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 다치거나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등장하는 뉴스를 나는 차마 마주하지 못한다.
그 슬픔이 며칠이고 내 마음속에 남아 나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슬픈 영화도, 가슴 저린 노래도 감당할 수 없다. 마음을 후벼 파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런 나를 남편은 오해하고 있다.
그는 내가 냉정하고, 때로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나는 슬픔을 너무 깊이 받아들이기에 차라리 외면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과거 위층의 아이들이 층간소음을 발생시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위에서 쿵쿵 뛰는 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은 짜증보다 안타까움이 앞섰다.
‘저 부모는 얼마나 미안할까. 아이가 뛸 때마다 가슴이 얼마나 철렁 내려앉을까.’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위층 주민과 마주칠 때 나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먼저 건네곤 했다.
“죄송해요 아이가 어려서.... 시끄럽게 해 드려 죄송해요.”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다. 대단히 죄송해하고 있었다.
“우리도 아이가 있어요. 다 아는 처지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말을 했고,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 역시 고마운 아랫집 주민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쿵쿵 뛰어다닐 때마다, 늘 미안했다.
“아이가 어려서요..... 너무 죄송합니다.” 머리 숙여 사죄하였다.
그런데 그분은 늘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원래 뛰어야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전혀 시끄럽지 않아요.”
심지어 과일을 사다 주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었다.
마주칠 때마다 “아이가 참 예쁘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그 따뜻한 눈빛을 보며, 내 마음은 더없이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의 감정을 민감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있어 때로는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사람.
내 감정의 그물은 남들보다 촘촘하다.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길을 걷다 마주친 사람의 표정, 버스 안 누군가의 작은 한숨, 아이가 흘린 미묘한 눈빛. 그 모든 것이 금세 내 그물에 걸려 올라온다.
그물에 걸린 감정들을 올리기에는 벅차고, 종종 피로가 밀려오지만, 그 덕분에 나는 세상을 더 깊이 느낀다.
엉성한 그물을 가진 사람들은 큰 사건이나 눈에 띄는 감정만을 붙잡는다. 하지만 나는 작은 파동 하나에도 흔들린다. 겉으로는 침착한 척하지만, 내 마음은 여지없이 반응하며 살아간다.
나는 늘 질문한다. 왜 나는 이렇게 예민할까. 왜 나는 잡생각을 멈출 수 없을까.
어느 날 아파트 단지에서 세 아이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가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해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왜 울고 있어? 울지 마.”
사정을 들어보니, 장난을 치던 중 두 아이가 실수로 한 아이의 몸을 때린 모양이었다. 그저 놀다 생긴 일이었지만, 아이의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다독이며 다른 두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어주었다. 결국 큰 잘못은 아니었지만, 울고 있는 아이의 마음은 여전히 서러워 보였다.
울고 있던 아이에게 물었다.
“괜찮아. 많이 아프니?”
“지금 집에 엄마 계시지?” 하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른 가서 엄마한테 꼭 이야기해. 괜찮아.”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모르는 사람이 집에 엄마가 있냐고 묻는다면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고 그냥 가야 하는 게 맞는데….’
그래서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앞으로 모르는 사람이 집에 엄마 계시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말고 그냥 집에 가야 해. 알겠지?”
별 걱정을 다 한다 싶으면서도,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아이의 뒷모습이 아파트 입구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나는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며칠 동안 그 자리만 지나도 나는 그 아이를 떠올렸다.
나는 이렇게 사소한 울음에도 반응하며 감정들을 느낀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항상 의문이었다.
나의 오지랖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나는 왜 남의 일에 이렇게 깊이 개입하려 하는 걸까? 내가 아이의 엄마도 아닌데.”
그러나 곱씹어 보니, 그것은 단순한 오지랖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눈물이 내 그물에 걸릴 때, 나는 그 눈물을 통해 세상의 아픔을 깊이 느끼는 것 같았다.
마치 바다의 그물이 물고기뿐 아니라 파도와 바람의 흔적까지 함께 끌어올리듯이, 내 마음 또한 누군가의 작은 떨림까지 놓치지 못하는 것이다.
시댁에 대한 나의 그물도 여전히 유효했다.
그들은 때로는 냉정하고 무례했지만, 아주 가끔은 난처하거나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보같이 마음이 무너졌다. 다음 날이면 또다시 나를 힘들게 할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슬픔을 지나치지 못해 진정으로 걱정하고 함께 아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눈물은 사라지고 나는 다시 무시의 대상으로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분명 알면서도, 또 그렇게 마음을 내어주었던 내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수많은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놓쳐버린 것은 결국 ‘진정한 관계’라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나는 예민한 사람이 맞았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스스로 인정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혹시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나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여러 정황을 모아 나 스스로를 설득시킨 후에야 움직였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혹은 내가 잘못 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망설였던 것이다.
나의 기록들은 단순한 일기의 차원을 넘어, 나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증거가 되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온전히 설득하지 못한 탓에,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되는 무례와 무시를 걷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의 말과 태도에 쉽게 흔들렸고, 나를 의심한 끝에 스스로를 굳건히 세우지 못했다.
나를 온전히 믿고 의심을 걷어내기까지, 결국 10년이 넘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