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계의 선전포고

by 마음벗

사람의 관계는 꼭 거대한 사건에서만 틀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소한 말 한마디, 무심한 태도, 그리고 그 후의 물 흐르듯 아무 일 없다는 듯한 행동이 더 깊이 연관된다.


직장 내에서 상사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존재다.


조심하고, 잘 배우려 노력하며,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약자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와의 대화 속에서만 숨어 있던 그들의 태도를 느꼈다.

겉으로는 배려하는 척하지만, 그 안에는 비난 섞인 질책과 우월한 말투가 섞여 있었다.

그런 태도는 오직 나와의 공간에서만 드러났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고생 많아서 걱정된다”는 천사 같은 말을 하며, 나를 챙겼다.


심지어 사적으로 단호하게 전했던 이야기들조차, 공식 자리에서는 “해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식으로 포장되었다.


그 행동을 곰곰이 바라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 상사도 직장 내에서는 약자였다.

더 높은 위치의 상사나 조직 구조 앞에서, 그는 늘 불안했고 자신을 지켜야 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권력을 행사하고, 공식 자리에서는 친절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심리적 균형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즉, 내가 느낀 불편과 갈등은 단순히 인격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약자가 강자가 되는 순간, 작은 권력감을 확보하려는 인간 심리의 자연스러운 전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그 상사 사이에 숨겨진 긴장은 직장 내 약자와 약자 사이의 미묘한 힘의 게임이자,

관계 속에서 나에게 보내는 작은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살다 보면 내 작은 표현이 공격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막내 아이를 안다가 허리를 다쳐서 요즘 좀 안 좋아요.”


그녀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말한다.

“운동을 안 해서 그래.”

“네가 원래 몸이 약해서 그래.”

“매일 집 안에만 있으니 그렇지.”

“나는 매일 밖에 나가서 운동하고 있어.”


그녀의 말투 속에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나를 낮추려는 기류가 섞여 있었다.

그녀의 말속에 진실.

말에 공감하기보다는 자신의 강인함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은근한 질투와 동시에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마음. “나는 건강하고 부지런하다, 너는 그렇지 않다”는 구도를 만들어 스스로의 안정을 확보하는 태도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내가 예민한 걸까?”라는 자기 의심이 스쳤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문제는 나의 예민함이 아니라 그녀의 공감 부재였다. 나는 단순히 아픔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내 입장은 분명했다. ‘약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허리를 다친 상황일 뿐.’


누군가 내게 실례되는 말을 하고, 은근한 깔봄을 드러내며, 질투와 우월감을 동시에 보여줄 때, 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진다.


마음속에서는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까?”라는 의심이 떠오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제가 있는 것은 나의 예민함이 아니라 그녀의 태도다.


남편이 그녀 앞에서 내 칭찬을 했다.

“우리 마누라가 애들 보느라 정말 힘들어. 내가 도움을 많이 주지도 못하는데 잘 해내고 있어.” 가족들 모두 “맞아. 맞는 말이야.”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럼 애를 엄마가 키우지 누가 키워?” 날카롭고 앙칼진 말투였다.

다들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며느리에 대한 칭찬이 곧 자신에 대한 그림자처럼 느껴진 것이다. 며느리가 인정받는 순간, 자신이 배제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불안은 곧바로 비아냥으로 바뀌었다. “당연한 일”이라며 내 노고를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나는 당황스러움과 억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남편과 가족들이 인정했다’는 위로가 있었다. 내 입장은 분명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누군가의 눈에 보였다는 사실 자체로 충분히 정당했다.


한 번은 부모님을 찾아뵙고 남편의 승진 사실을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시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애미가 집에서 살림 잘하고 애들 잘 키워주니까. 애비가 아무 걱정 없이 밖에서 일할 수 있는 거다.”

“반절은 애미 공이다.”


그녀는 상당히 못마땅했던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시는 분이 그날은 내가 준비해 간 음식들을 손도 대지 않고 집에 있던 누룽지, 옥수수만 연신 집어 먹었다.

