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공중에 흩날리면 그저 메아리일 뿐이지만,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힘을 갖는다.
그래서 때로는 말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귀를 빌려주는 행위다.
처음에는 단순히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누군가 다가와 “내가 누구 때문에 힘들다”라고 털어놓을 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거절하는 것이 차갑게 느껴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해 주고 싶었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위로자가 아니라 공범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저 사람을 미워해 달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은근히 상대의 흠을 이야기하고, 불만을 토로한다.
듣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 말을 기억한다. 기억은 다시 의심으로 바뀌고, 의심은 관계를 변질시킨다.
그들은 그 과정을 수없이 경험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라며 흘려들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이 자신의 눈빛과 태도에 묻어 나왔다.
귀를 빌려준다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불만과 분노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그릇에 담긴 것이 언제나 그대로 나에게 흘러넘친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분노를 들어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흡수하게 된다.
결국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에도, 마치 내가 피해자인 것처럼 분노가 솟아오른다. 귀는 입보다 더 쉽게 더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족 내에서 다른 가족의 흉을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동조할 수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도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귀를 열어 그 불만을 듣고 있을 뿐이다.
조금의 동조하는 눈빛이나 말, 행동이 공범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기에 긴장된다.
하지만 어느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가족이 너무한 것 같다”는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양쪽의 이야기는 모두 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혹시 내 이야기도 다른 가족에게 이렇게 전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남편이나 아들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 쓸데없는 이야기라며 면박을 주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머니가 선택한 대상은 며느리였다.
어머니는 본인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와 자신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가감 없이 쏟아내도 되는 권리는 없다. 아마도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셨던 듯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진짜 마음을 일기나 메모 속에 담아 두곤 한다.
그 마음이 추하거나, 미움으로 가득 차 있거나, 혹은 부끄럽고 부족한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어느 정도 정제된 언어로 바꾸어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한 방식을 알지 못하신 것 같다.
악의가 없었어도, 때로는 악의가 있었더라도, 그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자신을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털어놓으면 괜찮을 거라 여기셨던 듯하다.
하지만 악의가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행동과 표정은, 결국 본인이 아무리 포장하려 애써도 그대로 전해졌다.
오히려 억지스러운 포장은 진심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나중에는 그런 포장조차 포기한 듯 보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머니의 일상적인 이야기나, 다른 사람을 향한 불편한 감정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며느리는 그 사소한 말들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부담임을 깨닫게 되었다.
시어머니의 한마디 한마디, 회사, 친척, 친구와의 사소한 갈등 이야기,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불만과 불평은 점점 며느리의 귀와 마음에 쌓여갔다.
며느리는 피로감을 느꼈다.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심리적 피로였다.
그러나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어느새 며느리는 그 불편한 감정마저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두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듣는 순간의 공감과 이해가 곧 자신의 감정으로 흡수되어, 마치 자신이 직접 피해를 겪은 것처럼 분노하고 상처받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며느리가 목격하는 무례한 말과 행동은 점점 더 자주, 더 날카롭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사소하게 느껴졌던 행동들도 반복되면서 하나하나 며느리의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순간 단단히 굳어, 며느리 스스로도 빠져나올 수 없는 심리적 감옥이 되어버렸다.
그 안에서 며느리는 스스로를 억누르고,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결국 며느리를 공격하는 말들도 남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듯 죄책감 없이 며느리 앞에서 마구 쏟아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표현이 입 밖으로 나왔다. 혹시 혼자만의 중얼거림인가 싶을 정도로 인간의 민낯 그대로의 말들이었다.
마음속 깊이 쌓인 무거움과 분노는, 때때로 그녀의 일상을 무겁게 짓누르며 숨조차 쉬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처럼, 단순히 귀를 빌려주는 행위에서 시작된 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며느리를 시어머니의 불쾌한 감정을 흘려보내는 배수구와 같은 역할에 머물게 하였다.
그렇게 삶 전체를 지배하는 무게로 바뀌었고, 그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그녀를 가두어버린 것이다.
며느리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귀를 지키야 하는 이유도 알게 해 주었다.
그렇게 며느리는 누군가 다가와 다른 사람을 헐뜯는 말을 시작하면, 의도적으로 화제를 돌리거나 조심스럽게 선을 긋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본인이 원하는 대우와 처우를 받지 못했을 때, 그 불만을 며느리 앞에서 쏟아냈다. 더 이상 그냥 받아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며느리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말을 돌리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물론 어머니는 섭섭해했다. “너는 내 편이 아니구나”라며 서운해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스스로를 지켜 주는 길이었다. 귀를 닫는다는 것은 차갑게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의 짐을 짊어지지 않는 것이다.
귀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내 마음을 지킨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불신의 씨앗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마음으로 직접 느낀 것만을 기준 삼는 것. 그것이 내가 다시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귀를 빌려주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은 책임을 동반한다는 것을.
누군가의 말에 내 귀를 열어줄 때, 나는 이미 어느 정도 그의 편이 된다.
여태껏 빌려줬던 나의 귀가 그녀의 불평불만에 익숙해지는 순간, 나는 나를 공격하는 말을 듣고도 내 불편한 감정을 스스로 의심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귀는 더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도, 다른 이를 지키기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