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가족은 언제나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다.
때로는 가장 깊은 상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겨난다. 그 상처의 시작이 ‘이간질’ 일 때, 균열은 더욱 뚜렷하고 아프게 드러난다.
며느리가 겪은 가족 안의 이간질은 아주 작은 말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사소한 불만, 무심코 내뱉은 비교, 혹은 의도적인 험담.
그러나 그 말들은 단순히 공중에 흩날리고 사라지지 않았다.
말은 다시 다른 말로 이어졌고, 귓속에서 자라나 뿌리를 내렸다. 그러면서 가족 안의 단단한 벽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시댁과 가까이 지내던 시절, 며느리는 그 균열을 매일의 삶 속에서 조금씩 느꼈다.
사실 그 균열을 정확히 인지한 건 한참이 지나고 나서다.
겉으로는 평범한 가족의 풍경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이 흘렀다.
작은 말이 불씨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갈라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본인이 큰아들에게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큰아들이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동생에게 가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럼 동생은 평소에 품고 있었던 형에 대한 불만을 같이 늘어놓는다. 그리고 끝이 나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각색되어 다시 형에게 흘러 들어가게 된다.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
“네 동생이 네가 그렇다고 하던데.” 본인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을 전한다.
어머니의 말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둘이 나눈 대화 중 본인이 말한 내용은 뺀 채 본인의 의도와 부합하는 동생이 한 말만을 가져와 형에게 전달한다. 즉 본인의 불만을 동생의 입을 빌어 형에게 전해주는 모습을 띠게 된다.
그 말은 들은 형은 표면적인 부분만을 듣고 동생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또한 어머니는 동생에 대한 불만이나 불편한 감정을 똑같은 방식으로 형이 말한 형식을 빌어 동생에게 전달한다.
모두 본인의 감정 전달을 위한 남의 입을 빌리는 비겁한 행동이다.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본인이 어른답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까, 혹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 비난받을까 두려워 취하는 행동이다.
그렇게 형제는 멀어지고 오해하고 결국 절연하게 되는 것이다.
사소한 갈등의 순간마다 이간질은 더욱 힘을 얻는다.
어머니의 마음 그 자체는 아마도 단순했을 것이다.
그저 가슴속에 쌓인 답답함을 풀어내고, 다른 아들에게서 작은 위로라도 얻고 싶었던 것뿐이었을지 모른다.
억울한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고, 자신이 느낀 서운함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잘못되었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듣는 이의 가슴에 스며드는 감정의 씨앗이다.
어머니가 털어놓은 말은 귀를 통해 옮겨지고 전염되어 결국 관계를 좀먹는 불씨가 되었다.
의도는 위로였지만, 결과는 파괴였다.
여기서 더 안타까운 점은, 어머니는 지금도 그것이 이간질임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본인은 그저 속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여기고 있다.
둘이 나눈 대화에서 잠시 호응해 준 아들의 비난 섞인 말을, 굳이 다른 아들에게까지 전할 필요는 없었다. 그 순간의 말은 단지 흐르는 감정일 뿐, 누군가에게 옮겨야 할 진실이 아니었다.
아마 "네가 틀렸어 걔가 내 말이 맞다잖아." 이 말이 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 말의 무게와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사랑으로 이어져야 할 가족의 대화가 어느새 서로를 갈라놓는 칼날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네 아내가 내게 이렇게 말했어", "네 아버지가 너를 이렇게 말했어"라는 말들이 오고 갈 때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조금씩 흔들리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족 안에서의 이간질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갈등으로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내의 불화는 곧바로 큰아들과 부모의 관계로 이어지고,
형제 사이의 갈등은 만남마저 불편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진 의심의 씨앗이 결국은 가족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이 균열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틈이 벌어져 결국 가족을 갈라놓는 힘이 된다.
나는 때때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의미를 되묻는다. 핏줄로 이어졌다고 해서 무조건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핏줄로 이어졌기에 더 쉽게 상처 주고, 더 쉽게 서로를 얽매이기도 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야지"라는 말은 때로는 강요로 작동했고, 이해하지 못할 때 더 큰 좌절로 다가왔다. 가족 안에서 생겨난 균열은 낯선 이와의 갈등보다 훨씬 더 오래, 더 깊게 남았다.
하지만 모든 가족이 완벽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균열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균열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 것인가이다. 그렇게 결국 가족 안의 균열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배운 것은 있었다. 균열이 반드시 파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금이 간 그릇이 반드시 버려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전통 도자기 수리법인 ‘킨츠기(금으로 이어 붙이기)’는 깨진 자리를 오히려 금이나 은으로 채워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되살린다.
가족 관계도 그렇다. 균열이 생겼을 때,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서로의 상처를 마주할 때 새로운 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균열은 아프다. 그러나 그 균열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관계의 진짜 모양이다. 금이 간 벽을 붙들고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가족 안의 이간질은 우리를 흔들었지만, 동시에 우리가 지켜야 할 기준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균열은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상처 난 자리 위에서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이어 붙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가족을 완전히 잃지 않는 길이고, 또 스스로의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