그리고는 평소같이 행동하는 듯했으나 눈빛에 짜증이 가득했다.

나를 불러 세워 놓고 냉장고에서 반찬 그릇을 꺼내 내 손에 난폭하게 쥐어 주었다.

“이거 가져다 놔라.”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가끔씩 저렇게 은근히 화를 풀어댔다.


그리고 다시 평소처럼 말하며 나를 대했다.

시아버지의 말은 나의 공로를 인정한 동시에 그녀의 존재 자체를 흔들었다.

‘내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그녀의 고정된 자존심이 크게 자극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그녀가 불편했던 이유는 본인이 규정해 놓은 위치가 흔들렸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이 가정에서 며느리는 원래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갑자기 며느리가 존중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녀는 의아함과 혼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녀에게 며느리의 자리는 늘 낮고 조용해야 했다.

그런데 시아버지의 말속에서 며느리가 공로와 존중의 자리에 놓이는 것을 보자, 그녀는 견딜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 것이다.


‘나도 그동안 고생 많았는데, 왜 나한테는 그런 말 한마디 없고, 왜 쟤만 공로를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거지?’

그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 일은 존중받아서는 안 될 존재가 존중받았기 때문에 생겨난 껄끄러움이었다.

그녀는 그 감정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음식 거부와 반찬 그릇을 내 손에 거칠게 쥐여주는 방식으로 분출했다.


나는 처음에는 위로와 안도감을 느꼈지만, 곧바로 이어진 무시와 냉대에 다시 위축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내 공로는 분명하다’는 자각이 내 안에 남았다. 모순된 상황 속에서도, 나는 조금씩 내 정당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뭘 했는지, 내가 어떤 기분일지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사과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나를 대하며, 내가 느낀 감정을 깔아뭉개 버린다.


이 순간, 나는 바보처럼 느껴진다.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그녀의 행동은 사실상 관계의 선전포고다.

“나는 이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너를 존중하지 않겠다.”

잘못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

상황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런 사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말로 맞서도 그들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내 감정을 무기 삼아 더 가볍게 대할 뿐이다.


설득하려 하거나 반응하면, 내 마음만 더 상하고, 상처는 반복되었다.


이는 일종의 권력 유지 방식이었다. 사과하는 순간 자신이 낮아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오히려 자기 자존감이 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방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바보가 된 듯 내 감정을 의심했다. 하지만 기록을 통해 반복된 패턴을 바라보자, 원인이 명확히 드러났다. 무례는 분명 그들의 몫이었다.


나름 찾은 방법

무표정, 무응답.

표면적 즉각적으로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그들의 판단과 무례에 휘둘리지 않고 침묵 속에서 나는 나를 지키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겉으로는 침묵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나는 내 감정을 지키겠다’는 선언이었다. 무력감에서 나온 침묵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선택한 침묵이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알아야 사람이다.

그들의 행동은 “너는 무시해도 된다”는 선언이며, 관계의 균형을 깨는 행위였다.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존중과 최소한의 예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상대가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관계를 붙잡는 것은 나만 상처받는 일일 뿐이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이해시키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들을 마음이 없다면, 내 말은 허공에 흩어질 뿐이었다.

알아내야만 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의 여러 일들을, 내 마음을 기록해 왔다.


어떤 날은 짧게, 어떤 날은 길게.

처음에는 그저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풀기 위한 기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리가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왜 내가 불쾌함을 느꼈는지를 되짚어 보니, 명확한 그림이 드러났다.

누가 보아도 무례한 말과 행동들, 그것이 분명한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나는 다시 똑같은 일을 겪고 있었다.

마치 같은 상황이 반복 재생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걸까?”


그들의 심리적 배경은 질투, 자존심, 불안, 권력 유지 욕구였다.

나는 상처, 자기 의심, 그리고 점차 정당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들의 무례한 태도는 결국 “나는 너를 존중하지 않겠다”는 관계의 선전포고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분명하다. 그 선언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것, 침묵 속에서 나를 지키고, 스스로에게는 존중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고, 결국 조금 이나마 답을 유추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