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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비 Aug 27. 2024

4. 거짓말을 들킨 거짓말 혐오자


1편_우연에 기대어 의미를 찾는 것

2편_도망자를 위한 낙원을 향하여

3편_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걸



 대다수의 해외 워킹 비자를 취득하려면 관련 분야의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놈은 대학교 중퇴를 해서 졸업장이 없던 것이다. 밥이 하늘인, 매일같이 굶는 지독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사가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싫단 그의 자존심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던 나는 계속해서 '너의 자존심이 워킹비자를 안 받고 굶어가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거냐'라고 추궁했고, 마침내 사실을 토로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건 말건 상관은 없지만, 도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연고도 돈도 없는 상황에서 미련하게 한국행을 감행한 것인지 나는 도저히 이 사람의 대가리 속이 이해되지 않았다. 설령 거짓말을 할 순 있더라도 이건 생사가 갈린 문제가 되어버린 거지 않나.

 거짓말을 극도로 싫어하던 그였기에 나는 이 놈이 생사가 갈린 상황에서 이런 거짓말을 하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그는 나에게 이건 거짓말이 아닌 굳이 말을 하지 않은 것뿐이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상황이 이렇게 안 좋아질지 몰랐다는 책임감 없는 말과 함께. 그리곤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내 책임이 크다면서. 너 나를 사랑해서 여기까지 함께 온 거 아니었어?



 이후로 그가 불필요한 다른 거짓말을 도대체 얼마나 했을지 의심이 앞섰고, 아니나 다를까 그의 거짓말이 더 드러났다. 그리고 난 이 사람을 믿지 않게 됐다. 더군다나 둘 다 불행한 상황에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나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멋없는 행동에 너무나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는 언쟁이 있을 때마다 내 가족들을 모욕하며 폭언을 아끼지 않았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을 해댔다.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우는 나를 급기야 이상하고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며 가스라이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언제 갑자기 심기가 뒤틀려 소리를 꽥 지를지 몰라 항상 마음이 불안했다. 그는 갈수록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쉽게 짜증 내고 불만을 토로했다.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처음에 알던 그가 정말 맞는지, 내가 진정 마주 보고 있는 이 사람 이름조차 거짓말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거짓말을 가장 혐오한다며 귀에 박히도록 그 말을 명심하게 하던 그에게 진실만을 얘기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고, 더 이상 그의 연극에 놀아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급격히 신뢰와 애정이 식기 시작했다. 백그라운드를 모르고 덜컥 연애하고, 대책 없이 함께 국경을 넘는 짓을 한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벌이라며 나 자신을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그 벌을 달게 받았으니 이제 그에게서 벗어날 방법만을 궁리했다. 욜로를 외치던 그는 현재 빈털터리였기에 '돈'문제가 가장 예민할 터이니, 나의 재산과 관련되어선 일절 함구다. 나는 모아둔 돈은 굶더라도 일절 쓰지 않았고, 늘 최소한의 음식만을 먹으며 그에게 돈이 없음을 어필하며 상황을 버텼다.



 다행히도 그는 곧 온라인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나는 아침에 출근해 밤에 퇴근했기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렇게 무비자 기간인 3개월의 시간도 어느새 2주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나라 미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고, 내게 다른 나라를 함께 여행할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최악을 지나면서도 자신과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말은 그저 무책임할 뿐이었고, 나는 짧은 3개월 간 하루가 멀다 하고 마를 틈 없이 서럽게 쏟아낸 눈물들을 잊을 수 없었다. 그에게 '나는 비자 걱정 없는 여기서 돈을 버는 것이 최선이다.'는 핑계를 댔다.

 그렇게 그는 마지못해 혼자서 태국으로 가는 편도행 티켓을 샀,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가는구나. 마지막 2주는 나에게 2년처럼 느껴졌다. 그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면서도 하루에 수십 번 달력을 보며 다시 그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난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됐다. 그 무렵 난, 내가 이 사람과 함께하길 택한 벌을 받는단 생각에 매일매일 후회했고, 그런 내가 너무도 쪽팔려 친구나 지인도 만나지 않고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다. 그가 내가 친구나 가족을 만나는 걸 싫어하기도 한 탓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한국에 오기 전 그는 나를 북돋아 주는 말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했고, 무엇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나는 그런 그에게 더 의지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오면서 상황이 절망적으로 힘들어지자 달콤한 말들은 모두 나를 향한 비난과 모욕적인 말들로 변했고, 갈수록 드러나는 그의 이면은 나를 끝없이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이 아니라 그가 나를 가지고 잔인한 게임을 했던 것 같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더 이상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그와 관계를 지속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가 떠나기만을 고대했다. 그가 비행기 티켓을 사는 순간까지도 나는 행여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밀며 그가 돈을 요구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다리가 위태로운 의자에 앉으려고 할 바엔 내 두 다리로 서있겠다고 다짐하며 그의 출국이 얼마 안 남은 시점, 나는 이별을 고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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