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서 끌림의 법칙은 중력이나 자석의 힘처럼 단순하다.
하지만 인간관계의 끌림은 단순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감정, 기대, 상처, 기억이 모두 그 힘에 개입한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은 단순히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서로를 더 멀리 밀어내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거리가 멀어진다고 해서 그 끌림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자리’, ‘놓을 수 없는 인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나무와 새의 관계와도 같다.
새는 나무 위에 앉아 쉬며 힘을 얻지만,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로만 살 수는 없다. 너무 집착하면 날갯짓이 막히고, 너무 멀리 떠나면 다시 돌아올 둥지를 잃는다. 서로에게 기대면서도 거리를 지켜야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끌림’은 결국 ‘거리’를 포함한다. 끌어당김만으로는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히 멀어져 주는 용기와, 멀어져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신뢰다.
부모가 자식을 키워내는 것은 붙잡는 일이 아니라, 놓아주는 일이다. 자식이 부모를 존중하는 것은 얽매이는 일이 아니라, 그 삶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 균형을 맞출 때 비로소 끌림은 파괴적인 힘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힘이 된다.
어쩌면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인 관계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의 빛이면서 동시에 그림자가 되고, 삶의 이유가 되면서 짐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모순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 하나다.
끌림의 법칙은 억지로 거스를 수 없는 힘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식 모두 그 힘 앞에 겸허해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만큼 다가가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만큼 물러나며, 부족한 사랑이라도 꾸준히 표현하는 것. 그것이 끌림의 법칙을 지혜롭게 살아내는 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이면서 동시에 자식이다.
그래서 끌림의 법칙은 단순히 한 방향의 관계가 아니라 순환하는 힘이다.
내가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은 나의 자식에게 이어지고, 내가 부모에게 드린 사랑의 방식은 언젠가 자식이 나에게 돌려줄 것이다.
반대로 내가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의 무게는 나의 자식에게 이어지고, 내가 부모에게 드린 상처의 방식은 언젠가 자식이 나에게 돌려줄 것이다.
이 순환을 이해한다면, 부모와 자식은 더 이상 서로의 짐이 아니라, 서로의 궤도를 지탱하는 별과 행성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중력이자 서로의 궤도다. 멀어지더라도 다시 끌려오고, 상처를 주더라도 결국은 빛을 나누며 산다.”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 부모가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서로 맞닿는다면 만남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리움은 억지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스스로 발길을 옮기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 간절히 그리워하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을 때 그 만남은 강요처럼 느껴진다. 불러도 오지 않고, 가까이하려 해도 자꾸만 물러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된 강요는 상대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는 묘한 힘이 숨어 있다. 좋든 싫든, 보고 싶든 그렇지 않든, 결국은 서로를 부둥켜안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은 의무나 책임 때문만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서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떨어져 살아도 마음은 묶여 있고, 미워하다가도 끝내 애틋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끌림의 역학이다.
서로 모질고 악독하게 했던 행동들을 뒤로한 채, 다시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돌아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수 없이 반복된 균열은 봉합이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 단계에 이르면, 끝내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절연을 이야기하며 ‘정말 그렇게 되면 어쩌나’ 싶다가도, 그렇게 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간절함을 표출하며 스스로도 혼란스러워한다.
‘내가 전하의 불효자가 되는 것인가? 내가 천하의 나쁜 놈이 되는 것인가?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처절한 절규는 소리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마음속 끓임없는 고통을, 그들의 가족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자신의 위치를 다지고자, 본인의 생각이 옳다고 믿으며 가족에게 가하는 잔인한 압박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싸움인지 그들은 알고 있는가.
세상을 조금 살아보니 삶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 혼자만 잘나고, 나 혼자만 열심히 살면 모든 것이 괜찮을 줄 알지만, 어느 순간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 단순한 원리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의 신념과 불안, 우월성을 강요하거나, 나의 잣대로 그들의 삶을 단정 지어 억누를 수 없다.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나에게는 언제나 승승장구하는 밝은 미래만이 펼쳐질 것 같지만, 인생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자신의 삶에 도취되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직 내가 최고라는 생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그들은 아직도 어린아이의 생각을 품고 산다.
본인들을 홀대하면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어린 석은 마음으로, 사람을 품거나 이해하고 아낄 줄 모른다.
단지 내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에만 집중하며, 가족이든 남이든 상관없이 쳐낸다.
그 명목이 효도든, 도리이든, 그들에게는 오직 그들의 감정만이 정의다.
정의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정의를 알지 못한다.
눈을 가린 채, 칼을 마구 휘두르는 잔혹한 칼부림을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