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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치골에 산다
남편손, 요술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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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거인
Mar 29. 2024
봄의 햇살이 좋은 날에 열무씨와 상추씨를 뿌리려고 밭에 거름을 냈습니다.
으쌰! 으쌰! 삽질을 합니다. 흙이 부드러워 삽이 잘 들어갑니다. 그런데 삽 끝에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이 납니다.
예치골 텃밭은 돌산을 개간한 땅이라 돌이 많습니다. 삽질을 할 때마다 돌을 골라내지만 돌은 계속 나옵니다.
이번에도 돌인 줄 알고 삽을 누르는 다리에 힘을 실었습니다. 끄덕도 하지 않습니다.
승질머리가 포기를 모릅니다. 기어코 돌을 빼내고야 말리라, 마음먹고 곡괭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한 번 두 번 같은 곳을 내리찍었습니다. 그리고 쏴아!!! 물이 분수처럼 솟구쳤습니다.
밭고랑에는 가물 때 물을 주기 편하도록 수도에 연결하는 호수가 묻혀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조심조심 삽질을 했습니다. 잘 피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위치파악을 잘 못한 거였습니다.
물을 데려 오는 모터 스위치를 끈 이후. 방법은 없습니다. 남편이 퇴근하기만 기다려야 합니다.
밭일을 못하니 작업실에 들어가 미루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남편의 트럭이 비탈길을 힘차게 올라옵니다. 후진으로 매끄럽게 마당으로 올라섰습니다. 나는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남편이 트럭에서 내리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뭘 하느라 꼼지락거리는지 빨리 내리지 않고 있네요. 아휴!
나는 트럭에서 내리는 남편에게 눈맞춤하며 생긋 웃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사고 쳤다.
경직된 표정의 남편 눈이 동그랗게 변합니다.
무슨 사고?
나는 남편의 손을 잡아끌고 밭으로 가며 중얼거립니다.
사고가 사고지 무슨 사고가 어디 있어? 내가 호수 끊어 먹었지. ㅎㅎㅎ
나는 멋쩍게 웃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삽질을 해서 끊어진 호수를 찾고 있습니다.
남편도 전에 똑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기에 아무 말 못 하는 겁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구사리 좀 들었을 겁니다.
끊어진 부분을 떼어 내고 연결하고 호수를 끼우고 다시 연결합니다. 남편의 손은 요술쟁이입니다.
순식간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남편의 요술손 덕분에 아내는 오늘도 걱정 없이 사고를 칩니다. 남편손이 뚝딱 해결해 줄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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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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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오르며 숲 길 걷기를 좋아하는 작은거인입니다. 사는 이야기를 일기처럼 기록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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