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왜곡된 명목 속, 형의 자리

by 마음벗

힘의 불균형은 그렇게 삶을 흔들었다.


사실, 동생은 본질적으로 형에게 크게 불만을 품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내며 서로 웃고 울었고, 서로를 아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 불평, 생활 방식을 비난하는 태도가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야 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각자 고군분투했다.

두 사람 모두 참으로 열심히 살았고, 그들은 흠잡으래야 흠잡을 수 없을 만큼 도덕적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가족 내 문제에서는, 그렇게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사람이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느 순간, 어머니는 “네 형은 못한다, 네 형수는 못한다. 부족하다”라는 프레임을 계속 덧씌웠다.


그 말속에서 동생은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기준을 따라 형과 형수를 지적할 권리를 얻은 듯한 착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형은 이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의 가장이 되었기에, 동생은 자연스레 거리감을 느꼈고, 어머니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실제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에, 어머니의 말은 가족 내에서 대부분 부정되지 않았다.


이것은 투사된 역할극이었다.

어머니가 만들어낸 불만과 서운함이 동생에게 전달되면서, 동생은 자신의 감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형을 판단하는 대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형을 공격한 셈이다.


진실보다 권위가 앞설 때 관계는 왜곡된다. 진짜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를 진실처럼 믿고 따르는 순간, 공동체는 균열을 피할 수 없다.


가족 내 중심은 본래 어머니가 잡아주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중심을 잡지 않자, 가족이 흔들리고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가 모두 끝난 후, 큰아들의 가족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큰아들은 다시 혼자 고향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 함께 위로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늦은 밤,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고생을 서로 다독였다. 오랜만에 가족애가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였다.


그때 남편은 마음에 오래 묵혀둔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 동생에게… “제 아내에게 조금만 더 잘해주시면, 저도 어머니와 동생에게 더 신경 쓰고 잘 챙기겠습니다.”


그 말은 결코 특별하거나 선을 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서로 더 좋은 관계로 지내자는, 조심스럽고 성숙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걔한테 못한 게 뭐가 있는데?”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동생은 “형수가 우리한테 잘한 게 뭐가 있다고 그래?”라며 곧장 남편을 몰아붙였다.

순식간에 따뜻했던 공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남편은 이해할 수 없는 공격 속에서 모든 짐을 챙겨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술기운에 운전할 수 없었다.

한겨울의 냉기가 온몸으로 파고드는 차 안에서, 남편은 한참을 울었다. 눈물조차 얼 것 같은 공기 속에서, 마음은 더 차가워졌다.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흐느끼며 말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그냥 우리 다 잘 지내자고 한 말이었는데…”


그 순간 남편은 깨달았다.

그들에게 ‘아내가 가족이 되는 일’은 환영이 아니라 마치 자신들의 무언가를 빼앗기는 일처럼 위협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들은 누군가를 들이는 순간, 자신들의 자리가 좁아진다고 느끼는 듯했다.


큰아들이 아내를 위해 한마디 해주는 일은, 그들에게는 천금을 요구하는 일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처리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한동안 어머니와 동생과의 연락은 끊겼다.


그들에게 큰아들 가족은, 쉽게 품어주지 못하는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큰아들은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중심을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그는 원가족으로부터 배척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아내는 알고 있었다. 남편의 선택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는 사실을. 그 용기는 우리 가정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용기는 왜곡된 명목 속에서 오해와 단절을 불러온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이 만든 기준대로만 사랑한다.

아마도 이 힘의 불균형은 어린 시절부터 내재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인지했을까, 못했을까.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 동생이 형을 업신여기거나 비난할 수 있는 경우는 없었다. 어머니조차도 그랬다.

아버지는 도리와 효를 강조하는 분이었다. 도리를 다하고 부모를 효로 대하면, 어느 쪽도 저울질하지 않고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도리와 효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본인이 마음에 드는 쪽만 옳았다. 그 옳은 쪽은 항상 작은 아들이었다.


어머니가 작은 아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이유는 분명했다. 어려서부터 작은 아들은 살갑고 따뜻했으며, 어머니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자상한 아들이었다.


반면 큰아들은 모든 문제를 정확한 잣대로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명확히 따지며 어머니에게도 잘못된 점을 바로 지적하는 아들이었다.


두 아들 모두 어머니를 매우 사랑했다. 작은 아들은 어머니가 상처받을까 걱정했고, 큰아들은 어머니가 잘못된 생각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큰아들은 항상 바른말을 했기에 어머니에게 훈계조로 말하는 일이 많았지만, 어머니가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서서 해주는 아들이었다. 말하자면, “해주고 입으로 다 까먹는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두 아들들의 사랑 표현이 다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그렇게 잘못된 본인의 인식을 인지하지 못한 채 판단하고, 칭찬하고, 불만을 드러내는 방식은 가족 전체의 힘의 구조를 흔들었다.

본인이 오랜 세월 키워온 아들인데 왜 그 마음을 모를까 싶다.

아마도 며느리라는 작은 새로운 변수가 그녀를 자극한 게 아닐까 한다.

큰아들이 느낀 힘의 불균형, 효의 불균형, 그리고 왜곡된 명목 속의 갈등 모두 결국 어머니의 임의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아버지가 집안의 균형을 묵묵히 잡아주고 있었던 덕에, 과거 가족 내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 잠재워졌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자상하지도, 특히 좋은 아버지도 아니었지만, 가족의 중심에서 보이지 않는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도록, 가족이 자신의 위치를 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억누르는 누름돌 같은 존재였다.


그 돌 아래에서만 남편과 가족들은 자신의 자리와 행동을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균형자 덕분에 나름의 규칙과 균형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누름돌이 사라지자 폭발하는 화산같이 불균형한 힘이 큰아들에게 쏟아져 내리면서 지금의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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