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라고 하지만, 내 주변에는 보통 두 명 정도의 자녀를 둔 집들이 많다.
우리 기성세대 또한 그러하다. 형제, 자매, 남매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이상하게도 유독 아들이 있는 집의 어머니들만의 독특한 논리가 있다.
그 논리는 명절에 가장 빛을 발한다.
명절 전날, 아들 내외는 음식을 준비하고 명절 당일날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 여동생이나 누이가 있는 집은 명절 당일 대부분 오전에 친정으로 향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나는 늘 의아했다.
왜 며느리는 친정에 먼저 갈 수 없고, 시누이는 일찍 친정으로 갈 수 있는가?
며느리도 친정이 있고, 시누이도 친정이 있다. 그런데 시누이는 왜 명절날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걸까?
그때마다 아내들의 모습은 교차한다. 시누이는 시댁에서 딸이고, 며느리도 친정에서는 딸이다. 그런데 왜 시누이만 유리한가?
바로 그 순간, 시어머니들의 ‘기적의 논리’가 등장한다.
아들 내외가 정리하고 친정으로 향하려고 하면, 막아선다.
“시누이가 오는데, 밥은 먹고 가야지.”
시누이는 자기 집에서 딸이니 당연히 일찍 와야 하고, 며느리는 남의 집 딸이니 늦어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심지어 시누이가 도착하면, 시누이 남편의 밥상까지 며느리가 차려낸다.
나는 묻고 싶다. 며느리가 그 집의 노비인가? 왜 이런 부당함이 반복되는가?
제발, 최소한 딸을 가진 시어머니들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본인도 소중하게 키워냈던 딸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언제나 자기 상황에 맞춰 논리를 정당화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시누이가 오면, 며느리도 친정에 그 시간에 맞춰 보내주는 것이 정의로운 논리 아닌가?
그럼에도 당당한 모습으로 말하는 시어머니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나는 최소한 위와 같은 기적의 논리를 말하는 시어머니가 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억압을 강요하지 않는, 공평하고 따뜻한 시댁을 만드는 시어머니.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부모의 모습이며,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믿는다.
“진정한 어른은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공평과 배려로 세대를 잇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