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끊을 수 없는 인연, 부모와 자식

by 마음벗

끊을 수 없는 인연, 부모와 자식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자석과도 같다.


혈육이라는 매개체로 이어진 그 힘은 세상 어떤 인연보다 강력하다.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는 부모의 품에 안기며, 부모의 눈빛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부모는 자식을 통해 삶의 이유를 얻고, 자식은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라난다. 이렇게 시작되는 관계는 끌림의 법칙처럼 서로를 당기며 함께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이 끌림은 언제나 따뜻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니, 사랑은 하지만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마음속에는 애정이 차고 넘치지만 그것을 표현하지 못해 아이에게 상처 주기도 한다.

혹은 잘못된 방식의 기대와 통제로 자식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어리석은 사랑은 때로 자식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굴레가 된다.


자식 또한 다르지 않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거나, 혹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철없는 시절에는 부모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성인이 되어서도 무심함 속에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때로는 부모가 삶의 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부모도 인간이고, 자식도 인간이기에 서로에게 어리석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찍 철이 들어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들도 있다. 그들의 아들들이다.


본인들의 힘들었던 경험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속으로 꾹 눌러 담고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두 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며 또 하나는 어차피 말해봐야 공감해주지도 못할 것이며 또한 해결해 줄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의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삶의 짐이자 방해꾼이 되기도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유를 주려 하지만 불안 때문에 간섭하고, 자식은 부모를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그리움과 책임으로 다시 끌려온다.


이 밀고 당기는 힘의 역학은 평생을 이어지며,

결국 관계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아이는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며 자란다. 그것은 단순한 투정이나 버릇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고 세상 속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자리 잡게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부모의 품은 아이에게 가장 단단한 울타리이며, 그 속에서 마음은 점차 단단히 다져진다. 그러나 그 울타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이는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쌓아 올린다.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는 벽을 만들며 자라난다.


어릴 때 충분한 감정의 이해를 받지 못한 아이는 커서도 그 결핍을 드러낸다.

마음의 빈자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어떤 아이는 과도한 분노로,

어떤 아이는 끝없는 인정 욕구로,

또 다른 아이는 관계의 회피로 나타난다.

이들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채 불안정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결국 관계는 흔들리고, 그 여파로 본인의 삶도 황폐해지는 경험을 겪게 된다.

힘들었던 경험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만 했던 아이는 어디서 치유받을 수 있을까?

부모에게 기대어야 할 시기에 외면당했다면, 그 아이는 실질적으로 고아와 다름없다.

육체적 양육은 이루어졌더라도 마음의 양육은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서적 방임’에 해당한다.

상처 입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에 쉽게 의존하거나, 반대로 관계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양극단을 보이곤 한다.


부모와 자식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그 끌림이 항상 축복은 아니다.

무지한 부모가 자식의 내면을 알아주지 못한 채 끝없이 바라기만 한다면, 그 관계는 자식에게 지옥이 된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은 여전히 그를 부모에게 끌어당기지만, 매번 돌아오는 것은 실망과 상처뿐이다. 이는 아이의 마음속에서 ‘이 관계를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애착은 원래 안전한 피난처이자 힘을 얻는 근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애착 대상이 상처의 원인이 될 때, 자식은 부모를 동시에 원하면서도 피하려 한다.

이 모순은 내면에서 극심한 혼란을 만들어내고, 삶 전체를 흔든다.


결국 매일 마주하는 것은 지옥 같은 반복이다.

그렇다면 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결론은 냉혹하다.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대신해 꺼내줄 수는 없다.

치유의 과정은 타인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부모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할 수 있는 길은 스스로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필연적이다.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결핍된 감정을 다른 관계 속에서 건강하게 재경험하며, 자기 돌봄의 기술을 익히는 것.


“끝없이 바라기만 하는 부모와, 그럼에도 끝없이 찾아가는 자식.”


그들도 다르지 않았다.


부모에게 끊임없이 외면당하고 부정당하면서도,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끝까지 매달리는 자식이 있다.

그 자식에게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과 노력을 다해 대접해도 여전히 갈증을 느끼는 부모가 있다.

언제까지 주지 않는 마음을 얻고자 그 끝을 붙잡아야 할까?


어쩌면 ‘마음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기보다, 마음을 주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줄 수 없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주지 못할 마음을 내어 달라 애타게 요구하는 자식.

얼마나 더 받아야 만족할지 모른 채,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채워 달라 끝없이 바라는 부모.


이 끌림의 역학이 지옥이 되지 않으려면, 자식은 부모에게서 한 발 떨어져야 한다.

그것은 사랑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다.


끊어내는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부모와의 관계도 새로운 가능성을 맞을 수 있다.

결핍을 딛고 자기 안에서 길을 찾은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희생자가 아니다.


그는 스스로의 부모가 되어, 자기 마음을 돌보고 어루만지며 다시 단단히 설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삶은 지옥이 아니라, 새로운 빛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된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으로 자라지만, 어른도 스스로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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