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저널> 창간 25주년 행사
1902년 조선말, 인천항에서 처음으로 86명의 조선인은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요.
그분들이 한국 이민 역사의 시작이었죠.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은 미국이었어요. 미국은 이민역사가 오래되어 교민사회가 잘 형성되어 있고 자체 방송국은 물론 신문을 포함한 여러 언론매체를 가지고 있어요.
122년 된 미국 교민사회와 달리 중국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교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미국이나 다른 나라 교민사회는 처음부터 그 나라에서 살겠다고 가신 분들이 정착했지만 중국교민사회는 아무도 여기 살겠다고 온 사람이 없어요. 살다 보니 10년 20년이 되고 30년이 된 거예요.
이제 32년 된 중국 교민 사회는 변변한 언론 매체가 없어요. 베이징은 1997년 5월, 전 경향신문 특파원이셨던 신영수 님께서 <베이징 저널>, 상하이는 1999년 10월 오명 대표님께서 <상하이 저널>이라는 교민신문을 만들었으나 2015년 이후, 사그라든 베이징 교민 사회는 베이징저널을 지켜낼 힘이 없었고 결국 폐간했어요.
다른 나라 교민사회도 한글로 발행하는 교민신문을 유지할 수 없어 폐간한 나라가 많아요. 이주 역사가 오래된 미국 교민 사회처럼 방송국, 라디오 같은 자체 채널을 못 가져도 한글교민신문 하나도 유지하기 힘든 게 중국 교민사회예요.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학을 뗀 학생들은 이제 중국에 유학 오지 않고 기업들은 날로 살쪄가는 중국기업들과 몸씨름해서 이기기 힘들어요. 중국과 몸씨름하지 않는 정부, 공공기관 말고 기업 주재원, 중소기업, 자영자들은 매일 격투기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전투사예요.
<상하이저널>은 죽보다 더 빨리 끓는 한중관계 변화 속에서 어렵지만 꿋꿋이 버텨 올해 창간 25 주년을 맞았고 기념행사로 이병률 시인 님을 초청해 10월 29일 강연회를 가졌어요.
저는 점심시간에 잠깐 가 강연을 30분 정도 들어 너무 아쉬웠어요. 다행히 저녁에 따로 뵐 기회가 있어서 서명도 받고 말씀도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어설픈 글 쓰고 있어 평소 생각했던 질문도 드렸고 이병률 시인님께서 쓴다는 것에 대한 여러 말씀해 주셔 감사히 잘 들었어요.
항상 제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업무 관련 저녁 식사를 해도 10시 전에 마치는 데 12시까지 자리에 있는 것은 상하이에 와서 처음 있는 드문 일이었어요.
집에 가니 1시였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소중한 하루였어요. 한글로 발행하는 교민신문의 중요성과 가치를 우리만 아는 걸까요? 재외동포청도 생겼다니 한글신문에 대한 재인식과 지원이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