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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May 09. 2023

스스로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게 되기까지

< 동정심이 사라진 자리 >

수습 딱지를 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합도 바짝 들어간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수첩과 명함을 들고 경찰서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던 날이었다.

별안간 비명소리가 울렸다. 조용하던 경찰서 건물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강렬한 소리였다. 2층 서장실 앞에 한 노파가 주저앉은 채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었다. 노파가 팔다리를 흔드는 것인지, 제멋대로인 팔다리가 노파를 끌어 앉힌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는 온몸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울음 섞인 '말'을 뱉어냈다. 그것은 언어적인 표현이라기보단 극도로 흥분한 감정이 흘러나오는 표출에 가까웠다. 검게 그을린 노파의 얼굴은 깊게 파인 주름으로 빈틈이 없었고, 주름 굴곡을 따라 눈물자국이 얼룩져 더 볼품없었다.


노파의 울음에 경찰서 사무실 문이 하나둘 열렸다. 토끼눈을 동그랗게 뜬 직원들이 울음의 출처를 확인하더니 이내 등을 돌리고 문을 닫았다. 젊은 직원 하나가 노파에게 다가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사무적인 말속엔 으름장 같은 경고가 녹아들었다.

노파는 이미 그곳의 유명인사인 듯했다. 복도를 지나다 엉겁결에 멈춰서 버린 나만 모르는 인사.

직원의 부축도 뿌리친 노파는 제 발로 일어설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세상 억울한 일이 있어서 오늘은 기필코 서장을 만나야겠다며 복도 바닥 한가운데로 다시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30여분이 지나도록 노파는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구경꾼처럼 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노파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마음이 아파서, 등 돌리기에는 목덜미가 찝찝해서 정도의 이유였다.

'악성민원인'이라며 옆에서 만류하던 직원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사무실로 사라졌다. 몸을 잽싸게 숨긴 것이 불똥이 제 튈까 염려한 것인지도 모른다.

"할머니, 뭐가 그렇게 억울하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을 훔친 노파가 또랑또랑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10대 소녀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총기가 그의 눈에 스쳤다.






아, 이제 드라마처럼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리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

1평 남짓한 경찰서 기자실 구석에서 노파와 마주 앉은 내 머릿속은 수많은 상상과 기대가 뒤섞여 흘러갔다. 아무리 악성민원인도, 이 정도로 절절하면 무슨 사연이라도 있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노파의 사연은 불법에서 시작해서 어거지로 끝났다. 그는 하천변 국가 소유의 땅을 수십년 동안 불법으로 점유하면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고 했다. 하천정비 사업을 계획한 정부가 그 사실을 알게 돼 불법경작을 못하도록 했고, 시간이 흘러 하천정비 사업도 마무리되면서 과거의 흔적은 모두 없어졌다. 한평생 살던 곳에서 당신을 내쫓은 정부가 매몰차고 억울해 못 살겠다는 거다.

그는 겉옷 안주머니에서 서류뭉텅이와 10여장의 사진을 꺼내 보이며 열을 올렸다. 자신의 것이었다고 하는 텃밭과 농막의 위치도와 자필로 쓴 탄원서, 지금은 사라진 것들의 사진 같은 것들.

그렇다고 노파가 갈 곳 없이 안타까운 처지인 것도 아니었다. 살고 있는 집은 또 따로 있으시단다.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아까 그 직원이 조금만 더 세게 내 팔을 붙잡아줬더라면. 후회막심한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1시간이 넘게 붙잡혀 그의 하소연을 듣고 있자니, 눈에 초점이 없어지고 귀가 먹먹해졌다. 내 정신은 아득해지는데, 노파의 목소리는 더 카랑카랑해졌다. 두서없이 뒤죽박죽인 그의 말을 다시 정렬해 이해할 기력은 일찌감치 바닥났다.

이 말을 어떻게 끊고, 이 사람을 돌려보낼 수 있을까.

어느새 나는 이 자리를 벗어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몇번씩 쳐다보며 볼펜 뒤축을 수첩의 빈 종잇장에 대고 툭툭 쳤다. 노파에게 보내는 노골적인 메시지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황한 말을 이어나갔다.


결국 견디다 못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르신, 제가 급한 일이 좀 있어서요. 말씀하신 내용은 제가 한번 살펴볼게요."

노파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잠시 흐르는 침묵 속에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던 그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바쁜 사람을 오래 잡고 있었네."

그는 펼쳐놓았던 서류와 사진을 주섬주섬 집어 다시 가슴속에 품었다. 내 명함을 왼손에 꼭 쥐고, 오른손으로는 내 손을 잡았다. 고맙단 그 짧은 인사말이 열댓문장으로 늘어지고 나서야 그는 못내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날 경찰서의 노파였다. 어떻게, 잘 살펴봤느냐는 그의 질문을 얼렁뚱땅 넘기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왔다. 그때마다 나는 확실한 대답을 내놓지도 못한 채 말을 빙빙 둘렀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뭐라 말해야 한단 말인가. 당신이 수십년 동안 불법을 저질러왔으니 막대한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 텐가.

내 마음을 알 턱 없는 노파의 전화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졌다. 그는 그날 내게 보여준 자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설명이 미흡했던 게 아닌지 걱정하며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온다고 했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를 들어 매번 거절했다.


2주가 흘러, 이제는 그의 민원 전화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언제까지고 그를 희망고문할 수도 없었다.

"어르신, 제가 좀 살펴봤는데요. 제가 도움을 드리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노파의 깊은 실망감이 수화기 너머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내가 자신이 보여준 자료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여기는 듯했다. 기사 한줄마저 거절하는 젊은 기자가 야속했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내가 정부에 매수됐다, 정부나 경찰이나 기자나 죄다 한통속이다 같은 비난을 퍼부었다. 소리를 내지른 흥분감에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도 튀어나왔다.


한참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 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쩌렁쩌렁 울리는 수화기를 멀찌감치 떼어내고 노파의 기운이 빠지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가 말과 말 사이 잠시 숨을 쉬는 그 찰나의 쉼표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이만 끊겠습니다."

답을 들을 경황도, 이유도, 여유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예의고 뭐고, 지쳐버렸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나를 보며 옆자리에 있던 선배기자가 키득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게 왜 명함을 줘선. 고생한다."


그때 새삼 깨달았다. 기자는 명함마저도 사람을 가려가며 줘야 하는 것이구나. 가장 낮은 자세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전하겠다는 것이 기자로서의 사명감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던 것은 모순이었다. 현실은 기사가 될만한 사람을 고르는 것부터가 일의 시작이다.

그날 내가 경찰서 복도에서 노파의 울부짖음을 모른 척 지나쳤더라면, 불필요하게 감정을 소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헛된 희망으로 보름여간 고문당하지도, 그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격분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기자가 된 후로는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일이 많아졌다. 그전에도 수없이 많은 일들을 놓치고 지나쳐버렸을 테지만, 기자란 직업을 갖게 된 이후로는 더 유난스럽다. 스스로 의지를 갖고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겠지. 득 되는 것 없이 귀찮기만 한 일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혹여 뇌리에라도 담길라 득달같이 흘려보낸다. 경험에서 우러난 생존본능이다.


매 순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게 기자라더니, 아이러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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