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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근 May 04. 2024

검은 바다_2

그곳의 과거 1

 

몇 십 년 전, 이 섬 어딘가에 한 마을이 있었단다. 그 마을은 섬의 토착민과 육지에서 들어온 이주자들이 잘 어우러져 살아가는, 몇 안 되는 마을이었지. 그 마을의 토착민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과 다르게 이주자들이 들고 들어오는 신문물이나 서적들을 반겼어. 그들이 가지고 온 라디오나 자동차 같은 것 말이야. 다른 마을 사람들이 전통을 버렸다고 비난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았어. 실제로 그들의 마을이 새 이주자들 덕분에 많이 발전하고 있었거든.

 타 지역의 사람들과 다른 반응에 새로 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 마을에 자리 잡게 되었어. 그리고 그들은 서로 잘 융합하며 계속 부흥해 갔어. 여차 했으면 그 마을이 가장 먼저 항구 도시가 되었을 거야.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모두 순조로이 흘러갔으면 좋았으렸만…

 하지만 베니,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인 다는 건 그만큼 옛 것도 빨리 잊는다는 법이란다. 마을에 이주자가 점점 늘어갈수록 토착민들은 그들의 본래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어. 원래 입던 가죽 옷을 던져버리고 이주자들의 드레스나 양복을 따라 입기 시작했지. 바다엔 고기를 많이 담을 수 없는 나룻배 대신 쇠창살이 달린 증기선들이 늘어가기 시작했어. 선조 때부터 물려받아온 배는 해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썩어갔지.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신들이 아주 오랫동안 섬겨온 신을 점점 잊어갔단다.

알겠니, 베니? 토착민들의 신은 성당의 하느님과는 전혀 달랐단다. 아니, 사실 정 반대였지.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 달라고 신을 믿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섬기는 신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그 신을 믿었어. 안 그럼 신이 자신들을 바다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었단다. 그래서 그들은 일 년에 한두 번 바다로 제물을 바쳤단다. 일종의 거래 같은 거였지.

 응? 그 제물이 뭐였냐고?

 … 그건 모르고 지나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여하튼 기술이 들어서자 열심히 섬기던 신에 대한 믿음도 달라졌단다. 사람들은 점점 전통을 미신 취급하고 섬기던 신을 나타내던 모든 장신구를 버리기 시작했어. 하기야, 라디오에선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100층이 넘어가는 집을 짓는데 누가 보지도 못한 신을 믿으려고 하겠어. 그렇게 모두가 그 신을 버리던 그때에 그 마을에 유일하게 단 한 사람. 그 신을 모시던 사제만이 사람들을 비난했어.

 ‘정신들 차려요! 이러다가 모두 죽습니다! 어서 다음 제물을 준비해야 해요!‘

 사제는 사람들에게 소리쳤어.

 ‘다음 그믐날까지 어서 제물을 준비해야 해요! 안 그러면 신께서 분노하실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에 콧방귀만 뀔 뿐이었지. 이주민들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무사히 고기를 잡게 해 주는 게 신이 아니라 증기선이라고 믿기 시작했어. 실제로, 마을은 번성하고 이주민들이 가지고 온 기술 덕분에 고기가 더 많이 잡혔거든. 그래도 사제가 포기할 줄 모르고 외치자 한 이주민이 그를 조롱했단다. 사람들은 그에게 외쳤어. 당신이 제물을 바치지 않은 뒤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이주자 모두가 제물이 되어주겠노라고.

 그 이주자의 말에 다른 마을 사람들이 웃으며 맞장구쳤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제는 얼굴이 붏어지며 두고 보라며 소리쳤지. 그렇게 사제는 분노에 차서 집으로 돌아갔어. 마을 사람들은 그날 일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단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약속한 당일이 되었단다. 그날의 마을은 유난히도 조용했지.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어. 모두가 신경 쓰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마음에 걸렸던 거야. 몇몇 토착민들은 숨 죽인 채 신께 용서해 달라 기도하기도 했어. 사제를 조롱하던 몇몇 이주민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름 침을 삼켰지. 하지만 다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아무 말 없이 평소처럼 하루를 보냈단다.

 자, 어땠을 것 같니 베니? 과연 신이 그들에게 벌을 내렸을까?

 결국엔 말이야, 사람들이 신을 버려서인지 신이 사제를 버려서 인지는 모르지만 태양이 수평선을 넘어가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단다.

 다음 날이 되자 토착민과 이주자들 모두 사제를 비웃기 시작했어. 그의 집 앞에 찾아가 지금껏 열성을 토하던 그를 흉내 내며 놀려댔고, 지금까지 제물로 받쳐진 이들의 가족들은 분노를 울분을 토하며 분노했어. 웃음소리와 고함소리가 뒤섞여 사제의 짚 앞에서 울려 퍼졌단다. 하지만 집 안은 고요했어.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나오라고 소리쳐도 사제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지. 이상한 정적에 마을 주민 중 한 명이 집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보자 집안엔 아무도 없었단다. 급하게 어딘가로 떠난 흔적이 집안 곳곳에 역력했지.

 사람들은 그가 거짓말이 들통나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생각했단다. 다들 그의 집에 침을 뱉고, 애꿎은 집에 불을 지르며 욕을 했어. 순식간에 그의 집은 폐허가 되어 버렸단다. 그렇게 사라진 사제와 함께 그 섬의 신도 마을 속에서 금세 사라졌어.

 그렇게 몇 십 년이 흘렀단다. 그 사이에 마을의 예전 모습은 말끔히 사라졌어. 도로가 생겼고 나무와 짚으로 지어진 옛 집들은 없어진채 유럽식 벽돌집들이 마을을 가득 채웠단다. 이주민도 많아지고 마을은 점점 발전해 갔지. 그리고 사람들은 사제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렸어. 오직 다 불타버린 그의 집 터만 그가 있었다는 걸 증명해 줬지. 그렇게 순탄한 나날 들만 계속될 것 같던 어느 날, 마을에 이상한 아이가 나타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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