기꺼이 지속하는 것, 이를 참고 버텨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지속하고 인내하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내 앞에 놓여진 레몬이 귤로 변해있는 시간에 당도할 수 있나보다 하는 일차원적인 기대를 하게 된다.
오늘은 아침 댓바람부터 글쓰기라는 취미와 출근 전 새벽에 운동하는 루틴을 나누는 친구와 '홧팅하자'라는 격려를 서로 교환하며, 그렇게 또 크고 작은 풍파들을 마주하고 인내하고 지속하고 있다. 그 시간들이 쌓여 언젠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누가 봐도 대견한 삶을 살아온 애순이와 관식이 같은 어른이 되어 있는 나를 기대하며.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이 흘러 남들보다 나이가 많은 이유로의 어른이 아니라, 삶의 풍파를 온전히 겪어내고 이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주변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폭싹 속았수다'의 작가님 같은 그런 어른이 되어 있는 나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