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이 서로를 당기고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라면, 마찰은 서로를 미묘하게 밀어내고 상처를 남기는 힘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작은 오해와 기대가 겹치면 관계는 갑자기 무겁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평생을 바치며 최선을 다한다.
물론, 그렇지 못한 부모들도 존재한다.
“내가 가난해서 이것밖에 못 해준 거야.”
“내가 바빠서 그럴 수밖에 없었어.”
“다른 부모들도 다 그렇게 키웠잖아.”
만약 가난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것을 해주었을 거라는 것은 내가 겪은 경험에 의하면 착각이다. 사정이 조금 나아지고 과거보다 살림이 나아져도 본인 먼저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또한 바빠서 못 해준다는 것도 바빠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였다. 실제로 바쁘지 않아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 시절 다른 부모들도 다 때리면서 키웠으니 내가 때리면서 학대한 것은 정당하다고 말하는데 비합리적이다. 무지하고 못나서 자식을 마구 때린 것뿐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단지 자식을 통제하기 위한 말일 뿐이었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대부분 부모들은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을 키워간다.
“내가 너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너를 돌보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낳았으니 키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유독 본인만의 성과로 둔갑시켜 자식을 옥죄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그 순간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동이 되고 만다. 말하지 않아도 자식들은 자라면 대부분 다 알게 된다.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인생의 성과는 조용히 빛나지만,
입 밖으로 낸 인생의 성과는 때론 세상 속에서 추하게 보이기도 한다.
최선이라는 이름 아래 강요와 통제를 섞을 때, 자식은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는다.
“네가 이래야 한다”는 말 한마디가 자식의 마음속에서 작은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은 쌓이면 깊은 틈이 된다.
서로의 마음은 닿으려 하지만, 또 다른 힘이 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자식 또한 부모에게 기대를 품는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읽지 못하거나, 자신의 방식으로만 사랑을 표현할 때, 자식은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이해받지 못한 마음은 벽을 만들고, 부모에게 등을 돌리게 한다.
이때 마찰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관계 전체를 흔드는 저항이 된다.
부모는 자식이 다가오지 않으면 화가 나고, 자식은 부모가 다가오면 숨고 싶어진다.
사랑과 미움이 뒤섞여, 관계는 한없이 복잡하게 느껴진다.
평소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할 기회도, 성장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작은 소란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더 섬세하게 다가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내가 느끼는 분노와 실망은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속 불안과 기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부모는 자식에게서, 자식은 부모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 그림자를 이해할 때 관계는 조금씩 부드러워질 것이다.
이렇듯 사람 사이의 마찰은,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을 만들어준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서로의 성장을 촉진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충돌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품는 법을 배운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은
“네 엄마를 나 대신 잘 돌봐라.”
라는 한마디였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남겨진 아내에 대한 미안함.
자식들에 대한 믿음과 걱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
말 한마디조차 버거운 순간이었기에, 아버지는 그 모든 마음을 그 짧은 부탁 속에 담아 전하신 듯하다.
그렇게 평생 원망하고 미워하던 아버지를, 아들들은 용서하며 가슴 깊이 품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지 않고, 끌림을 속박이 아닌 유대의 힘으로 바꾸어 가는 건강한 가정을 향한 과정에 있었다.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순간들이 수없이 반복된 뒤에야 비로소 조금씩 깨닫고 달라져 갈 수 있었다.
결국 세월은 그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인생은 내 마음과 행복만 움켜쥔 채, 내 것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집착과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우리들은 언젠가 본인의 어리석은 자만심과 우월의식이 가족을 업신여기고, 그들의 마음을 억눌러왔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
무지로 인해 행한 행동,
무지로 인해 행하지 못한 행동, 모두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로 인해 가족에게 남겨질 상처는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과 힘겨움 속에서 걸어가고 있다.
그 끝에서 마주할 것이 절연일지, 화해와 연결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