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가족, 외로운 편 가르기

by 마음벗

이간질은 언제나 편을 나누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누가 내 편인지, 누가 저쪽 편인지, 그 선을 그으면서 관계를 흔든다.


처음에는 단순한 농담처럼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내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강제로 던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동반한다.


원가족과 며느리는 늘 반대편 서 있었다.

사실 평소에는 한편이었다가 어느 순간 며느리는 본인도 모르게 반대편으로 혼자 밀려나가 있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내 편, 네 편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편 가르기는 이상하게도 단순한 진실보다는 감정의 충성심을 요구한다.

누가 옳은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내 편이 되어줄지 확인하는 과정이 된다.

그러니 객관적인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내가 누구를 ‘편 들어주느냐’ 하는 태도였다. 이 구조 안에서는 진실은 늘 뒤로 밀리고, 관계만이 전면에 서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가족 안에서 점점 ‘숨 쉴 틈’이 사라졌다.

“남편에게 네 마누라 편을 드는 거냐?”라는 질문은 표정과 눈빛에 스며 있었다.

결국 이간질이라는 비열한 방법으로 편을 가르는 방법을 택한 것 같았다.

이간질은 사람을 고립시키는 기술이다.


누군가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 할수록, 나는 다른 쪽에서 소외된다. 그리고 그 소외는 다시 또 다른 편 가르기를 낳는다. 그렇게 갈라진 마음은 서로를 점점 더 멀리 밀어낸다.

결국 남는 것은 ‘나는 누구와도 온전히 연결되지 못한다’는 외로움뿐이다.

큰아들 역시 이 편 가르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내와 부모 사이에서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어느 날은 아내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이내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말없이 물러났다.

아내는 남편의 그 태도에 분노했고, 남편은 아내의 요구가 너무 무겁다고 느꼈다.

결국 우리 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편 가르기가 생겨버렸다. ‘네가 누구의 편인지 보여 달라’는 요구는 부부 사이마저 분열시켰다.


이 편 가르기의 게임에서 승자는 없다. 누군가의 편이 된다는 것은 곧 다른 누군가를 잃는다는 의미였고, 결국 모두가 고립되는 결말을 맞았다.


마치 원을 그려 놓고 안과 밖을 가르는 것처럼, 안에 들어간 이들은 밖에 선 이들을 배제하고, 밖에 선 이들은 다시 다른 원을 그려 자신을 지키려 했다.


그렇게 원은 점점 더 작아지고, 사람들은 더욱 홀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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